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한 장의 의병 사진으로 끝났다. 교과서에 실려 우리 눈에 너무 익숙하지만 의병 사진은 이게 유일하다.

이 사진은 영국 데일리메일 특파원이었던 맥켄지 기자가 1907년 경기도 양평군 지평 인근 야산에서 촬영했다. 종군기자였던 맥켄지는 러일전쟁이 일어났던 1904년과 1906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해 일제 침략상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러일전쟁 취재차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일제의 야만성을 목격한 뒤 영국으로 돌아가 ‘대한제국의 비극’을 써 전 세계에 한국을 알렸다.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마지막 장면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마지막 장면

영국 기자가 1907년 찍은 유일한 의병 사진

그는 1919년 3.1운동 소식을 듣고서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을 써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알렸다. 맥켄지는 1920년 10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국친우회 창립식에서 “한국의 독립은 한국민에게도 유익할 뿐 아니라 동시에 일본에도 유익하다. 일본이 한국을 노예로 삼고 동화정책을 쓰려고 토지와 재산, 자유를 빼앗는 등 온갖 악수단을 다한 것은 1912년 105인 사건으로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밝혔다.

‘미스터 션샤인’의 마지막 대사는 1907년 실제 맥켄지 기자와 의병들의 대화로 채워졌다. 한겨레신문은 2일자 18면에 드라마 속 의병 사진과 맥켄지 기자가 찍은 의병 사진을 동시에 소개하면서 ‘이름없는 의병을 되살리다, 찬란한 션샤인’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 한겨레신문 18면
▲ 한겨레신문 18면

조선일보, ‘무지개 카스텔라’ ‘치즈빵’ 200만개 팔렸다

조선일보도 2일자 21면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종방을 평가하면서 ‘미스터 션샤인, 귀하 덕에 석달이 즐거웠소’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는 구한말 능동적인 여성상을 부각시켜 18.1%의 높은 시청률로 종영했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조선일보는 극중 인물들의 “단순한 캐릭터 구성은 아쉬웠다”고 분석했다.

▲ 조선일보 21면
▲ 조선일보 21면

조선일보는 이 드라마가 ‘사극은 PPL의 무덤’이란 편견을 깼다고도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드라마 속 가배당과 불란셔 제빵소의 무지개 카스텔라가 날개 돋힌 듯 팔렸다는 상업성도 부각시켰지만 의병 사진은 언급하지 않았다. 드라마의 큰 줄거리가 항일 의병의 뜨거운 투쟁과 사랑이었는데도.

경향신문, 김명수 대법원 예산 낭비 지적

▲ 경향신문 1면
▲ 경향신문 1면
경향신문이 김명수 대법원이 영상재판 등 전자법정을 추진하면서 개당 17만원짜리 장비를 225만원씩에 사들였다고 단독 보도했다. 특히 경향신문은 비슷한 수준의 국산제품이 있는데도 굳이 비싼 외국산을 고집해 불필요한 예산을 낭비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2일자 1면에 ‘의문투성이 대법 영상재판 사업’이란 제목의 보도에 이어 3면에도 ‘40만원 국산 대신 400만원 미국산 프로그램…업계서도 놀라’라는 제목의 기사로 김명수 대법원을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대법원이 비싼 외국산 영상재판 장비를 구입해 놓고도 지난해 3월 이후 지금까지 영상재판은 10건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 3면
▲ 경향신문 3면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