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사관학교가 불법촬영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가해 생도를 서둘러 퇴교시켜 면피해왔다는 주장이 나왔다. 퇴교 생도에 대한 수사와 형사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군인권센터는 최근 해군사관학교 남생도가 벌인 불법촬영 사건 처리 방식을 두고 “해사는 수많은 군내 성범죄를 은폐하는 양상을 그대로 밟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이한열 기념관에서 열린 ‘해군사관학교 불법촬영 사건 처리 관련 기자회견’에서다.

▲ 군인권센터 방혜린 상담지원 간사(여군인권 담당·해사 66기)가 1일 오전 ‘해군사관학교 불법촬영 사건 처리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방혜신 간사는 본인 재학 시절에도 불법촬영 사건은 잦았으며, 학교 측이 이를 무마해왔다고 설명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군인권센터 방혜린 상담지원 간사(여군인권 담당·해사 66기)가 1일 오전 ‘해군사관학교 불법촬영 사건 처리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방혜신 간사는 본인 재학 시절에도 불법촬영 사건은 잦았으며, 학교 측이 이를 무마해왔다고 설명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해군사관학교 3학년 남생도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10월부터 1년 간 11차례에 걸쳐 여생도 숙소를 불법촬영해왔다. 범행은 지난 11일 생도들이 숙소를 청소하다 범행 스마트폰을 발견하면서 발각됐다. 스마트폰은 ‘말하면 퍼뜨려버리겠다’고 쓰인 흰 A4 용지에 말아져 여자 화장실 변기 뒤에 설치돼 있었다. 이 사실은 지난달 20일 JTBC 보도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최소 7명으로 확인됐다.

군인권센터는 “해사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없던 일로 하자’며 피해자를 설득하고, 가해자에게는 사건과 관계없는 사유를 붙여 조용히 퇴교시켜왔다”고 밝혔다. 보도 다음날인 21일 해사는 교육위원회를 열어 김씨를 ‘사관생도 생활 예규’ 위반 사유로 퇴교조치했다.

군인권센터는 “해사는 ‘불법카메라로 퇴교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밝혔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불법촬영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학교가 가해자 퇴교로 무마해왔다는 지적이다. 해사 66기 출신인 방혜린 상담지원 간사(여군인권담당)는 “제가 2008년에서 2012년까지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남생도가 여생도 숙소에 수차례 침입해 USB메모리만 한 몰카를 설치해 촬영한 사건 △남생도가 세탁실을 돌며 여생도 속옷을 훔친 사건 △남생도가 밤에 잠긴 여생도 방문을 따고 무단침입한 사건 등 비슷한 수법의 범죄는 많았다”고 말했다.

이들 가해자는 수사도, 처벌도 받지 않았다. 방혜린 간사는 “신고 절차는 학교 내에서 정식으로 이뤄졌지만, 학교에서 (수사나 처벌 등) 사건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가해자를 퇴교시키는 것으로 정리했다”며 “명목은 주로 ‘학칙 위반’이나 ‘태도 불량이었다”고 했다. 개인 경험 외에 사관학교 내 불법촬영 사건이 드러난 바는 없다. 군인권센터는 그 배경에도 해사 측의 면피 조치가 있다고 보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만약 이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면 (해사는) 마찬가지로 무마하고 넘어갔을 것이 자명하다”고 했다. 해사는 21일 가해자를 형사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으나, 가해자가 퇴교한 뒤 사건은 민간경찰로 이첩됐다.

군인권센터는 퇴교 조치가 해사의 책임회피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사관생도는 본래 군인사법과 군형법을 적용받는데, 해사 측은 생도가 가해자로 수사받는 일을 부담스럽게 여긴다는 설명이다. 퇴교 후 사건은 무마되거나 드물게 민간경찰에 이첩되고, 해사는 책임에서 벗어난다. 방혜린 간사는 “만약 일반병사가 여군 휴게실에 들어갔다면 군 검찰이 기소해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군인권센터는 “진행 절차에는 해군사관학교장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사실상 교장이 수위를 결정한다”며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가 실태를 파악하고 사관학교 내 신고 및 처리절차를 다시 세우라고 요구했다. 부석종 해군사관학교장(해사 40기)에 대해 불법촬영 성범죄를 방치한 혐의로 형사고발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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