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들어가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것들이 뭔 일자리가 없다 그러나? 죽음을 피해 목숨 걸고 넘어왔다며?” 제주에 머무르는 예멘인 취업 실태를 다룬 조선일보 온라인판 르포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22일 “[르포]제주어민 "예멘인들 얘기도 하지 말라" 어민과 난민은 왜 등돌렸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예멘인들이 “거친 ‘바닷일’은 해 본 적도, 할 생각도 없다”며 어선원을 그만두거나 나태하게 일하는 탓에 예멘인 취업자가 급감했고, 선주들은 손해를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사태의 근본적인 문제가 시민단체의 과도한 지원”에 있다고 밝혔다.

기사는 예멘인 한 사람의 반론을 실었다. “이들은 모국(母國)에서 공직이나 서비스 분야 등에 종사했다”며 “한국 정부가 도움을 준 건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 곳에 물고기 잡으러 온 게 아니다”라는 한 예멘인의 말을 인용했다.

기사는 누리꾼의 이목을 끌어모았다. 당일 포털 네이버에서 사회 부문 ‘댓글 많은 뉴스’에 올랐다. 28일 오후 3시 현재 기사에 6526건의 댓글이 달렸다. 대다수가 “난민이 아니라 여행 온 사람 같다”, “돈 받아가며 떵떵거리며 살 줄 알았나” 등 예멘 난민신청자들의 게으름을 탓했다.

▲ 지난 22일 네이버 포털에 올라온 조선일보 기사 “[르포]제주어민 "예멘인들 얘기도 하지 말라" 어민과 난민은 왜 등돌렸나”는 당일 오후 사회면 ‘댓글 많은 뉴스’에 올랐다. 네이버 뉴스 갈무리
▲ 지난 22일 네이버 포털에 올라온 조선일보 기사 “[르포]제주어민 "예멘인들 얘기도 하지 말라" 어민과 난민은 왜 등돌렸나”는 당일 오후 사회면 ‘댓글 많은 뉴스’에 올랐다. 네이버 뉴스 갈무리

예멘인 어선원이 이탈하는 근본 원인이 이것 때문일까? 예멘인 취업률이 지난 6월 대비 절반으로 줄고, 어선원 취업률은 급감한 까닭은 단지 예멘인이 “‘바닷일’은 해 본 적도, 할 생각도 없다”는 데 있을까? 해당 기사가 언급하지 않은 몇몇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 지난 22일 네이버 포털에 올라온 조선일보 기사 “[르포]제주어민 "예멘인들 얘기도 하지 말라" 어민과 난민은 왜 등돌렸나”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들. 대부분이 예멘인의 게으름과 한가함을 탓한다. 네이버 뉴스 갈무리
▲ 지난 22일 네이버 포털에 올라온 조선일보 기사 “[르포]제주어민 "예멘인들 얘기도 하지 말라" 어민과 난민은 왜 등돌렸나”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들. 대부분이 예멘인의 게으름과 한가함을 탓한다. 네이버 뉴스 갈무리

1. 어선원은 원래 이탈률 높다

어선원은 굳이 예멘인이 아니더라도 원래 이탈률이 높다. 1~2주일씩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야 하는 극한 업종이라서다. 지난 6월 법무부가 발간한 2017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를 보면 지난해 선원취업(E-10) 비자를 지닌 외국인 가운데 37.3%(1만6069명 중 5993명)가 직종을 이탈한 미등록체류 상태다. E-10 비자 보유자처럼 고용허가제를 거쳐 한국어시험을 치르고 입국 전후에 직무교육을 받고 취업하는 이들도 상당수가 직종을 이탈했다.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선원 일을 한다고 알고 들어온 사람들도 못 버티는 게 선원일”이라고 했다.

한국인 선원은 외국인보다 적고 그나마 줄어드는 추세다.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역대 한국선원통계를 보면 한국인 연근해 어선원은 2008년 1만 6375명에서 2018년 1만 4020명으로 해마다 꾸준히 줄었다. 11년 사이 10.3%가 줄었다.

김사강 연구위원은 “젊은 한국인들은 이곳에 취업하지 않으려 하는 바람에 한국인 선원은 대부분 오랫동안 일해온 50~60대 중고령자들”이라며 “전국적으로 연근해선 선원 10명 가운데 5~6명은 외국인”이라고 했다. 

제주 난민인권을 위한 범도민위원회(범도민위) 신강협 언론팀장은 “선주들이 민감한데도 예멘 난민을 고용했던 것도 인력난 탓”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직종의 성격은 고려하지 않고 ‘선주들이 애써 고용해줬더니 예멘인이 도망갔다’고 보도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범도민위는 제주도 33개 종교‧사회단체 및 정당이 결성한 최대 난민인권단체다.

▲ 22일 네이버 포털에 올라온 조선일보 “[르포]제주어민 "예멘인들 얘기도 하지 말라" 어민과 난민은 왜 등돌렸나” 기사 페이지 갈무리
▲ 22일 네이버 포털에 올라온 조선일보 “[르포]제주어민 "예멘인들 얘기도 하지 말라" 어민과 난민은 왜 등돌렸나” 기사 페이지 갈무리

제주 토박이인 신강협 팀장은 “실제 선주들도 노동자들 이탈에 익숙하다”고 했다. 신 팀장은 “외국인 노동자가 도망하지 못하도록 여권을 선주가 가지고 있기도 한다”며 “다만 예멘 난민의 경우 사회적 주목도가 높아 선주들이 쉽사리 그렇게 하진 않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예멘인은 한국어를 모르고 문화 차이도 큰 데다 사전교육을 받지 않은채 어선원으로 투입된다. 그런 만큼 이탈 가능성은 더 높다. 신 팀장은 “고용허가제로 온 이들은 언어교육을 받아 항의라도 하는데, 예멘인들은 맨몸으로 바다에서 며칠 동안 버틴다. 애당초 이들이 적응하기 힘들리란 것은 예상되는 일”이라고 했다.

2. 외국인 선원의 노동조건은 특히 취약

이주노동자에 더 혹독한 노동조건과 급여제도도 외국인선원 이탈에 일조했다. 한국인 선주‧선원은 실적에 따라 추가로 인센티브를 받지만, 예멘인을 포함한 이주노동자는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다.

연근해어선 한국인 선원 평균임금은 371만원이다(지난 5월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2018년 선원통계연보). 예멘인을 비롯한 외국인 선원이 받는 임금은 평균 160만원으로, 한국인의 43.1%다. 한국인 선원 최저임금인 198만 2340원보다도 한참 밑이다.

외국인 선원은 성과급에서도 제외된다. 노동시간 제한이 없고, 시간외수당 등이 인정되지 않는 원양산업의 특성상 한국인 선원들은 어획량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다. 김성인 범도민위원회 위원장은 “많은 경우 어선원 예멘 난민이 받는 임금은 150만원”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에 불합리한 임금구조 문제는 기존 언론도 지적한 바 있다.

이주민‧난민인권단체 관계자들은 어선원에 취직한 예멘인이 폭행 당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김성인 위원장은 “난민신청자들은 심사 중이라서 폭행 당해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MBC는 지난 6월21일 “15시간 동안 일하고, 음식도 안 줬다. 물고기로 얼굴을 때렸다”며 노동착취를 호소하는 예멘인 사연을 전했다.

김사강 연구위원은 “선원의 거친 노동환경과 불합리한 임금구조는 옛날부터 있었다”며 “예멘 난민들이 이를 겪게 되면서 이제야 주목을 받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 지난 6월21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갈무리
▲ 지난 6월21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갈무리

3. ‘근본 문제’는 법무부의 출도제한 조처다

기사는 예멘인들이 직장을 이탈하는 근본 원인을 시민단체의 ‘과도한 지원책’에서 찾았다. 시민단체가 의식주를 해결해주다 보니 예멘인들이 일할 필요 없게 됐다는 얘기다.

난민인권단체들이 먹을 것, 갈 곳 없는 난민들에게 긴급구호 형태로 숙소와 식사를 지원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강협 팀장은 ‘(범도민위가) 조건 없이 돈을 지원하거나 무료숙소를 제공하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이들이 제공하는 숙소에는 난민 150여 명이 묵는다. 그러나 의존을 줄이고 자립을 돕고자 노동이나 공익활동을 한 이들에게 작게나마 급여를 제공하고, 숙소비를 받는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난민신청자를 제주도에 묶어둔 게 근본 원인이라고 말한다. 한국정부는 지난 4월 출도 제한 조처로 예멘 난민신청자 거주지를 제주도로 제한했다. 본래 난민신청자가 받는 기타(G-1) 비자는 이동 지역을 제한하지 않는다. 이 조처는 한국이 가입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26조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지적받았다.

김사강 연구위원은 “정부가 출도를 제한하는 바람에 500여명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고, 이들의 취업은 어업‧농업‧요식업에 한정됐다”며 “이들이 제주도에 묶이지 않았다면 다른 지역으로 가 스스로 취업해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인 범도민위원회 위원장은 “문제는 초창기 예멘 난민 콘트롤 타워도 없었고, 정부가 난민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서비스를 통합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제주도에 머무는 20대 예멘 난민신청자 아흐메드(가명)씨는 기사 내용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아흐메드씨는 “나는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데, 보스(고용주)들은 예멘인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한국인이나 중국인보다 임금이 낮은데도 무엇이든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함께 일하는 친구가 선원 일을 했는데, 그는 당시 16시간, 18시간씩 일을 해야 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예멘인들이 선원 일을 그만둔 건 게을러서가 아니라, 어업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