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인쇄를 담당하는 국민 PRINTING&BUSINESS(이하 국민P&B, 대표 김의구) 서울 가산동 공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국민일보가 지면 신문 부수를 대폭 줄이고 신문 인쇄를 중앙일보 측에 맡기기로 해서다. 국민P&B 노조는 “구성원들과 상의도 없이 공장폐쇄를 결정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주주 국민문화재단은 국민P&B 구성원 전원을 국민일보 직원으로 끌어안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일보는 각 지국에 실질 유료부수를 조사해 무가지 등을 없애는 ‘자율증감제’를 지난 7월부터 실시했다. 이에 국민일보 지난 6월 기준 18만부를 넘게 발행했지만 7월부터 대폭 감부했다. 지면시장이 침체하면서 2010년 이전에 30만 가까이 찍던 국민일보는 2011년 20만을 유지하다 최근 18만까지 줄었지만 이번처럼 급격하게 감소한 건 처음이다. 사실상 지면 확장을 포기하는 전략이다.

▲ 국민일보
▲ 국민일보

국민일보는 오는 12월 창간 30주년을 맞아 신문 인쇄를 중앙일보 측에 맡기면서 기존 USA투데이판형에서 베를리너판형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이 시기에 맞춰 국민P&B도 문을 닫는다는 게 대주주인 국민문화재단(이사장 박종화)의 계획이다.

김의구 국민P&B 대표는 2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최고경영자(조민제 국민일보 회장·국민문화재단 이사) 쪽에서 이번 결정을 하며 ‘직원들 피눈물 나게 하지 말라’는 의지를 확실하게 보였다”며 “고용승계 의지는 확실하다”고 말했다.

국민P&B 대표는 국민문화재단 인사였는데 지난 11일 국민일보 제작국장이자 신문사내 사정에 밝은 김 대표로 교체했다. 국민P&B 직원들이 국민일보로 전직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는 의도다.

공장폐쇄 반대하는 국민P&B 구성원들

재단에서 전원 고용승계를 내걸었지만 국민P&B 구성원들은 불안하다. 그동안 인쇄 노동자들이 20년 가까이 수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김형수 전국언론노동조합 P&B지부장과 지난달 20일과 지난 27일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 국민일보는 오는 12월 창간일에 맞춰 중앙일보로 대쇄를 맡기며 중앙일보와 같은 베를리너판형으로 판형을 바꿀 예정이다.
▲ 국민일보는 오는 12월 창간일에 맞춰 중앙일보로 대쇄를 맡기며 중앙일보와 같은 베를리너판형으로 판형을 바꿀 예정이다.

과거엔 인쇄노동자들도 국민일보 본사 직원이었다.

고통의 시작은 1999년 6월, 68명을 KPP로 분사했다. 이들은 과반이상이 참여한 노조를 만들었다. 곧 ‘노노갈등’이 시작했다. 2000년 2월 스포츠투데이를 창간하면서 서울역과 대구에 공장을 지었다. 경영진은 “말 잘 듣는 사람은 서울역 공장으로 보내고 안 듣는 사람은 구로공장”에 남겼다. 결국 2000년 12월 구로공장을 폐쇄하면서 KPP도 사라졌다. 구로공장은 중앙일보가 인수했다. 일부 인원이 7개월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받고 퇴사했다.

2000년 10월, 남은 50여명은 서울역으로 이동해 넥스트미디어코퍼레이션 직원이 됐다. 국민일보·스포츠투데이·파이낸셜뉴스 지면을 만들었다. 이들은 포괄임금제를 규정한 ‘연봉고용계약서’를 썼고 월 50시간 무료노동을 감내했다. 1년마다 계약서를 쓰는 불안한 신분이었다. 3명이 해고됐다. 2003년엔 공장장이 스트레스로 사망해 국민일보 회사장을 치르는 일도 있었다.

회사의 이름만 바뀌어도 노동자들은 두려워했다. 넥스트미디어코퍼레이션은 2002년 가을 ‘기독문화진흥’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2003년에는 ‘국민판매’로 2004년에는 ‘국민인쇄’로 2009년에는 국민P&B로 총 6번 분사와 전적을 했다. 2005년 스포츠투데이를 폐간했고, 2013년 대구공장을 폐쇄했다. 과정마다 인원 감축이 있었다. 나가라는 말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회사를 떠나는 동료들이 생겼다.

당시 일부 간부가 노동자들을 구타하는 일도 있었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국민인쇄’ 시절인 2007년 5월 다시 노조를 만들었고 2009년엔 문제가 된 인사를 내보냈다. 노조는 무료노동을 월 50시간에서 41시간으로 줄였고 2012년경에는 포괄임금제 자체를 없앴다.

▲ 지난 12일 서울 가산동 국민P&B 사옥 앞에서 열린 '국민P&B 생존권 사수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김형수 언론노조 국민P&B지부장(왼쪽)이 공장폐쇄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유튜브 갈무리
▲ 지난 12일 서울 가산동 국민P&B 사옥 앞에서 열린 '국민P&B 생존권 사수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김형수 언론노조 국민P&B지부장(왼쪽)이 공장폐쇄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유튜브 갈무리

꼭 공장을 없애야 하나

이달 초 국민일보와 국민P&B에서 판형변경과 중앙일보로 대쇄 결정을 알리는 ‘설명회’가 있었다. 아예 인쇄노동자를 없애겠다는 통보였다. 지난 12일 서울 가산동 국민P&B 사옥 앞에서 열린 ‘국민P&B 생존권 사수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김 지부장은 “결코 과거처럼 당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공장폐쇄방침을 철회하고, 구성원과 상의 없이 결정한 책임자의 사과 등을 요구했다.

지난 20일부터 국민P&B지부와 상급단체인 언론노조는 사측과 교섭을 시작했다. 이날 교섭에서 김 지부장은 “10년 간 한솥밥을 먹은 송인근 전 P&B 대표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인쇄노동자들이 그간 열악한 환경을 딛고 일했는데 송 전 대표가 공장폐쇄만 알린 채 물러났기 때문이다. 노조는 ‘책임회피’라고 비판했다.

또한 정말 공장을 없애야만 하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요구했다. 노조는 재단 측에서 아직 가산동 공장부지 활용계획이 없고, 15년 정도 수명이 남은 윤전기를 고철로 매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다수 신문사가 윤전기를 2000년 이전에 구입한 반면 국민일보를 비롯해 조선일보·중앙일보 정도가 2000년 이후 윤전기를 구입했다. 5~10년 뒤엔 이들 신문사가 윤전기 수명이 다한 타사 신문까지 제작할 수 있다는 게 노조의 관측이다.

▲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국민P&B 사옥. 사진=장슬기 기자
▲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국민P&B 사옥. 사진=장슬기 기자

사측은 신문 인쇄시장이 침체하면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타사 신문 중 국민일보 판형과 같은 곳이 없어 향후 수익성이 보이지 않고, 가산 공장을 폐쇄하고 중앙일보에 대쇄를 맡길 경우 큰 수익이 날 거라는 게 김의구 국민P&B 대표의 설명이다.

일부 서운한 부분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 구성원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대표는 “(대쇄 등을) 협상 중이었고 현행체제를 유지할 가능성도 있어서 구성원들에게 섣불리 얘기할 수 없었다”며 “결정이 나자마자 직원들에게 설명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측에서 국민P&B 인력 활용에 대해 결정한 건 없다. 김 대표가 “구성원들과 일대일 면담을 해 최대한 국민일보에서 박탈감 없이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김 지부장은 “20~30년 간 기계 만진 사람들이 과연 신문사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언론노조에서도 신문인쇄사업장 폐쇄는 처음 겪는 일이다. 국민일보 인쇄노동자들은 분사 이후 돌고 돌아 20년 만에 신문사로 돌아가게 될까. 간다면 이들은 윤전기 없는 신문사에서 무슨 일을 담당할까. 또 다른 노노갈등의 시발점이진 않을지, 국민P&B 조합원들은 또 한 번 초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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