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황창규 회장과 경영진에 협력적 관계를 유지해온 KT노동조합(위원장 김해관)이 돌연 황창규 회장과 KT 사측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노조는 경영과 황 회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수사 등 이른바 ‘CEO리스크’를 지켜보면서 전면투쟁도 불사할 방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2014년 황창규 회장 부임후 이뤄진 대규모 명예퇴직 결정 과정에서 조합원의 의사를 묻지 않은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하라는 최근 대법원 판결과 관련이 있다는 의심도 나왔다.

한국노총 소속의 KT노조는 지난달 21일 ‘이제 상생의 노사관계는 의미가 없으며 노동조합은 원칙대로 실천행동에 나설 것이다!‘라는 성명을 내어 “회사의 경영리더십에 대한 신뢰훼손과 상생의 노사관계가 깨져가는 상황에 대해 분개하며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최근 KT의 시가총액이 3위 업체와 역전되었다는 소식에 많은 조합원이 상실감과 자괴감에 빠진데다 황 회장이 대통령의 북한 방문단에 제외되었다는 뉴스를 보고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가중”되고 있다며 “황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의 무사안일, 제 한 몸 돌보는 데만 신경 쓸 뿐 정작 회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황창규 회장이 아직도 각종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하지 못해 이른바 경영 리스크를 갖고 있는데 이럴 때 일수록 영영 안정을 위한 상생의 노사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했다”면서 “그런데 노동조합이 크게 분개할 수밖에 없는 것은 올해 단체교섭 결과에 대해 일부 경영진은 ‘퍼주기 교섭이었다’고 폄하하는 등 이행의지에 대한 경영진의 구태의연한 작태 때문”이라고 썼다.

노조는 “회사는 먼저 현재 경쟁시장에서 선도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과 확실한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며 “노사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부터 바꿔야 할 것이며, 노동조합의 정당한 요구를 해태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제 상생의 노사관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앞으로는 원칙적인 노동조합의 실천행동으로 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KT노조, 황창규에 ”실천행동 나설 것…마지막 경고”

하지만 KT 노조는 직접적인 요구사항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최장복 KT노조 중앙위원회 조직실장은 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직접적인 요구사항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조합이 (과거) 회사가 경영적으로 어렵다 해서 같이 해왔는데…최근 조합원 총회를 통해 현장에 있는 조합원만 보고 하겠다고 선을 그은 의미”라고 설명했다.

▲ KT 민주동지회 등 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3월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우면동 KT연구센터에서 열린 제36기 정기 주주총회가 끝난 뒤 주총장을 떠나는 임원 차량을 막아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KT 민주동지회 등 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3월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우면동 KT연구센터에서 열린 제36기 정기 주주총회가 끝난 뒤 주총장을 떠나는 임원 차량을 막아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장복 조직실장은 LG유플러스에 시가총액이 밀린 것에 “누군가 책임져야 하지 않느냐. 상당히 자존심도 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황 회장이 방북단에서 제외되자 “정부 추진 사업들이 잘 안되는 것 아닌가 걱정스러워서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천행동이 무엇인지에 대해 최 실장은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단체행동을 하는 것 밖에 없다”며 “앞으로 지속적, 일상활동 통해 조합이 요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황창규 회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수사와 관련해 최 실장은 “CEO가 말끔하게 하면 좋은데, 법 위반을 했으면 그 대가를 치를 것이고, 아니면 정리돼야 하는데. 계속 미뤄지고 있다. 리스크가 제거되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황창규 체제에 대한 전면투쟁 선포냐는 질문에 최 실장은 “앞으로 지켜볼 것”이라며 “경영상황을 전반적으로 지켜보는 것 뿐 아니라 리스크가 있는지, 검찰 수사가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이유?…황창규-노조 대규모 명예퇴직, 대법 손배결정 책임론

그러나 KT노조는 황 회장 체제에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기에 이번 강경투쟁 성명이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황 회장이 차은택의 인사청탁을 그대로 받아들여준 사실이 헌법재판소 결정문에 등장했지만 KT노조가 황 회장에 물러나라는 목소리를 낸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주총을 앞두고는 심지어 황 회장의 연임에 반대는커녕 사실상의 지지로 받아들여질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KT노조가 성명을 발표하기 하루 전 임시조합원총회를 열어 2014년 대규모 명예퇴직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정윤모 현 한국노총 IT사무서비스연맹 위원장의 손해배상 책임을 면책하는 안건을 통과시킨 사건과 연결짓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7월 판결문에서 정윤모 전 위원장이 2014년 4월8일 KT 사측의 한호섭 사업지원실장과 조합원 8304명의 명예퇴직 합의서 서명을 하기 전에 조합원들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조와 함께 전현직 조합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이후 KT 내부의 민주동지회와 KT노조 본사본부 등은 KT노조 본조의 책임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오히려 KT노조는 지난달 20일 임시조합원 총회에서 정 전 위원장의 위자료 지급 의무를 면책해주는 안건을 80%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른 비판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정연용 KT노조 본사본부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대법원 판결은 노조가 당시 조합원 의사 묻는 총회를 거치지 않은 불법행위를 했으므로 현 노조 집행부, 당시 위원장, 사업지원실장은 조합원에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것이었는데, 노조는 이번 임시조합원총회를 열어 당시 노조위원장 정윤모에게 면책권을 주는 말도 안되는 투표를 했다”며 “모든 책임은 조합원에 뒤집어 씌우고 실제 책임자엔 면책권을 줬다. 본사본부에선 반대투표가 많았다. 이번 성명은 그런 분노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정연용 본사본부위원장은 “현 노조는 이미 지난해 황창규 회장 재임 때부터 전폭지지해왔고, 황 회장과 전현직 임원들의 불법행위, 박근혜 부역행위에도 노조로서 명확한 역할을 하지 않았고, 정치자금법 수사 때도 마찬가지였다”며 “그러다 느닷없이 상생적 노사관계를 파탄냈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만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KT 노조 중앙위원회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최장복 KT 노조 중앙위 조직실장은 “정윤모 전 위원장과 사업지원실장의 명예퇴직 서명 건의 경우 당시 두 사람이 서명하면서 사익 추구한 것도 아니고, 해당 위치에 있던 신분상 이유만으로 금전적 피해를 준다고 하면 중앙 간부들이 향후에도 일하기 힘든 것 아니냐, 면책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해서 찬반을 물었더니 80% 찬성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 KT 노동조합이 지난달 21일 성명을 통해 황창규 회장을 향해 더이상의 상생 노사관계는 없다며 실천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진=KT노조홈페이지
▲ KT 노동조합이 지난달 21일 성명을 통해 황창규 회장을 향해 더이상의 상생 노사관계는 없다며 실천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진=KT노조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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