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100원씩만 올랐어도, 지금쯤 8000원은 됐을 텐데요.”

국내 대표 브랜드 수제화를 만드는 제화공들은 공임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제화공이 구두를 짓고 받는 공임은 켤레당 5500원 안팎으로, 20년째 그대로다. 당시 최저임금인 2100원의 2배를 조금 넘던 값이 현재 최저임금(7530원)을 밑돈다.

최저임금이 3배 넘게 오르는 동안 미소페·슈콤마보니 등 브랜드 수제화를 만드는 노동의 값은 왜 그대로일까? 20~30만원에 팔리는 구두 공임이 저부(밑창)-갑피(신발 윗부분) 각각 5000~6000원밖에 하지 않는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무엇보다, 누가 공임을 결정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상 원청이 결정한다. 먼저 국내 수제화 업계는 1~2곳을 제외하고 모두 도급제다. ‘원청은 노동현장이 아니다’라는 얘기다. 본사는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납품 받는다. 제화공들은 이 하청업체와 계약 아래 구두를 만든다.

통상 소비자가격 30만 원짜리 구두를 놓고 보자.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와 회사측 주장을 종합하면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구두 가격의 53~55%가 유통 비용으로 나간다. 즉 33~35%는 백화점이 입점 수수료로 가져가고, 다른 20%는 백화점 판매원(위탁 판매사업자)이 가져간다.

제화노조 측은 원청이 하청업체에 4만~7만원, 곧 13~23%를 지불한다고 주장한다. 원자재값과 공임, 하청업체가 가져가는 마진을 합한 비용이다. “원청에서 떨어지는 걸 협력업체와 제화공이 나눠 먹는 거죠.” 박완규 제화지부 탠디분회장이 말했다. 원청이 마케팅 비용(10~15%)을 제하고 남는 몫을 가져간다. 미소페 측은 ‘제화노조의 설명은 전혀 맞지 않다’고 밝혔으나 가격 구성에 대한 공식 답변을 거절했다.

▲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는 탠디·고세·미소페 등 수제화 본사에 공임인상과 4대보험, 퇴직금 등 노동자로 권리를 요구해왔다. 사진=김예리 기자
▲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는 탠디·고세·미소페 등 수제화 본사에 공임인상과 4대보험, 퇴직금 등 노동자로 권리를 요구해왔다. 사진=김예리 기자

제화노동자들은 ‘중요한 건 원청이 단가를 일방 결정하는 구조’라고 말한다. 협력업체가 제화공들에게 직접 공임을 지불하지만, 이들 업체에게도 원청이 ‘갑’이다. 원·하청이 생산비용을 고려해 납품단가를 조율하는 방식이 아니라, 원청이 통보한 단가를 하청업체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손해는 하청업체와 관계에서 ‘을’인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생산단가엔 자재값 등 최소한만 반영된다. 노동력의 값은 오르지 않는다.

공임이 동결한 사이 국내 수제화 브랜드들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단적으로 미소페의 전자공시 재무제표를 보면 영업이익이 2012년 20억 1000여만원에서 2017년 81억 6600여만원으로 증가해, 5년 새 4배로 뛰었다. 자본시장 전문매체 더벨은 지난해 11월3일 “(미소페는) 큰 자금 지출 없이 순이익이 계속 쌓이면서 배당 재원이 되는 잉여금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소페 측은 공식 답변을 거부했으나, 영업이익 등 수치가 다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에 박완규 탠디분회장은 “원청은 모두 사정이 어려워 공임을 올릴 여력이 없다고 한다. 이들 수제화 브랜드 가운데 마이너스 성장한 곳은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2000년 초부터 제화노동자가 협력업체와 맺은 ‘소사장제’도 결정적 요인이다. 제화공들은 회사 지시에 따라 회사가 제공하는 자재로 구두를 만드는 사실상 노동자이지만, 법적으로는 회사와 ‘사장 대 사장’으로 계약을 맺고 있다. 이 ‘특수고용’ 지위는 노동시간, 공임인상 등 노동자로서 권리 요구를 어렵게 만든다.

부당한 공임과 대우는 비수기에 극에 달한다. 원청이 아울렛에 납품하는 이른바 ‘행사 신발’을 기획하면 공임은 할인율만큼 깎여나간다. 정기만 지부장은 “원래 아울렛 제품은 재고 가운데 이월상품이나 하자상품을 싸게 파는 것인데, 이걸 기획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미소페 측은 “기획 생산은 극히 일부”라고 했으나, 노조는 “이런 거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라는 입장이다. “노동자들은 제안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한푼이 아쉬우니까.” 박완규 분회장이 말했다.

제화노동자들이 소사장제 철폐를 장기 목표로 내세우는 까닭이 여기 있다. 제화지부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라는 요구 아래 원하청 회사에 4대보험 적용, 퇴직금 지급 등을 두고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정기만 지부장은 “회사쪽도 점점 제화공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추세”라고 말한다. 구두 제조업체 ‘세라’와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는 지난 7월 제화노동자들에게 4대 보험과 퇴직금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공임도 1400원 올리기로 했다. ‘고세’도 공임비 인상과 퇴직연금 지급 등 처우개선에 합의했다. 2일 제화지부는 미소페와 4개 하청업체에 오는 12일 협상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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