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우면동에 있는 KT 연구개발센터 대강당 안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고함 지르고 야유를 퍼붓고, 박수 치는 소리가 뒤섞였다. 대강당 안에 모인 사람만 300여명. 이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미디어오늘은 지난 3월23일 KT 정기주주총회를 하루 앞둔 22일 KT가 직원 300여명을 동원해 주주총회에 대비해 시나리오를 짜고 연습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입수했다.

녹취록 속에는 황창규 KT 회장 체제를 옹호 또는 반대 편으로 나눠 주주총회를 가상해 서로 질문을 하면 싸우는 내용이 담겼다. 각종 의혹을 받아온 황창규 회장이 의장으로 나설 주주총회에서 원안대로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반대편 주장까지 예상하고 치밀한 시나리오를 작성한 것이다. 녹취록을 보면 황창규 회장에 불리한 질문이 다수 나온다. 심지어 황 회장과 최순실과 연루 등 비리의혹까지 제기하며 사퇴하라는 요구까지 담겼다.

이같이 황 회장에게 불리한 질문이 나오면 야유를 퍼붓고, 고함 지르는 소리가 나온다. 소란을 피워 황 회장 반대 목소리를 찍어 누르기 위한 시나리오다. 반면 반대쪽 무리는 박수를 친다. 예상되는 모든 상황을 올려놓고 치밀하게 한편의 연극을 짠 것이다. 황 회장 스스로 각종 비리 의혹에 따른 리스크를 알고 있었던 셈이고 바꿔 말하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도 같다.

녹취록은 주주 역할을 맡은 한 직원이 “소문에 의하면은 모처에서 일단 요번 주총을 대비해서 수 백명의 직원들을 동원해서 연습을 시키고”라고 말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주주총회에서 예행 연습한 게 들통나 문제제기 당했을 때를 가정한 것이다.

관련 발언에 다수 주주들이 소란을 피우고 호루라기를 분다. 이어 다른 직원이 “앞선 주주님께서는 발언권을 받았으면 안건과 관련된 내용을 말씀하셔야 되는 것”이라며 “저렇게 발언 안 하시면 그냥 끊어버리세요. 봐서 발언 안 하시잖아요? 그럼 마이크 회수하시고, 여기 바쁜 시간 내서 온 주주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이에 주변 직원들은 “옳소”라고 소리를 지르며 발언을 묵살한다. 실제 주주총회에서 예행연습이 주주권 침해라는 문제가 제기될 경우 안건과 상관 없는 발언으로 몰아 발언권을 회수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짠 것이다.

반면 한 직원이 “(KT의 5G사업이) 미래가 밝은 만큼 한번 더 믿어보도록 하겠다. 더 이상의 토론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자 다수 직원들이 박수를 친다. 제1호 의안은 이렇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승인됐음을 선포하면서 통과된다. 모두 가상 시나리오다.

이어 정관변경 안건이 올라오자 “원안대로 승인하는데 동의한다”라는 직원의 말에 박수를 친다. 이에 황창규 회장 반대 역할을 맡은 무리 중 한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A씨는 “KT는 여전히 어두움으로 감싸있다. KT 10월 리스크보고처럼 삼성비자금 차명계좌에 연루됐다”고 말하자 여기저기서 “짧게 합시다”라는 소리와 함께 고함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A씨는 “정부의 게이트에 KT가 관여된 모습”이라며 반대 의견을 내는 것처럼 계속 연기를 한다. A씨는 “각종 은폐에 협조하여 자신의 지위를 확보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돼 있다고 의혹을 받은 황창규 회장을 정면 비난하는 발언을 예행연습한 것이다.

이에 B씨는 “지금 앞서 주주님은 지금 안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얘기로 주총장을 지연시키고 있다”며 “지금 저기 집단 구호 외치시는 분들, 질서유지권을 발동하셔 가지고 퇴장 조치하십시오”라고 말한다.

C씨는 “이번에 정관 변경을 보니까 CEO 사장에 대한 투명성을 강화하고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며 “주주로서 뭐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된다. 본 안건대로 처리하시고 다음 안건 처리해주시기를 요청드린다”고 말하자 의장 역할을 맡은 사람은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제2호 의안은 의안대로 승인되었음을 선포한다”고 말하고 의사봉을 친다.

▲ 황창규 KT 회장. 사진=노컷뉴스
▲ 황창규 KT 회장. 사진=노컷뉴스

3호 안건으로 선임 후보로 올라온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후보를 소개하자 D씨는 정권 측근 인사라는 언론 보도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자 E씨는 “정부 규제에 대한 대응역할을 잘 해주셔야 하는데 그럴려면 우리 주주의 요구사항을 잘 파악하셔서 배려하는데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부탁한다. 이번 안건은 의견이 없다. 그래서 찬성한다”고 하고 F씨도 이에 동조해 “사내이사 후보로 추천하신 분들을 보니 다양한 경험도 있으시고, 또 오랫동안 정계에서 일해 온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사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며 원안 찬성의견을 낸다.

반대로 G씨는 “KT는 주인 없는 기업이라는 오명을 벗고 정부 1등을 벗어나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중략)...KT에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최순실 지원을 해주고 그렇게 하면서 불법정치자금 조성해 주고”라는 의견을 낸다. 그러자 장내 소란이 일어나고 H씨는 “본 안건과 관련이 없는 내용으로 회의를 지연시키고 있다”며 발언권 회수를 요청한다.

이어 I씨는 “KT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끌어주실 그런 분들 같다. 본 주주는 3호 안건은 원안대로 승인하는 데 동의한다”고 말하고 박수가 터져 나온 뒤 의장 역할을 맡은 사람은 “찬성하시는 분은 박수로써 승인해 주시기 바란다”며 원안대로 승인됐음을 선포한다.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과 관련한 4호 안건도 원안대로 승인해달라는 요청이 있고 난 뒤 소란이 벌어지면 의장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박수로써 승인하여 주길 바란다”고 말하고 박수를 치면 안건을 처리하는 형식으로 통과된다.

5호 안건은 지난해 6억원에서 65억원으로 이사의 보수 한도를 조정한 것을 올해에도 똑같이 책정해달라는 내용이다. 이에 찬성하는 쪽에선 “어려운 경영환경을 고려해서 더 이상 한도를 늘리지 않은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말하고 반대하는 쪽에선 “아무리 봐도 지금 이사의 보수를 한도 승인하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반대 의견을 낸 사람은 “영업이익이 10% 마이너스 감소했다. 그리고 당기 순이익은 거의 30% 가량 감소를 했다”며 삭감을 주장하고 황창규 사퇴하라는 구호가 울려퍼진다. 하지만 결국 “의사진행권을 엄격하게 적용하셔 가지고 불필요한 말을 하면 마이크 회수하라”는 말에 의장 역할을 맡은 사람은 박수로서 승인해달라고 하며 안건을 원안대로 통과시킨다.

14쪽 분량의 녹취록을 들어보면 마치 실제 주주총회처럼 안건에 대해 찬반 주장이 부딪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KT 직원 300명이 각자 역할을 맡아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연기를 펼쳤다. 주주총회에서 황창규 회장에 대한 비난과 사퇴 목소리를 포함해 온갖 문제가 나올 것을 미리 예상해 한편의 연극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하루 뒤인 23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KT 정기주주총회는 사전에 연습한 대로 착착 진행됐다. 사전 예행연습에서 질문자로 지목된 박아무개씨, 이아무개씨는 23일 실제 주주총회에서도 질문자로 선정된다. 주주총회 예행 연습과 실제 주주총회를 지켜본 관계자는 “주총이 사전 연습대로 연습한 질문자에게만 질문권을 부여하고 43분 만에 종료”됐다고 전했다.

이날 주주총회에서 올라온 5건의 안건은 연습한대로 원안 통과됐다. 스마트에너지 사업 활성화를 위해 전기안전관리 대행업과 종합건설업, 미디어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문디자인업을 목적사업에 추가시켰고, CEO 추천위원회에 집중된 권한을 지배구조위원회와 회장후보심사위원회에 분산시켰다. 2명의 사내이사와 3명의 사외이사, 감사위원회 위원의 선임이 이뤄졌고 이사 보수 한도는 전년과 동일한 65억원으로 확정됐다.

▲ 지난 3월23일 열린 KT 정기주주총회 모습.
▲ 지난 3월23일 열린 KT 정기주주총회 모습.

사전 예행 연습한 것처럼 반대 의견까지 포함해 질문자를 지목해 질문이 나오면 야유를 퍼붓는 것처럼 하고, 유리한 질문에는 원안 통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답변해 각본대로 모두 원안으로 안건이 통과된 것이다.

기업들이 주주총회를 앞두고 사전 예행 연습을 하는 것은 관행으로 통하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 녹취록을 보면 정당한 주주들의 권한 행사를 사전에 미리 차단하기 위한 정황이 뚜렷해 현행법 위반 논란이 예상된다. KT 직원 300여명을 동원한 것도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방패막이로 삼았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실제 주주총회에 참석한 소액주주들은 황 회장이 주주권을 침해했다며 주주총회 방해 혐의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KT전국민주동지회 소속 소액주주 33명은 황 회장이 주주총회 참석을 방해했고, 3월 22일 직원들을 동원해 사전 예행연습을 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장을 냈다.

녹취록 내용은 사전예행 연습에 동원된 KT 한 직원이 KT전국민주동지회에 보낸 문자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3월22일자로 보낸 문자에는 KT 직원이 “3월 23일 주주총회 관련으로 금일 오전 10시 30분부터 KT우면동 연구개발센터에서 사측 주관으로 예행연습 중 질문하는 인력은 10시30분부터 연습 중이고, 자리메꾸는 인원은 1시부터 모였다”라고 보낸 것으로 돼 있다. 또한 “리허설의 목적은 1. 정당한 주주들의 의사권 방해 2. 황회장에 대하 불리한 질문시 야유와 고함 3. 주총 자리 확보로 주주 참석 방해 등”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주주총회 사전 예행 연습이 주주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설정하고 황 회장을 지키기 위한 목적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황 회장은 지난 2017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연임됐는데 당시에도 반대 목소리를 누르기 위해 사전 예행 연습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충분히 가능하다.

KT 측은 주주총회 사전 예행 연습 여부에 대해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따로 말씀 드릴 것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KT는 “2016년부터 올해까지 주주총회가 끝나면 매번 같은 이슈로 주주권리 침해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데, 2016년의 경우 KT 승소로 대법원 선고가 난 것을 참고해달라”고 전했다.

황 회장은 최순실 측근을 채용시켰다는 의혹과 최씨 관련 기업의 광고를 수주시켰다는 의혹을 받았다. 특히 올해 4월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까지 받은 바 있다. 최근엔 3차 남북정상회담 방북 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황 회장 때문에 정권과 KT의 관계 설정이 어그러졌다라는 내부 비판도 나왔다. 2000년 이후 처음으로 LG유플러스의 시가총액보다 뒤진 것으로 나오면서 황 회장 최고경영자의 리스크로 인한 위기설이 돌고 있다. 하지만 황 회장은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 뒤 조직 안팎 사퇴 요구에도 입장 발표를 자제하며 버티는 모습이다.

황 회장은 오는 10일 시작되는 국정감사 증인으로 확정됐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최순실 관련 의혹 등에 대해 황 회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증인 출석을 요구해왔다. 김종훈 의원실은 황 회장이 박근혜 정권과 연결돼 있는 적폐 인사인데도 청산되지 않고 있다며 각종 의혹을 검증해 따져 묻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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