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2014년 ‘통일이 미래다’ 기획시리즈와 180도 다른 반(反)평화 논조로 비난 받는 가운데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은 4일 “통일이 미래가 될 수 있고 대박이 될 수 있으려면 자유, 민주, 인권의 통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과 조선일보의 ‘통일이 미래다’가 말하는 ‘통일’은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무르익고 있는 한반도 평화 움직임과 결이 다르다는 취지로 읽힌다.

양 주필은 이날 칼럼(“대통령이 북한 대변인이면 한국 대변인은 누군가”)에서 “통일은 민족의 미래”라며 “전(前) 정부가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는데 실제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통일이냐다”고 주장했다.

▲ 4일자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칼럼.
▲ 4일자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칼럼.
양 주필은 “통일이 미래가 될 수 있고 대박이 될 수 있으려면 자유, 민주, 인권의 통일이어야 한다”며 “한마디로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이 우리의 미래이고 대박이다. 김정은 폭압 체제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그런 통일도 민족의 미래이고 대박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양 주필은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김정은이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나라를 ‘가슴 뜨겁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눈에는 전쟁을 일으키고 핵을 터뜨리고 천안함을 침몰시켜 떼죽음을 시키고 관광객을 총으로 쏴 죽여도 ‘민족 자존심’이 있고 ‘화해·평화를 갈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국은 이런 눈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잡은 세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북은 문 대통령 평양 연설조차 동원된 15만 명 외에 다른 주민들에겐 일절 보여주지 않았다. 김정은이 하는 겸손한 말, 파격적인 모습들도 북한 주민들은 전혀 모른다. 모든 것이 한국 국민을 겨냥한 계산된 행위”라고 주장한 뒤 “북핵 폐기와 남북 평화의 희망을 갖되 의심하고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주필 논조는 지난 5월과 차이가 있다. 당시 양 주필은 조선일보 칼럼에서 북한 비핵화 선언에 의구심을 나타내면서도 “북한 땅 전역에서 국제사회 CVID팀이 체계적으로 활동하게 되면 그 자체로 커다란 억지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가 북핵 사찰을 철저히 해도 숨겨놓은 핵을 다 찾을 수 없겠지만 북한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양 주필 칼럼은 냉전 이데올로기 프레임에 빠진 보수에 ‘출구 전략’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개편지 형식(‘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께 보내는 공개편지’)으로 “한겨레신문을 보고 있는지 깜짝 놀랐다”, “항복 문서 같은 칼럼이 나오면 김정은과 청와대만 웃게 된다”, “거짓보수는 당장 파면해야 조선일보 명예를 지킬 수 있다”면서 양 주필을 원색 공격했고 이후 양 주필 칼럼이 다시 강경 보수를 대변하는 논조로 돌아섰다는 해석이 많았다.

이 같은 양 주필의 칼럼은 정부·여당 주요 인사들이 조선일보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를 남북 정상회담 성과를 폄훼하거나 대북 강경책만 고수하는 보수 진영 논리를 반박하는 데 활용하고 있는데 따른 대응 성격으로 보인다. 

앞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를 인용해 남북 교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의원이 “남북한이 통합되면 6000조 규모의 자원 강국이 될 것이라는 조선일보 보도에 신빙성이 있느냐”고 물으면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그런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는 식으로 문답이 이뤄진 것.

같은 당 송영길 의원도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2014년도에 박근혜 정부 대통령 신년사에서 통일대박론을 말했다. 그때 조선일보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를 보셨느냐. 지금은 왜 이런 보도가 안 나올까요”라고 물었고 이 총리는 “저도 어리둥절하다. 통일을 이렇게 갈망했던 분들이 왜 그렇게 평화는 한사코 반대하시는지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 조선일보 2014년 1월1일자 1면.
▲ 조선일보 2014년 1월1일자 1면.
조선일보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제안한 이슈다. 방 사장은 2013년 8월 “이제 통일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면서 강효상 당시 편집국장에게 기획안을 검토해보라는 의견을 냈다.

“南北통합 땐 대륙과 연결된 6000조원 자원강국”(2014년 1월2일자 4면), “통일비용 겁내지만… 혜택이 倍 크다”(2014년 1월6일자 1면), “北관광시설 4조 투자하면 年40조 번다”(2014년 1월14일자 1면), “통일 땐 5000㎞ 세계 최대 산업벨트 탄생할 듯”(2014년 1월24일 5면) 등 남북통일로 기대되는 경제 효과를 부각한 보도들이 다수였다. 2014년 한 해 동안 243건 보도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오전(현지시각)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보수 언론·진영을 겨냥해 “과거 정부 시절 통일이 이뤄진다면 그야말로 대박이고 한국 경제에 엄청난 기회가 될 것 이라고 선전했던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니까 정반대 비난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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