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3개 드라마 제작현장을 대상으로 한 특별근로감독 결과가 확인됐다. 다수 스태프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해 계약 형태보다 실질 근로 내용의 중요성을 확인한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형식상 사업자인 팀장급 스태프들에게 사용자 책임을 지운다는 우려도 나온다.

노동부는 지난 2월 드라마제작환경개선TF 요청에 따라 3월12일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한 뒤 스태프 노동자성 인정 여부와 드라마 제작현장에서의 위법 여부 등을 판단했다. 감독 대상은 KBS △‘라디오로맨스’(얼반웍스) △OCN ‘그남자 오수’(IMTV) △tvN ‘크로스’(로고스필름·스튜디오드래곤) 등이다.

미디어오늘이 20일 입수한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보면 노동부는 조사 대상 스태프 177명 가운데 △연출·촬영·제작 △조명·장비·미술 분야 종사자 157명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노동부는 드라마 제작 종사자 75명을 대상으로 제작현장 기본구조와 계약관계 등 설문을 실시하고, 4개 외주제작사 및 29개 도급업체 관계자를 대상으로 출석 또는 유선조사했다.

우선 연출·촬영·제작분야 종사자의 경우 외주제작사와 개별적으로 프리랜서 용역 계약을 체결했으나 노무제공 대가로 고정급을 지급받고, 담당업무가 사전에 정해져 있으며, 근로시간·장소가 제작일정에 따라 정해지는 등 업무수행에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다는 점에서 근로자로 인정됐다.

▲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전경. ⓒ 연합뉴스
▲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전경. ⓒ 연합뉴스

노동부는 해당 스태프들이 “용역계약 체결, 취업규칙 미적용, 4대 보험 미납부, 사업소득세 납부 등 근로자성 부인 요소가 일부 있으나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사용해 임의로 정할 수 있는 것으로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제3자를 통한 업무 대체 불가, 노무제공을 통한 이윤 창출·손실 부담이 없다는 점도 근로자성 인정 요소로 반영됐다.

조명·장비·미술 분야 종사자는 외주제작사로부터 도급을 받은 팀장·수급업체·개인업자에게 고용된 직원으로서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이들은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 등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 관계에 있는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연출·촬영·제작감독 등 팀장급과 일부 직종은 일부 근로자성 인정 요소가 있음에도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윤창출·손실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지 않고 근무시간·장소가 구속되는 등 일부 근로자성 인정요소가 있으나 전문성·경험을 바탕으로 각 소속 팀원을 지휘·감독하고, 역량에 따라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독립사업자로서의 요소가 강해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명, 동시녹음, 특수장비 등 팀장급 스태프들은 보통 방송사나 드라마제작사와 ‘턴키(turn-key)’ 방식 계약을 맺는다. 최소 4~5명 팀원을 묶어 계약하면서 출장비, 장비사용료, 식비, 구체적인 인건비 구분 없이 총액으로 용역 계약을 맺는 것이다. 방송계에서 이러한 계약 방식은 전체 제작비용 절감에 유리한 계약방식이라는 점에서 비판 받아왔다.

쟁점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 사용자 책임을 질 우려다.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 결과 확인된 스태프들 근로자성 인정을 전제로 조사 대상 사업장의 위법적 사항에 대한 시정을 요구했다. △연장근로 위반(9개소) △최저임금 위반(12개소, 3700여 만 원) △서면근로계약 위반(28개소) 등이다.

20일 오전 언론·시민단체들은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 기자회견에서 “위장도급 소지가 명백한 턴키 계약 관행은 불공정 다단계하도급 구조의 대표 사례로 우리사회가 청산해야 할 악습과 적폐 중 하나”라며 “이번 감독 결과가 방송사와 제작사가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턴키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게 할 것”이라 우려했다.

한편 이날 오후 국무총리비서실 주최로 서울 정부청사에서 진행된 정부 관계부처(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 방송통신위원회)와 언론·방송계 노동조합, 방송협회, 드라마제작사협회 등의 비공개 간담회는 각자 입장을 전하는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