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한 공공기관 협력업체에 다니는 김진호씨(41·가명)는 7년 간 연차가 ‘0개’였다. 광복절, 추석연휴 등 달력에 찍힌 ‘빨간 날’에 쉬는 게 연차휴가 사용으로 계산돼서다. 이 내용은 고용계약서에 적혀 있다. 김씨는 2년마다 새 업체와 계약하며 고용계약서를 3번 썼으나 계약서를 제대로 읽은 적은 없다. 김씨는 “설날·추석 때마다 연차 3일을 써서 쉬었고 올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법정 공휴일을 자신의 연차유급휴가를 써서 보내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법정 공휴일엔 연차유급휴가를 대체사용한 것으로 합의한다’는 고용계약서 상 독소조항 때문이다. 노동자의 충분하고 자유로운 휴식을 보장하는 근로기준법 취지에 반한다는 지적이 높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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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노동법 위반 등을 상담하는 ‘직장갑질119’에도 같은 문제가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퇴사를 앞둔 한 2년차 직장인은 “못 쓴 연차 15일을 수당으로 달랬더니 회사는 ‘계약서상 근로자의 날을 제외하고 유급휴가를 지원하지 않는다. 너가 작년 1년 동안 쉬었던 공휴일은 없던 연차를 당겨 쓴 것이니 15일을 연차에서 빼야 한다’고 답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 어린이집은 보육교사를 고용하며 계약서에 “근로기준법 제 62조에 의거 신정, 설날·추석 3일 국·공휴일(임시 공휴일 포함), 여름·겨울방학, 경조휴가 등 어린이집에서 임시로 정하는 날에 휴무하는 경우 연차로 대체하는 것으로 합의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2018년 명절 휴일을 포함한 법정 공휴일은 68일에 달한다. 보육교사에겐 80일에 달하는 연차휴가 대체일이 나오는 셈이다.

이 경우 노동자의 휴식권이 제한된다. 노동자에게 휴가란 누적된 피로를 회복하고 건강한 노동을 가능케 하는 의미가 있다. 근로기준법은 이에 따라 1년 15일 이상 연차유급휴가를 보장하고 휴일도 사용자가 일방으로 정할 수 없고 노동자가 청구한 날 줘야한다고 원칙으로 정한다.

‘연차휴가 강제 사용’이 가능한 이유는 예외 조항인 근로기준법 62조에 있다. 62조는 “사용자와 노동자대표가 서면합의할 경우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해 ‘특정한 근로일’에 직원을 휴무시킬 수 있다”고 정한다. 근로기준법 상 휴일은 주휴일(통상 일요일)과 근로자의 날 밖에 없다. 국가기념일, 명절 등은 ‘법정 공휴일’로 관공서에서만 유급휴일로 둔다. 즉 민간기업에서 법정 공휴일은 ‘특정한 근로일’에 해당될 수 있다. 일부 기업들이 이를 이용해 계약서 조항으로 두는 것이다.

사용자와 노동자대표 서면합의가 조건이지만 실상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최근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5개 사례 모두 연차대체합의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고 노동자대표의 서면합의도 없었다. 대부분 “서면 합의가 없는데 고용계약서 조항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는 2003년 ‘가능하지 않다’고 행정해석을 내린 바 있다. 노동부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없거나 근로일이 아닌 날 휴무하게 하는 경우엔 연·월차유급휴가를 대체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그로 인해 미사용휴가일수가 생기면 그만큼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정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14년 중소기업 102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휴일을 휴일로 주지 않고 연차를 쓰도록 한다’고 정한 기업은 응답 기업의 약 18.5%였다. 약 43.8%만 현재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운영한다고 밝혔고 ‘공휴일을 무급휴일로 간주한다’는 응답은 23.4%, ‘정상근무 한다’는 기업은 12.7% 등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대부분이 나와 같이 일하는 줄 알았고 서명을 해야 일할 수 있으니 따져보지 않고 계약서에 서명해 문제라고 여기지 못했다”며 “7년 간 반납한 휴가만 114개다. 그만큼 쉴 수 있었는데 일방적으로 뺐겼다. 정당한 휴가권을 되찾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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