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포스코(POSCO)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노동조합(포스코지회)이 만들어진 후 사측이 추석 연휴에도 노무 담당자들을 모아 노조 무력화 방안을 세우기 위한 대책회의 열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특히 포스코지회가 입수한 사측의 노조 대응 문건을 보면 회사 노무협력실은 ‘포스코를 사랑하는 직원’이라는 익명으로 직원들 배포용 호소문도 준비했다. 호소문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이 겪은 고통과 불행을 모두 민주노총 책임으로 돌리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25일 오후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포스코를 사랑하는 직원의 한사람으로서 드리는 호소문’은 작성자가 본인을 “포스코에서 30년 이상 젊은 시절과 인생의 모든 것은 바친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내 삶의 터전인 포스코를 모든 악의 근원으로 만들고 있다”고 시작한다.

▲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회사 노사문화그룹 직원들로부터 입수한 ‘포스코를 사랑하는 직원의 한사람으로서 드리는 호소문’ 중 일부. 자료=추혜선 정의당 의원실 제공.
▲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회사 노사문화그룹 직원들로부터 입수한 ‘포스코를 사랑하는 직원의 한사람으로서 드리는 호소문’ 중 일부. 자료=추혜선 정의당 의원실 제공.
작성자는 “우리는 잘 나가던 굴지의 기업들이 치킨게임과 같은 노사 대결 구도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사례를 눈으로 직접 봐 왔다”며 “상급단체의 무책임한 방침을 그대로 이행했던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이 건강 악화와 생활고에 시달리다 수십 명이 자살한 비참한 결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GM의 경우 투쟁 일변도의 운동 노선을 고수해 오다가 결국은 군산공장 폐쇄 수순에 들어 갔다”면서 “일부 피해의식에 가득 찬 세력들이 갈등을 증폭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스코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의 미래를 진정성을 갖고 고민할 수 있는 곳이 과연 어디인지 신중하게 판단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포스코지회(새노조) 측은 “포스코 새노조에 대한 반감을 가지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포스코 새노조를 직원들로부터 고립 무력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여론 조작 공작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회사의 부당노동행위 계획 및 그 의사를 판단할 수 있는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포스코엔 새노조가 생기기 전엔 한국노총 소속의 기업노조가 있었지만 사실상 어용노조라고 불리며 현재 조합원은 9명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지난 4월 직원들이 새노조 준비모임을 시작할 즈음 본사 노무협력실 산하에 ‘노사문화그룹’을 신설했다. 새노조 측은 이 조직이 통상적인 인사노무업무를 수행하는 부서와는 별개로 노조 와해 및 무력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부서로 보고 있다.

새노조에 따르면 ‘노사문화그룹’ 직원들은 지난 23일 오후 추석연휴 기간에 포스코 인재창조원에서 노조 대응 대책회의 했다. 회의실 칠판에는 ‘조합 가입 부서 확대’, ‘비대위 가입 우수부서(본사, 제철소 부서) 홍보’ 등이 문구가 기재돼 있었는데, 비대위는 포스코 기업노조가 포스코노조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한 조직을 뜻한다.

새노조는 “사측은 포스코 새노조에 대한 반감을 조성해 조직이 확대되지 못하도록 고립·무력화시키고, 한국노총 포스코 노조 비대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비대위를 교섭권을 갖는 친회사노조로 육성하려는 시나리오를 짜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전 사 차원에서 노조 조직 및 운영에 대한 지배개입 시나리오를 기획해 추진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가운데)은 25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포스코의 노조 와해 문건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료=추혜선 의원실 제공.
추혜선 정의당 의원(가운데)은 25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포스코의 노조 와해 문건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료=추혜선 의원실 제공.
또한 새노조 측이 이날 포스코 인재창조원을 방문해 노사문화그룹 직원들로부터 입수한 문건 내용에는 “기업 효율성이 부진한 것은 저조한 생산성과 경영 불투명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립적 노사관계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그간 노사관계에 깊숙이 개입해왔지만 유연하고 효율적인 노동시장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되레 후퇴한 측면이 많다”고 진단하고 있다.

추혜선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이 작성한 문건에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 대한 악의적 선동과 다른 기업 노조에 대한 명예훼손, 직원 오픈채팅방에 대한 지속적인 사찰 흔적, 문재인 정부가 노사관계에 깊숙이 개입해왔다는 근거 없는 비방들로 가득하다”며 “심지어 이명박 정권의 폭력적 진압과 박근혜 정권의 재판 거래로 수많은 노동자가 안타깝게 희생된 쌍용차 노조와 노동자를 매도하는 파렴치한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추 의원은 “회의 참석자가 작성한 노트에는 포스코 최고위층의 지시가 없이는 작성할 수 없는 내용들이 다수 확인되고 있어 지금 포스코에서 최고위층의 지시 내지 동의 하에 종합적인 노조 무력화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포스코의 부당노동행위는 관리자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회사의 공식적인 업무로서 조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새노조 측은 회사의 노조 와해 공작 문건은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침해하고 노조할 권리를 방해하는 헌법 유린 부당노동행위라며 정부와 국회에 수사를 통한 법적 처벌과 진상 규명 조처 착수를 촉구했다.

반면 포스코 사측은 “노조 와해 공작 주장은 사실 무근이며, 회사가 노조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합법적이고 통상적인 업무”라고 반박했다. 사측은 “문제가 된 카카오톡 대화는 오픈 카톡방이고, 호소문 역시 회사가 작성한 게 아니다”며 “사무실에 들어와 회의 문건을 가져간 노조원들에 대해선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며, 회사도 사규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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