조선일보가 2014년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와 상반된 ‘반(反)평화’ 논조로 비판 받는 가운데 배성규 조선일보 정치부장이 5일 “예나 지금이나 통일과 평화에 반대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배 부장은 당시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으로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를 기획했다.

배 부장은 5일자 ‘자유 인권 비핵화를 말하면 反統一(반통일)인가’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이낙연 국무총리 등 정부·여당 주요 인사들이 4년 전과 달라진 조선일보 논조를 지적한 것과 관련 “본지가 과거와 달리 통일에 반대하고, 정부의 대북 정책을 따르지 않는 ‘반(反)통일 반(反)평화 세력’이라고 주장하려는 것 같지만 이는 ‘팩트의 오류’”라고 주장했다.

배 부장은 “조선일보는 예나 지금이나 통일과 평화에 반대한 적이 없다”며 “비핵화와 자유민주주의를 전제로 한 통일을 일관되게 얘기해 왔다”고 주장했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9일 평양 능라도경기장에서 두 손을 잡고 북한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9일 평양 능라도경기장에서 두 손을 잡고 북한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배 부장은 “2013년 8월부터 ‘통일이 미래다’를 준비할 당시 김정은의 폭주와 장성택 처형으로 통일론은 극도로 위축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통일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국내외 대북·경제·안보 전문가와 기업인들을 만나 치열한 토론과 고민을 거쳤다. 어려울 때 준비해야 눈사태처럼 닥칠 통일을 맞을 수 있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배 부장은 “조선일보가 박근혜 정부의 통일 대박론에 편승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며 “박 전 대통령의 ‘통일 대박’은 2014년 1월6일 본지 시리즈 4편이 나온 날 신년 회견에서 돌발적으로 나왔다”고 주장했다. 배 부장은 “박근혜 정부의 통일 관심이 식었을 때도 ‘유라시아와 한·중·일 통일 대장정’, ‘탈북자 통일나눔 아카데미’, ‘통일나눔펀드 운동’ 등을 쉼 없이 펼쳤고 최근에는 해외 통일나눔 아카데미를 열었다”고도 했다.

배 부장은 “통일은 헌법 원칙에 맞아야 한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 아래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공동 번영이 가능하다”며 “주민의 삶과 인권은 내팽개친 채 핵 개발에 몰두한 김씨 세습 왕조 체제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비판한 뒤 “이런 점을 지적한다고 반통일로 몬다면 언론보고 아예 눈감으란 얘기인가”라고 반문했다.

배 부장은 “올해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향후 남북, 미·북 정상회담은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를 이끌어 내는 자리가 돼야 한다”며 “그렇게 해서 북한을 개혁·개방과 민주주의 시장경제로 이끌 수 있다면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배 부장은 “만약 이런 지적이 잘못됐다고 한다면 정부·여당의 대북·통일 정책에 근본적 문제가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언론에 화살을 돌리기 전에 이 문제부터 깊이 고민해 보는 게 순서”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도 지난 4일 칼럼에서 “통일이 미래가 될 수 있고 대박이 될 수 있으려면 자유, 민주, 인권의 통일이어야 한다”며 “한마디로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이 우리의 미래이고 대박이다. 김정은 폭압 체제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그런 통일도 민족의 미래이고 대박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 5일자 배성규 정치부장 칼럼.
▲ 조선일보 5일자 배성규 정치부장 칼럼.
조선일보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제안한 이슈다. 방 사장은 2013년 8월 “이제 통일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면서 강효상 당시 편집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기획안을 검토해보라는 의견을 냈다.

사주가 움직이자 조직은 일사분란해졌다. 당시 강효상 편집국장이 통일기획 시리즈 큰 방향을 제시했다. 2013년 9월 말 주용중 정치부장(현 TV조선 보도본부장)을 중심으로 각 부서 기자들이 참여해 통일기획팀이 꾸려졌다.

취재팀엔 당시 조선일보 정치부 배성규 차장과 황대진·최승현·안준호·전현석·박수찬·김명성·김진명 기자, 경영기획실 홍영림 마케팅전략팀장, 임민혁(워싱턴)·안용현(베이징)·나지홍(뉴욕) 특파원, 경제부 김태근·최형석·이신영 기자, 산업부 최현묵 기자, 사회정책부 최종석 기자, 사회부 석남준 기자(당시 베를린 특파원), 문화부 변희원 기자 등이 멤버로 참여했다. 인턴 기자들까지 대거 통일기획에 투입됐다.

이 시리즈로 “南北통합 땐 대륙과 연결된 6000조원 자원강국”(2014년 1월2일자 4면), “통일비용 겁내지만… 혜택이 倍 크다”(2014년 1월6일자 1면), “北관광시설 4조 투자하면 年40조 번다”(2014년 1월14일자 1면), “통일 땐 5000㎞ 세계 최대 산업벨트 탄생할 듯”(2014년 1월24일 5면) 등 남북통일로 기대되는 경제 효과를 부각한 내용이 다수 보도됐다. 2014년 한 해 동안 무려 243건이 쏟아졌다.

‘흡수 통일’을 보기 좋게 포장한 기획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때 진보 진영도 대체로 조선일보 기획을 긍정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3월 조선일보 창간 기념행사에서 “조선일보가 통일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접근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내외가 지난달 20일 백두산 천지에 올라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내외가 지난달 20일 백두산 천지에 올라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4일 페이스북에 “4년 전 ‘통일대박’을 외쳤을 때와 조선일보 태도가 변했다고 하는데 저는 그때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고 본다”며 “그때나 지금이나 조선이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실현되더라도 엄청난 재정적, 사회적 부담을 안아야 하는 ‘흡수통일’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장은 “우리에겐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것이 우선 과제고 정치적 통일은 남북이 서로 상대를 인정해 평화 체제를 구축한 다음 먼 훗날에나 올 수 있는 것”이라며 “자꾸 비현실적 흡수 통일만 고집한다면 그것은 한반도 평화도 바라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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