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제 성추행 사건 피해자인 배우 반민정씨를 ‘보험금 갈취녀’, ‘교수 사칭녀’라고 보도한 기사는 모두 허위였다. 기사 핵심 내용과 인용문 대부분이 조작됐다. ‘가짜 바이라인’이 달려 실제 작성자를 끝까지 밝히지 못한 기사도 있다. 검찰은 이를 가해자를 도운 ‘기획보도’라 의심한다. 기자와 가해자의 친분이 두터울 뿐더러 가해자 1심 재판과 긴밀히 맞물려 연속 보도됐기 때문이다.

코리아데일리는 2016년 7월8일 첫보도 “[단독] 백종원 상대로 돈 갈취한 미모의 여자 톱스타”를 시작으로 한 달 간 허위 기사 4건을 내리 보도했다. 반씨가 △식당을 상대로 보험금 600만원을 요구해 210만원을 갈취했고 △교수라고 사칭한 데다 △병원에도 300만원을 갈취해 ‘합의금을 이중으로 뜯었다’는 보도였다. 반씨는 대중에게 ‘공갈협박녀’로 각인됐고 ‘가해자를 무고했다’는 여론이 번졌다.

문제 기사를 쓴 기자들은 1·2심에서 모두 명예훼손 유죄를 선고받았다. 미디어오늘이 사건 재판 기록을 확인한 결과, 취재원 대부분은 법정에서 “기사에 나온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하늘에 맹세코 아니”라고까지 말한 보험회사 취재원도 있었다.

▲ 코리아데일리가 2016년 7~8월 간 반민정씨에 대해 쓴 기사는 법정에서 모두 허위보도로 확인됐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코리아데일리가 2016년 7~8월 간 반민정씨에 대해 쓴 기사는 법정에서 모두 허위보도로 확인됐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① 핵심 취재원 “내가 하지 않은 말이 기사에 있다”

“방송·드라마에 출연하고 CF를 통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미모의 여자 톱스타는 백종원씨가 운영하는 모 식당에서 지인으로 보이는 몇 명과 함께 음식을 먹은 뒤 배가 아프다며 구청에 신고를 하는 등 돈을 뜯어낸 것으로 확인됐다.” (7/8 ‘[단독]백종원 상대로 돈 갈취한 미모의 여자 톱스타’)

반씨는 돈을 뜯어내지 않았다. ‘식당 보험금 갈취’를 다룬 첫 기사는 식당 관계자가 “치료비, 업무차질비용 등으로 반씨가 5천만원을 손해봤지만 6백만원만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보도했다. 식당주인은 “보험회사가 알아서 다 해 자세한 과정을 모른다. 반씨가 금전 배상을 직접 요구한 적은 없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기사는 보험사 관계자가 “여배우가 계속해서 돈을 요구하는 등 안하무인이었다. 요구액 6백만원 중 210만원에 합의했다” 말했다고 적었으나 이 직원은 “전혀 모르는 사실인데요” “하늘에 맹세코 아니”라고 반씨에게 말했다.

▲ 기사의 핵심 취재원들은 '기사에 나온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법정 증언하거나 진술서를 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기사의 핵심 취재원들은 '기사에 나온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법정 증언하거나 진술서를 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백종원 체인점에서 배탈이 났다며 식약청에 신고 한 후 배상책임 보험금 218만원을 수령했던 여배우가 배탈치료를 위해 수액을 맞던 중 간호사가 자리를 비웠다고 항의 해 병원으로 부터 3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본지 단독 취재결과 밝혀졌다.” (7/29 [단독] 백종원 식당 여배우 '혼절했다' 병원서도 돈 받아 '경찰 수사 착수')

‘병원 합의금 갈취’ 보도도 거짓이다. 당시 수액치료를 받던 반씨는 링거로 피가 역류해 112를 부르고 응급실로 후송됐다. 의료진이 모두 병원을 비워 일어난 일이었다. 원무과장은 재판에서 “명백히 병원 잘못이니 만약 보상을 요구한다 해도 저희로선 할 말 없는데”라고 말했다. 내과 원장도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억지로 청구한 적 없다”며 “우리가 미안한 상황이라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고 말했다.

② ‘유령기자’ 활용… 첫 보도 작성자 아무도 모른다

검찰은 7월8일 첫 보도 작성자를 찾지 못했다. ‘강도현 기자’가 바이라인에 적혔으나 실체가 없는 필명이었다. 보도를 주도해 고소당한 취재진은 편집국장 이재포씨, 사장 A씨, 기자 B씨였다. 검찰조사에서 이씨는 ‘A씨가 썼다’고, A씨는 ‘이씨가 썼다’고 서로 책임을 미뤘다. 검찰은 “둘 중 한 명이 쓴 것으로 의심은 되나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작성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범인도피’가 벌어졌다. A씨가 기자 B씨에게 ‘회사가 책임질테니 니가 작성했다고 진술하라’고 시킨 것이다. B씨는 영등포경찰서에서 ‘내가 강도현 필명을 사용해 기사를 썼다’고 진술했다. 거짓진술이었다. 검찰은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 못한 대신 A씨를 ‘범인도피교사’ 죄로, B씨를 ‘범인도피’ 죄로 기소했다. 1심에서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B씨 기사엔 ‘경찰이 이 사건 병원 사고(보상금 갈취)에 관한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B씨는 기사를 쓴 후 영등포경찰서로 가 반씨의 ‘보험사기’를 고발하는 진정서를 스스로 냈다. B씨는 이 진정서로 인한 무고 혐의로 현재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

③ 기자-가해자 의심스런 커넥션

이들은 왜 반씨에 대한 허위보도에 열을 올렸을까. 이재포씨는 “반씨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조카란 말을 듣고 관심을 가졌다”며 ‘조덕제 사건’과 선을 그었다. 연예계에 유력대선후보의 조카가 있다면 그 자체로 특종이므로 반씨를 취재했다는 답이다. 조씨도 “기사 써달라고 부탁한 적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도는 조씨가 ‘피해자는 허위진술 습관이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시점과 정확히 맞물린다. 2016년 6월27일, 조씨 1심 재판부는 ‘곧 결심공판을 열겠다’고 통보했다. 조씨 측은 7월12일, 갑자기 추가 변론을 요쳥하며 반씨에게 허위진술 습관이 있다는 의견서를 처음 냈다. 이재포씨는 7월1일 코리아데일리 편집국장에 임명됐고 ‘식당 보험금 갈취’ 첫 보도는 7월8일 나왔다. 7월12일 B씨가 첫 출근했고, 조씨 변호인은 7월13일 보험금 갈취 보도를 인용해 반씨에게 ‘허위진술 습관이 있다’는 의견서를 다시 냈다.

▲ 반민정씨에 대한 코리아데일리 보도는 반씨를 강제추행한 조덕제씨 사건 1심 재판 마무리 시점에 맞춰 연속 보도됐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반민정씨에 대한 코리아데일리 보도는 반씨를 강제추행한 조덕제씨 사건 1심 재판 마무리 시점에 맞춰 연속 보도됐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공판 내용은 기사화됐고 기사는 다시 조씨 측 증거로 활용됐다. 7월13일 공판 내용이 7월14일 기사에 실리고, 7월29일 ‘병원 보험금 갈취 사건’ 보도는 반씨 도덕성을 공격하는 의견서에 계속 반영되는 식이었다. 이씨는 법정에서 ‘조씨 측이 재판에서 언급한 내용을 기사화하기로 약속한 적이 있다’는 진술을 내놨다.

식당·병원 사건은 2014년 12월 말에 일어났다. 재판이 시작되기 2년 전의 일이다. 이재포씨는 이 사건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씨는 법정에서 “조씨가 자료를 보여주면서 사실확인만 좀 해달라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기사 작성 계기가 뭐냐’는 검사의 질문에 ‘조씨로부터 부정적 제보를 받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씨와 조씨는 영화 두 편에 같이 출연하는 등 10년 전부터 친분을 쌓았다. “가끔 안부 전화를 주고 받는 사이”였다. 둘은 성폭력 사건으로 수사가 진행된 2015~2016년 서로의 집을 걸어서 5분 내에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살았다.

기자 B씨도 코리아데일리 입사 전에 이미 조씨를 만났다. 판사가 ‘왜 만났느냐’고 묻자 B씨는 “이재포 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조씨를 만나 인사를 나눈 것”이라 답했다. B씨는 입사 후에도 조씨를 대여섯번 만났다. B씨는 이재포씨의 매니저 출신이었다.

2심 재판부(서울남부지법 제1형사부)는 4일 이씨에 대해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내렸다. 1심 때 1년2개월 보다 강화됐다. 명예훼손 및 범인도피가 인정된 김 전 기자도 1심 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으나 4일 징역 1년을 선고받으며 즉시 법정구속됐다. 범인도피를 교사한 이 전 대표는 1·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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