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남북 정상의 평양 정상회담 당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프레스센터에서 나온 CBS 소속 이아무개 기자 질문이 비난 받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약속한 것과 관련해 이 기자가 ‘미국 허락을 받았느냐’는 취지로 질문했다고 와전된 까닭이다.

논란에 불을 댕긴 인사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그는 같은 날 KBS 특집 대담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한반도 평화의 길’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20일) 아침 프레스센터에서 어떤 기자가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에게 질문했다. 나는 놀랐다. 젊은 기자인데…. 지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합의했는데 미국과 협의하고 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했다. 어떻게,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됐나. 남북 정상이 가고 오고하는 것도 미국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기자라니 큰일 났다. 이거 지금.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한다. 오너십이 있어야 한다.”

정 전 장관 발언 이후 CBS 기자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트위터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기레기”, “너는 미국에 물어보고 허락 받은 뒤 질문하느냐”, “모든 걸 미국에 물어봐야 하는 노예 근성” 등 비난 댓글과 인신공격성 메시지가 쏟아졌다.

▲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사진=민중의소리
▲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사진=민중의소리
언론도 기자 질문 내용을 ‘김정은 서울 답방 미국 허락’ 등으로 규정했다. “‘기자들 주인의식 좀 가져라’ 정세현, ‘오너십’ 강조한 이유”(국민일보), “‘주체성 ‘멸종’ CBS 기자, 미국한테 허락 받고 그 따위 질문하나?’”(굿모닝충청), “정세현, 젊은 기자에 ‘주인의식 가지라’ 일갈… 왜?”(고발뉴스) 등 관련 기사가 뒤따랐다.

이 기자가 실제 질문한 내용은 ‘미국 허락’과 차이가 있다. 그는 지난 20일 “CBS 기자인데 두 가지 질문이 있다”면서 질의했다. 그가 밝힌 두 가지는 (1) 서울 답방과 종전 선언 가능성과 (2) 현재 핵과 미래 핵 괴리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1)과 관련해 “어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하셨는데 이게 미국과 먼저 협의가 좀 돼 있었는지 그래서 혹시 서울에 오셨을 때 종전 선언을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라고 물었다. 이 질문이 비난 받고 있다.

정 전 장관은 (1) 질문 중에서도 첫 문장만 발췌했다. 정 전 장관은 (1) 질문 가운데 뒷부분 ‘종전 선언’은 생략하고 앞부분 ‘미국과의 협의’만 강조했고 나아가 이를 ‘허락’으로 확대 해석했다. 

CBS 기자 질문 중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질문에서 미국과 사전 협의를 꺼낸 것도 ‘종전 선언 가능성’을 묻기 위함으로 보인다. 종전 선언이 김 위원장 서울 답방 시 성사되면 동맹국인 미국과 사전 협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이 기자는 26일 오후 통화에서 “정 전 장관이 단어를 왜곡한 부분을 인지하고 있지만 아직 뭐라 언급하긴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정 전 장관 입장도 듣고자 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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