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조선일보 기획보도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가 최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 정부·여당 주요 인사들이 ‘통일이 미래다’ 기획보도 제목을 묶은 사진을 SNS에 게재했고 누리꾼들은 이때와 비교해 논조가 달라진 조선일보를 비판하고 있다. 

“南北통합 땐 대륙과 연결된 6000조원 자원강국”(2014년 1월2일자 4면), “통일비용 겁내지만… 혜택이 倍 크다”(2014년 1월6일자 1면), “北관광시설 4조 투자하면 年40조 번다”(2014년 1월14일자 1면), “통일 땐 5000㎞ 세계 최대 산업벨트 탄생할 듯”(2014년 1월24일 5면) 등 조국 수석이 SNS에 게시한 조선일보 기사들은 남북통일로 기대되는 경제효과를 부각한 것들이다.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24일 공유한 조선일보 기획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 제목 모음 사진. 사진=조국 민정수석 페이스북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24일 공유한 조선일보 기획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 제목 모음 사진. 사진=조국 민정수석 페이스북
어느 때보다 남북 경제 협력과 한반도 평화, 나아가 통일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문재인 정부이건만 조선일보가 현 정부 들어 쏟아낸 보도는 ‘반평화’와 ‘냉전 이데올로기’를 부추기고 있다. 

지난 20일 주요 일간지들이 ‘영변 핵시설 폐기 용의’를 명시한 남북 정상의 ‘9·19 평양공동선언’을 주목할 때, 조선일보는 1면 제목을 “김정은 ‘핵 없는’ 한마디에… 공중정찰·해상훈련 포기”라 뽑고 “국가 안보를 사실상 포기하는 조치”라는 야당 주장에 힘을 실었다. 사설에선 “비핵화 진도가 이처럼 지지부진한 데 반해 평양선언에 담긴 남북 경협 조치들은 급발진을 앞둔 모습”이라고 우려했다.

평양 시민을 상대로 유례없는 연설을 한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선 “스스로를 ‘남쪽 대통령’이라고 했는데 대한민국은 이렇게 국호 아닌 ‘방향’으로 불려야 할 나라가 아니다. 김정은을 협상 상대자로 예우할 수는 있지만 수많은 반인도적 잔학 행위를 저지른 그에게 찬사까지 보내야 하느냐”(21일자 사설)고 비판했다. 남북통일 필요성을 설파했던 4년 전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가 무색한 논조다.

‘통일이 미래다’는 방상훈 사장 작품

조선일보는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4년 신년 기획으로 ‘통일이 미래다’를 꺼냈다. 그해 1월1일자 1면에서 조선일보는 “통일이야말로 일제의 완전한 청산이며, 통일이 다가올 때 비로소 우리 사회의 첨예한 갈등들은 잦아들 것”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이날 1면 머리기사 제목은 “‘南北 하나될 때, 동아시아 번영의 미래 열린다’”였다. 5일 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며 조선일보 논조를 그대로 따랐다.

‘흡수 통일’을 보기 좋게 포장한 기획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진보 진영도 대체로 조선일보 기획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보근 한겨레 기자는 2014년 1월6일자 칼럼에서 “조선일보의 이번 보도는 ‘이제 보수진영도 제대로 된 통일론을 가질 수 있는 시점이 된 것 아닐까’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고 평했다. 문익환 목사 아들인 배우 문성근씨도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조선일보 보도에 “그간 보수 진영은 통일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민주 진영의 점진적 통합에 욕만 해왔는데 변화를 보이니 이제는 토론이 가능해졌다고 본다”고 밝혔다.

당시 우상호 민주당 의원도 “조선일보 통일 기획은 진보 진영에도 많은 반성의 여지를 남기는 앞서가는 기획으로 통일을 외면하려는 젊은 세대들에게 큰 교훈이 되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3월 조선일보 창간 기념행사에서 “조선일보가 통일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접근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 조선일보 2014년 1월1일자 1면.
▲ 조선일보 2014년 1월1일자 1면.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게서 나왔다. 그는 2013년 8월 “이제 통일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면서 강효상 당시 편집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기획안을 검토해보라는 의견을 냈다.

2015년 9월까지 편집국장을 지낸 강효상 의원은 당시 편집국장 이임사에서 “가장 큰 보람은 통일 어젠다를 조선일보가 주도한 것”이라며 “‘통일이 미래다’ 기획은 특정 정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통일 어젠다를 국민의 품으로 되돌리는 전기가 됐다”고 자평했다.

이 시리즈로 조선일보는 2014년 한 해 동안 무려 기사 243건을 쏟아냈다. 2015년에도 통일기획은 계속됐고 이런 움직임은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 출범으로 이어졌다. 조선일보 부사장을 지낸 안병훈 ‘통일과 나눔’ 이사장은 친박 원로 모임으로 알려진 ‘7인회’ 구성원이었다.

재단 모금 프로그램이었던 ‘통일나눔펀드’는 조선일보가 전사적으로 주도했다. 국민 170만 명 이상이 기부에 참여하고 3000억 원 넘는 금액이 약정되는 등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공공기관과 지자체가 반강제로 펀드에 가입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관제 펀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재단의 자산 가액은 3107억 원이다.

안병훈 이사장은 2015년 6월 조선일보 사보 인터뷰에서 “우리는 기금을 모아 북한이 개방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합류하도록 돕고 싶다”며 “북에 무조건 퍼주자는 것이 아니다. 지원을 하되 북한이 어떻게 해서든 세계적 흐름인 시장경제로 나올 수 있게 유도하는 ‘잘 주기’를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북 시장경제할 수 있게 유도해야”

방 사장은 줄곧 통일을 말해왔다. 그는 2014년 3월 조선일보 창간 94주년 기념식에서 “조선일보의 통일 DNA를 마음껏 펼쳐 미래의 통일을 눈앞의 현실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주기 바란다. 조선일보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잊혀져가던 통일의 꿈을 되살리는 일에 주력했다”고 했고 이듬해엔 “이제 우리는 ‘조선일보 100년’을 앞두고 있다. 그 100년이 되는 2020년은 우리나라와 민족, 그리고 조선일보에 있어서도 중대한 의미가 있다. 우선 2020년까지는 반드시 통일이 이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0년 창간 100주년 행사는 평양에서 하고 싶다”는 건 그의 소망이자 꿈이다.

사주가 고안하고 기자들이 전사적으로 뛰어든 통일 어젠다는 문재인 정부 들어 새 국면을 맞는다. 방 사장은 지난 3월 조선일보 창간 98주년 기념사에서 “지난 2014년부터 조선일보가 핵심 아젠다로 추진해온 통일 캠페인을 쉼 없이 추진해야 한다”면서도 “비록 지금은 북한 도발과 한반도 긴장 고조로 통일을 말하기 어렵게 됐지만 이럴 때일수록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통일을 위해 황무지를 개척하고 씨앗을 뿌리는 일을 준비하고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이 시기 남북관계는 평창 동계올림픽 등으로 긴장이 완화되던 때였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은 북한 도발과 한반도 긴장 고조로 통일을 말하기 어렵게 됐다”며 일반 인식과 차이를 보였다. 

그랬던 그도 지난 5월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개회사에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물꼬를 트게 된 데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력이 컸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조선일보 2014년 3월7일자 사보에는 방상훈 사장의 창간 94주년 기념사가 실렸다.
▲ 조선일보 2014년 3월7일자 사보에는 방상훈 사장의 창간 94주년 기념사가 실렸다.
조선일보의 ‘염치’

현 정부·여당 주요 인사들이 연이어 조선일보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 보도를 공유하고 비판한 까닭은 언론이 남북관계를 정파적으로 활용한다는 문제의식에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지난 25일 페이스북에 ‘통일이 미래다’ 보도 제목 사진을 공유하며 “‘염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최소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만큼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다뤄주길 기대했는데 헛된 꿈이었나”라고 비판했다. 박주민 의원도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과는 매우 달라진 남북관계에 대한 보도 태도를 지닌 매체가 있다. 그런데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듯”이라고 비판했다.

주용중 전 조선일보 정치부장(현 TV조선 보도본부장)은 ‘통일 나눔 캠페인’이 한창이던 2015년 7월 칼럼에서 “남북한이 아직 통일을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남북한과 한반도 주변에서 통일을 바라는 힘(의식+제도)의 총합보다 통일을 바라지 않는 힘의 총합이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는 “우리가 통일이란 꿈을 위해 작은 실천을 모아 나가면 한반도에서 저물고 있는 마지막 냉전(冷戰) 게임의 무게추가 반(反)통일에서 통일 쪽으로 서서히 기울게 될 것이다. 나눔이 통일의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통일을 바라는 쪽에 서 있나. 아니면 반(反)통일 쪽에 서 있나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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