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남북정상회담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백두산 동반으로 마무리됐다. 18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이번 회담은 굵직한 빅이벤트를 연출하면서 많은 화제를 남겼다. 최초 수식어가 붙는 역사적인 회담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볼거리 풍성했던 정상회담

의전으로 보면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였다. 문 대통령이 평양 국제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기존 외교 관례를 뛰어넘은 북한의 예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정은 위원장 내외는 직접 공항을 찾아 비행기 아래까지 이동해 문재인 대통령을 영접했다. 10만명 이상 평양 주민이 백화원 영빈관까지 도열해 환영인사를 건넸고, 김 위원장은 차량을 바꿔타고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깜짝 동승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숙소 문 앞까지 직접 안내하고 “발전된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 숙소가 초라하다. 수준은 낮을 수 있어도 최대 성의를 다해서 성의있는 마음을 보인 숙소이고 일정이고 하니까. 그저 우리 마음으로 받아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자아비판 화법’이라는 딱지를 붙인 국내언론도 있었지만 과거 북한에서 최고 존엄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김정은 시대 변화상을 볼 상징적 발언이라는 평가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8일 오전 평양 시내를 함께 퍼레이드 하며 환영하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8일 오전 평양 시내를 함께 퍼레이드 하며 환영하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밖에 남북 정상 최초로 조선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첫 회담을 연 것을 시작으로 문 대통령이 평양 현지 주민이 찾는 대동강 수산물 식당에서 식사하고, 북한 대규모 체조 예술 공연 참관을 넘어 북한 주민을 상대로 연설하고, 남북 정상이 백두산을 함께 오른 것까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벤트로 전 세계 이목을 끌었다.

하이라이트는 평양공동선언 합의문에 나온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 약속이다. 향후 남북관계 뿐 아니라 북미관계와 동북아시아의 안보 지형까지 바꿔놓을 만큼, 파급력을 가늠할 수 없는 사안이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19일 평양 현지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주변에서 전부 반대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독자적으로 (서울 방문을) 결정했다고 한다”면서 “2000년 6·15 선언 당시 마지막 부분에 ‘답방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북한에서 반대가 많았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까스로 받아냈지만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그런 맥락에서 김 위원장이 어려운 결정을 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독려했다”고 말했다.

평양을 생중계로 본 것도 처음

북한에서 진행된 모든 정상회담을 통틀어 최초로 생중계 화면으로 송출된 의미도 적지 않다. 남북 정상이 평양공동선언에 입장을 밝힌 장면이 생중계로 진행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 지난 4월27일 판문점 선언에서 김 위원장의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주목받긴 했지만 평양이라는 공간에서 김 위원장이 TV 앞에 서서 대외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이 전 세계로 송출되는 생중계 방송에서 “수십 년 세월 지속되어 온 처절하고 비극적인 대결과 적대의 역사를 끝장내기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를 채택하였으며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아가기로 확약했다”고 말한 것은 획기적인 변화다. ‘핵 강성대국’을 부르짖었던 최고 지도자 입에서 ‘핵 없는’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이 같은 내용이 육성 발언으로 전 세계에 송출된 건 북한 안에서도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생중계는 우리 측이 제안해 이뤄지면서 평양의 모습이 최초 실시간 공개됐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현재 벌어지는 한반도의 급격한 변화를 전 세계 국민들과 함께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4. 27 판문점 선언에서 확인했듯이 한반도 문제는 동북아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 안보와 직결되는 현안”이라며 “한반도 문제를 온 세계에 관심있는 국민들과 함께 관찰하고 바라보고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한반도 문제 해결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서 우리가 강하게 요청했고, 앞으로 이어지는 정상회담에서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쪽 지도자’ 문재인, 어떻게 보였을까

평양의 거리도 미디어에 노출돼 화제로 남았다. 현지 취재진이 보내온 사진에 따르면 나이키와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고, 거리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북한 주민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김정일 시대 평양과 비교해 각양각색의 고층 빌딩이 들어서면서 평양의 발전상도 볼 수 있었다.

11년 전 한국으로 온 김복주씨는 “평양에서 태어나 20년 넘게 살았다. 평양이 정말 많이 변했고 발전하고 있더라”라며 “(정상회담이) 굉장히 잘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응원한다. (남북관계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가야 경제도 산다”고 말했다.

▲ 평양 남북정상회담 첫날인 18일 오후 평양 시내에서 시민들이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나이키 신발이 눈에 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평양 남북정상회담 첫날인 18일 오후 평양 시내에서 시민들이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나이키 신발이 눈에 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남쪽 지도자’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도 북한 주민에 특별히 각인됐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평양 국제 공항에서 환영인사를 받고 주민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모습이나 백화원 영빈관 숙소 앞 정원에서 진행된 기념식수 행사를 마치고 북한 학생들과 무릎을 굽히고 기념촬영을 한 모습 등은 북한에서 볼 때 매우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대동강 수산물 식당에서 북한 주민과 대화를 한 것도 최초다.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에서 ‘남쪽 지도자’가 북한 주민과 접촉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남북정상회담 숙소로 사용한 평양 백화원초대소에 남측에서 가져온 10년생 모감주나무를 심은 뒤 북측 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남북정상회담 숙소로 사용한 평양 백화원초대소에 남측에서 가져온 10년생 모감주나무를 심은 뒤 북측 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특히 문 대통령이 능라도 5·1 체육관에서 15만 명의 북측 주민 앞에서 연설한 것은 역사적 장면으로 길이 남을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도 평양에서 아리랑 공연을 봤지만 북한 주민을 상대로 메시지를 전달한 적은 없다. 문 대통령은 “우리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며 “또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남북 사이에서의 종전을 북한 주민들 앞에서 선언한 것이라는 평가다.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일각에선 대규모 공연이 체제선전 중심으로 구성돼 이를 참관하는 것은 북한 체제선전에 이용당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문 대통령 연설이 포함되면서 이 같은 주장을 무색케 했다.

남북관계 발전되면 북미관계도 개선

이번 회담의 최대 성과는 남북 사이 군사적 긴장을 줄이는 방안에 합의하면서 문 대통령이 말한 ‘돌이킬 수 없는’ 평화의 제도화에 돌입했다는 점이다.

평양공동선언 안에 보란 듯이 군사 합의서를 부속 합의서로 채택한 것은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면서 북미관계까지 개선시켜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봐도 무방하다. 외신에서 남북관계 발전이 북미관계보다 한발 나아가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지만 이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정면돌파했다.

평양공동선언에 담긴 한반도 비핵화 조치에 대한 남북 합의 수준도 최대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장 미국 행정부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호의적이다. 그래서인지 동창리 엔진 시험장의 영구적 폐기와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로 한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라는 남북 합의가 미국과 긴밀히 조율된 결과물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내 비핵화 완성 등 북미 간 근본적 관계 전환을 위한 협상에 즉시 착수한다’며 2차 북미정상회담을 예고한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성명만 보면 적어도 문재인 대통령이 밝혔던 ‘북미 대화 촉진’이라는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목표를 이룬 셈이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 본부장은 20일 동대문디자인 플라자에서 “평양공동선언과 미국 성명을 읽어보면 양측이 대화를 통해서 비핵화와 평화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며 “이번 평양 회담과 공동선언은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 항상 설명했듯 남북관계의 진전이 북미관계의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논리를 반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지난 4월 판문점 선언에서 김 위원장과 우리가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면 이번에는 그 의지를 구체화할 실질적 조치에 대해서 합의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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