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을 거부합니다’란 발표에 악플(악성댓글) 8900개가 쏟아졌다. ‘빨갱이, 종북’ ‘그냥 죽어라’ ‘관상이 일베’ ‘니 부모 X져도 국가 원망마라’ 등 댓글 90% 이상이 악플이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진영(가명·30대)씨는 그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댓글 8900개는 전체기사 60건 중 1건만의 얘기다.

악플은 병역거부 사실을 공개한 모든 병역거부자가 겪는다. 대개는 감내하고 말지만, 불특정다수의 근거없는 비난에 정신적으로 버거운 게 사실이다. 이씨도 이유없는 두근거림과 과호흡 증세로 병원을 다녔다. 다중밀집장소를 꺼리기 시작했고 불면증에도 시달렸다.

지난 8월 마지막 민사재판이 끝났다. 이씨는 악플 3000여건을 모욕·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대부분 기각됐지만 어림잡아 100여명 정도는 기소돼 벌금형 등을 받았다. 이씨가 악플을 고소한 이유는 단지 자신의 피해 보상에 있지 않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잘못된 비난을 거둬달라’는 최소한의 분노이면서 모욕이 잘못된 행동임을 확인받기 위해서다.

▲ 지난 9월27일 서울 종로구 인근에서 만난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진영(가명)씨. 사진=손가영 기자
▲ 지난 9월27일 서울 종로구 인근에서 만난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진영(가명)씨. 사진=손가영 기자

“타인 향한 언어적·무기적 폭력 행사 거부”도 사유

이씨는 2014년 12월23일 ‘102보충대’가 아닌 감옥을 택했다. 그는 병역거부 입장문을 내고 “내 행동이 앞으로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국가권력에 대한 불복종과 평화주의 가치가 이씨가 병역을 거부한 이유였다. 그는 8년 간 용산참사, 세월호 참사, 각종 노동쟁의 및 빈곤지역 현장 등을 접하며 “폭력의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 병역 의무 불복종을 택했다. “폭압적 위계질서 속에서 타인에게 언어적·무기적 폭력을 행사하거나 그걸 정당화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컸다.

교도소는 군대보다 더 사회와 단절된 곳이다. 바깥 바람과 햇빛은 하루 30분만 쐴 수 있다. 방이 좁아 서로의 발을 겨드랑이에 낀 채 지그재그로 잠든다. 폐쇄적인 만큼 수용자 7~8명 사이 강한 위계서열이 만들어져 낮은 서열 수용자는 불합리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가족·지인들과 교류하지 못하는 고통도 있다. 그러면서 노역은 쉬지 않는다. 이씨는 약품관리, 노인사동 도우미, 원예반, 직업교육반 도우미 등을 맡았다. 그는 “악플 다는 사람들은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을 안 가는 줄 아나 보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악플 이유는 “대한민국 남성이니까”

출소 후 한 달에 한 번씩 민사재판을 방청한 이씨는 족히 80여명의 악플러를 만났다. 모두 “어느 길거리에서나 만날 법한 평범한 이들”이었다. 여성은 한 명도 없었고 대부분 30~50대 남성이었다. 제주, 목포, 부산 등 지역도 다양했다. 현직군인도 있었다. 이들은 “잘못했다”며 선처를 바라면서도 ‘병역거부에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법정에선 “대한민국 군대에 다녀온 남자라면” 이란 말이 자주 나왔다. 현직군인 홍아무개씨는 “대한민국 군대에 다녀온 남자라면 이씨의 기자회견을 보고 화가 안나는 사람이 없다”며 “지금도 전·후방 각지에서는 부모님과 그리운 집을 떠나 열심히 복무하는 젊은이들이 있다”고 밝혔다.

▲ 이진영씨(가명)가 감옥에서 쓴 성찰문 중 일부.
▲ 이진영씨(가명)가 감옥에서 쓴 성찰문 중 일부.

“얼굴보니 군대 가봤자 뒤지게 맞다 죽거나 자살하겠다. 차라리 감방이 사는 길이다.” “병역거부자는 강제로 성전환 수술을 시켜라.” “저런 걸 낳은 부모가 불쌍하다.” 입에 담기 힘든 비속어부터 부모 모욕까지 악플은 다양했다. 49살 남성 안아무개씨는 “저런 XX는 죽창으로다가… 살만 드륵드륵 쪘고만…개XX네”라고 썼다가 벌금 3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재밌는 건 재판부도 군대 이야기를 했다”고 덧붙였다. 각기 다른 재판이었으나 “나도 육군 병장 만기 전역했는데”라며 운을 뗀 판사가 적지 않았다.

‘당연히 화가 난다’는 악플러 해명에 이씨는 “이들 분노는 수평적 폭력에 가깝다”고 했다. 수평적 폭력은 ‘억압의 근원이 아니라 만만한 상대에게 억눌린 화를 쏟아내는 현상’을 뜻한다. 그는 “억지로 군대에 가지만 보상은 적다. 국가가 내 권리를 침해하거나 억압하는 상황에서 분노를 국가로 돌리는게 아니라 계속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게 돌린다”고 지적했다.

병역거부에 대한 오해도 크다. 병역거부자들은 1년6개월 징역형을 받는다. 병역법 5조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엔 대체복무 길이 열렸다. 대체복무는 △노인·장애인 돌봄지원 등 사회서비스 △의무소방 등 공공서비스 복무가 가능하다. 악플 대부분은 “군대만큼 힘드냐” 비난한다. 실제로 중증장애인 목욕활동, 장애아동 교육활동을 하는 이씨는 “돌봄노동은 한번씩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다. 악플러도 실제로 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며 “대체복무가 악용된다는 우려는 그래서 기우”라고 말했다.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와 충돌한다. 병역거부자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로만 알려졌지만 사실은 다양하다. 이씨는 형이 군 복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병역을 거부하고 교도소에 온 수감자도 봤다. 헌법재판소는 이들에게 대체복무 선택지를 주어야 한다고 봤다. 다수 악플은 이 논의를 “군대 기피”로 바꿔버린다.

이씨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시작으로 병역거부를 얘기하는 사람도 더 많아지고 논의의 범위가 더 넓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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