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안 언론’은 대개 정치적 지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가짜 뉴스(fake news)가 판치는 요즘 신뢰할 수 있고 전문적인,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대안언론은 가능할까.

2011년 호주에서 시작된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은 실험을 넘어 글로벌 대안언론으로 자리 잡았다. ‘학문의 철저함, 언론의 감각’(Academic rigor, Journalistic flair)을 추구하는 더 컨버세이션은 학자들과 기자 출신 에디터들의 협업을 통해 일반 언론이 다루기 어려운 전문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호주의 웹사이트로 시작된 더 컨버세이션은 지난 8년 동안 영국, 미국, 아프리카, 프랑스, 캐나다, 스페인,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등 8개국에 진출했으며 각국의 전문가 6만여 명이 참여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더 컨버세이션의 궁극적 목표는 수준 높은 콘텐츠를 확산시켜 공론장을 여는 것이다. 8월29일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더 컨버세이션 본사에서 만난 미샤 켓첼(Misha Ketchell) 편집장은 철저한 비영리 모델을 강조했다.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 라이센스에 따라 누구든 어느 매체든 무료로 게재할 수 있다. 필자들에게도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 미샤 켓첼(Misha Ketchell)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 편집장이 8월29일 호주 멜버른 본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미샤 켓첼(Misha Ketchell)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 편집장이 8월29일 호주 멜버른 본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대신 더 컨버세이션은 학자들에게 대중적인 글쓰기 교육이나 대중과 교류하는 강연, 콘퍼런스 등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학자들에게 본인의 연구성과를 널리 알리는 장을 마련해줌으로써 지식 기반 콘텐츠의 선순환을 추구한다.

더 컨버세이션 콘텐츠는 주로 △화제가 되는 뉴스 △새로운 연구 △흥미로운 의문을 주제로 한다. 편집자들은 매일 아침 회의를 통해 콘텐츠로 적합한 아이템들을 논의한다. 미샤 켓첼 편집장은 “매일 아침 회의에서 뉴스에 나온 화제 중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주제를 논의하며, 분야별 전문 편집자들이 각 분야에서 제작할 수 있는 콘텐츠를 발제한다”고 설명했다. 수년 간 특정 분야를 담당해 온 편집자들은 주요 콘퍼런스 참여 등을 통해 관계자들과 교류하는 등 사무실 바깥에서도 ‘기사거리’를 발굴한다.

시의성 있는 사회 이슈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설립 초기 ‘학식이 높은 사람’들을 타깃으로 전문적인 연구 성과들을 다루는 경향이 강했다면 이제는 대중적인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생산해 독자층 확장을 노리고 있다. 최근 불거진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 지명자의 과거 성추행 논란과 관련,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성추행 가해자들은 어떻게든 승진한다”(Kavanaugh confirmation a reminder: Accused sexual harassers get promoted anyway)는 기사를 작성해 노동 현장 속에서의 성추행 가해·피해 사례에 대한 분석을 전하는 식이다.

더 컨버세이션의 모든 기사는 자체 CMS(Content Management System)의 ‘가독성 지표’를 활용해 ‘16세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한다. 필자가 기사 초안을 CMS에 입력하면 100점 만점의 점수와 더불어 기사에 사용된 단어 개수, 문장별 평균 단어, 각 단어별 음절, 전체 글자 수 등의 분석 결과가 나온다. 에디터들은 점수가 낮은 기사를 가이드라인에 따라 수정한다. 한 문장에 17개 이하의 단어를 사용하고, 각 문단은 최대 3문장으로 구성해야 하며 단어별 첫 알파벳으로 만들어진 약어나 학계 전문·특수용어를 쉬운 용어로 대체한다. 기사당 단어 개수는 800개가 기준이다. 미샤 켓첼 편집장은 “학자들이 (기사) 편집에 대해 불평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며 “오히려 전통 미디어에서는 제공되지 않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 더 컨버세이션은 자체 CMS의 '가독성 지표'를 활용해 대중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사를 편집한다. 사진=노지민 기자
▲ 더 컨버세이션은 자체 CMS의 '가독성 지표'를 활용해 대중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사를 편집한다. 사진=노지민 기자

최근에는 어린이 독자 등 연령대가 낮은 독자들을 사로잡기 위한 콘텐츠도 제작하고 있다. ‘큐리어스 키드’(Curious Kid)는 일상 속의 과학 원리에 대한 어린이들의 질문에 답하는 코너다. “왜 울 때 눈물이 날까요?”, “왜 사람은 침팬지나 고릴라처럼 털이 나지 않나요?”, “벌레는 혀가 있나요?”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미샤는 “여러 방법의 독자 분석을 통해 독자층의 공백을 찾기 시작했고, 12~25세 연령층이 더 컨버세이션 콘텐츠를 읽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도시 바깥에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다가갈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큐리어스 키드’는 호주 공영방송 ABC와 협업해 팟캐스트로도 제작된다.

더 컨버세이션은 구글 애널리틱스와 더 컨버세이션 홈페이지를 이용해 매일 독자층을 분석한다. 연간 설문조사를 통해 세부 분석을 진행하기도 한다. 월간 독자 유입량과 도달률, 독자들의 성향, 성별, 연령 뿐 아니라 기사를 읽은 독자들이 콘텐츠를 공유하는 방식의 비율은 더 컨버세이션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한다. 미샤 켓첼 편집장은 “대학의 자금 지원을 받으려면 독자 규모와 다른 곳에 게재된 횟수, 댓글 등 정보가 중요하다”며 “콘텐츠 영향력이 커질수록 대학의 자금 지원과 학자들의 기고가 이어질 수 있다. 학자들은 그들의 연구 성과가 널리 퍼지는 걸 원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최대한 자유로운 콘텐츠 공유를 장려하는 반면 콘텐츠와 관련한 토론 등을 할 때엔 반드시 커뮤니티 표준과 참여 지침(Community standards and participation guidelines)을 준수해야 한다. 익명의 게시물, 모든 형태의 차별, 동의 없는 개인 정보 공유, 상업적으로 연결되는 링크 등은 더 컨버세이션에 의해 삭제된다. 구체적인 예시도 있다. 기사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이 기사는 형편없다(This article sucks)”고 말하면 삭제되지만 “나는 이러한 이유로 기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글은 가능하다. “당신은 멍청하다(You ar an idiot)”는 등 인신공격성 발언도 삭제된다.

미샤 켓첼 편집장은 “커뮤니티에 원칙이 있는 것은 높은 수준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건강한 토론은 좋지만 잘못된 정보나 증오·혐오가 퍼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 커뮤니티의 경우 글을 남기는 사람들 대부분이 연령대가 높고, 화에 차 있는 백인 남성들이다. 이들의 공격성은 여성 등 이용자들의 참여를 어렵게 한다”며 “더 컨버세이션은 모두가 안전하고 환영받는 공간을 제공하기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더 컨버세이션 사무실. 사진=노지민 기자
▲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더 컨버세이션 사무실. 사진=노지민 기자

미샤는 페이스북, 트위터, 스냅챗, 구글 AMP 등 더 컨버세이션 콘텐츠가 전해지는 채널이 단지 공유가 아닌, 소통 창구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지 광고만을 목적으로 소셜 미디어를 사용해선 안 된다. 더 컨버세이션은 항상 학자들에게 독자와 소통할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콘텐츠에 적합한 독자와 접촉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예술 관련 글을 트윗할 때와 의학 관련 글을 트윗할 때 목표 독자는 모두 다르다. 예컨대 혈액과 관련한 콘텐츠를 생산했을 땐 적십자(Red cross)와 협력해 정보가 필요한 이들에게 콘텐츠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비영리 매체이기 때문에 광고를 비롯한 수익 사업을 할 수 없는 더 컨버세이션으로서는 건강한 재정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늘 과제다. 미샤는 “자금은 항상 필요하다. 호주 더 컨버세이션을 운영하는 데만 매년 450만 호주 달러(한화 약 36억여 원)이 든다”며 “100만 달러는 정부에서 받았는데 최근 지원이 끊겨 새로운 펀딩을 알아보고 있고, 독자 후원이 70만 달러 정도이며 다양한 재단을 통해서도 도움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항상 어려운 일이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7년 간 같은 규모를 유지해왔다”고 밝혔다.

각국의 더 컨버세이션은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각 지사의 이사회가 별도로 구성되며 대학 등을 통한 지원 및 자금 마련도 해당 지사가 스스로 해야 한다. 호주 본사는 멤버십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 운영 모델을 공유할 뿐 재정적 지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외 지사들이 소프트웨어 유지비용 등을 위해 호주 본사에 소액의 라이선스 비용을 내야 한다. 미샤 켓첼 편집장은 “더 컨버세이션 설립을 희망하는 이들은 먼저 본사로 연락해온다. 한국에서도 관심 있는 이들이 있다면 언제나 환영한다”고 전했다.

더 컨버세이션은 얼마나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을까. 미샤 편집장은 “더 컨버세이션이 추후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 가디언처럼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미디어 네트워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전통 미디어와는 경쟁관계가 아닌 협력 관계”라고 강조했다. “가장 건강한 미디어 환경은 다양한 매체가 공존할 때”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이 기획 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 통역=장성인 (SungIn Jang, Melbourne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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