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뉴스통신사 뉴스1(대표 이백규)이 ‘사법농단’ 관련 기사를 정당한 이유 없이 보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뉴스1 취재기자가 자신의 SNS에 보류된 기사 중 하나를 올리자 뉴스1은 해당 기자를 인사위원회에 올려 징계를 예고했다. 사법개혁이 법조계 주요 이슈인 가운데 일부 변호사들이 뉴스1 조치를 문제 삼으며 취재기자의 공동 법률대리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뉴스1 사회부 윤아무개 기자는 지난 5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5년 3월 법원행정처가 법관의 금품수수 등 비위를 근절하기 위해 마련한 법원장 간담회에서 돈 봉투를 뿌렸다는 내용의 기사를 집배신 시스템에 올렸다. 법원행정처가 주요 법원장에게 1000만~2000만원 씩 총 2억7200만원을 줬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사회부 데스크인 이아무개 편집위원은 윤 기자에게 기사가 사실이 맞는지, 기사의 출처는 어딘지 등을 물으며 기사를 보류했다.

▲ 뉴스1 로고
▲ 뉴스1 로고

윤 기자는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출고 안 된 기사를 올리면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한 번의 오보대응도 없었건만 사실이 맞느냐는 모욕적 질문까지 받는다” 등의 내용을 썼다. 그는 20일 미디어오늘에 “꼭 알려야 하는 내용이라서 SNS에 올렸다”고 말했다. 이후 경향신문(9월5일 오후), MBN(9월6일자), MBC(9월6일자)가 각각 현금지급 사실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뉴스1에서 출고했다면 윤 기자의 특종기사였다.

그런데 뉴스1은 지난 17일 윤 기자에게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회’를 통보했다. ▲데스크가 승인 보류한 ‘양승태 법원행정처, 금품수수 간담회서 돈봉투 잔치’ 기사를 무단으로 페이스북에 게재해 업무상 기밀을 누설하고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으며 담당데스크를 비방해 명예훼손하고 ▲데스크의 정당한 업무지시를 성실히 응하지 않아 업무수행 질서를 문란케 했다는 이유다. 

경영진은 기사 보류가 합당했다는 입장이다. 강호병 뉴스1 편집국장은 1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담당데스크가 양심을 가지고 소스 출처, 반론권 등 여러 가지를 보고 기사요건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며 “다른 언론사 기사를 보면 대법원·검찰 등에서 확인했다고 썼는데 정보의 출처는 독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인사위원회 출석통보에 대해선 “승인보류한 기사를 페이스북에 게재하는 게 상식인가”라고 되물었다.

윤 기자는 ‘돈 봉투’ 기사를 두고 데스크와 의견을 나눌 때 “데스크가 ‘반론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반론을 받지 않아서 기사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건 사측이 추후에 만들어낸 논리라는 뜻이다. 윤 기자는 또 당시 데스크였던 이 편집위원의 구체적인 업무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징계위에서 ‘혐의’라고 명시한 업무지시 불이행의 경우 혐의가 성립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뉴스1 인사위원회 출석통지서, 출석일시는 10월11일로 변경했다.
▲ 뉴스1 인사위원회 출석통지서, 출석일시는 10월11일로 변경했다.

이번 상황과 관련해 뉴스1 관계자는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기사 판단은 데스크가 한다”며 “다른데서 난 기사랑 꼼꼼하게 비교해보면 팩트가 같지 않다”고 말했으며 인사위원회에 대해선 “사규에 따라 본인의 행동에 대해 소명 기회를 주는 차원”이라며 “결정 난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 기자가 작성했지만 데스크가 보류한 기사가 지금껏 10여건이 되는데 대부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기사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가 양승태 사법부 과거사 판결을 두고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가 대표적이다. 타사 법조출입기자 A씨는 미디어오늘에 “내용이 어려워 해설기사를 쓰기 어려웠는데 윤 기자가 잘 써서 다른 기자들이 ‘인용보도 하겠다’고 했는데 집배신에 올라갔다가 빠졌다고 했다”고 말했다. 윤 기자는 법학 박사로 법조 전문기자다.

당시 다수 언론이 헌재의 결정을 긍정으로 평가하는 기사가 많았다. 윤 기자는 ‘헌재가 잘했다는 기사가 많은데 그렇게 볼 수 없다’는 주제로 기사를 썼다. 데스크인 이 편집위원은 ‘찬사’라는 표현을 문제 삼으며 ‘헌재를 비아냥해선 안 된다’고 했고, 윤 기자는 ‘용어는 데스크가 바꾸면 되는 문제인데 왜 데스크를 아예 안 보느냐’고 답했다. 윤 기자는 “기사를 내보내기 위해 계속 데스크를 설득하려 했지만 결국 그 기사도 나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 사진=istock
▲ 사진=istock

법조출입기자들은 대부분 법원·검찰에서 확인을 하면 바로 기사를 작성한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수사해 사실관계를 확인했기 때문에 반드시 반론권을 줘야하는 기사는 많지 않다. 이런 분위기에서 데스크가 ‘반론권’, ‘정보 출처’ 등을 요구하면서 일정 시간 기사를 출고하지 않는 건 민영뉴스통신사 입장에서 사실상 기사를 막는 꼴이다. 

윤 기자는 “데스크가 법원을 흔들지 말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며 “사법농단은 옳고 그름의 문제일 뿐 보혁갈등의 문제로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타사 법조출입기자 A씨는 “뉴스1에서 보류된 기사들은 대부분 다른 매체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인사위원회는 오는 10월11일 열린다.

▲ 뉴스1 윤아무개 기자가 최근 쓴 기사들
▲ 뉴스1 윤아무개 기자가 최근 쓴 기사들

이들은 왜 윤 기자를 대리할까. 공동 법률대리인 중 한명인 오민석 변호사(법무법인 산하)는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윤 기자를) 법률 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기자로 높게 평가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이런 일을 겪는지 몰랐다”며 “특종이 될 수 있는 기사가 보류판정을 받았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페이스북에 개인 자격으로 기사 내용을 올려 징계위원회에 갔다는 얘기를 듣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윤 기자가 사법농단 관련 특종을 많이 한 점도 변호사들이 나선 이유다. 오 변호사는 “법원에서 뼈를 깎는 자성이 나와야 하고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개선책이 잘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며 “(사법개혁) 여론이라도 형성돼야 하는데 (뉴스1이) 부끄러운 행동을 한 법관을 비호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오 변호사는 “대리인에 이름을 올리진 못했지만 다른 방식으로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분들도 연락이 왔고, 변호사 뿐 아니라 기자들도 응원의 뜻을 보내줬다”고 전했다. 공동 법률대리인 중 일부는 윤 기자 인사위원회에도 출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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