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18일 불발된 여야 정당대표들과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면담을 대신한 만남이 19일 오전 성사됐다. 이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다. 만남은 40분 정도였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영남 위원장을 만나기 전, 기자와 대화에서 18일 면담이 취소된 이유를 밝혔다. 이 대표는 “어제 정상회담의 배석자 숫자가 갑자기 예상보다 많이 줄어드는 바람에 장관님들이 이쪽(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면담)에 합류했다”며 “그래서 당 대표 3명하고 그 분들하고 분리해야 하는데, 당 대표들만 따로 만나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소통이 잘 안 돼서 불발됐다”고 설명했다.

▲ 평양남북정상회담의 일환으로 열리는 남북 정당관계자 면담이 예정된 9월18일 오후 북측 안동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일행이 남측에서 온 정당관계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해찬, 정동영, 이정미 대표는 한 시간 이상이 지나도록 면담장에 도착하지 않아 행사가 취소됐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평양남북정상회담의 일환으로 열리는 남북 정당관계자 면담이 예정된 9월18일 오후 북측 안동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일행이 남측에서 온 정당관계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해찬, 정동영, 이정미 대표는 한 시간 이상이 지나도록 면담장에 도착하지 않아 행사가 취소됐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해찬 대표는 이날 면담에서 남북 국회회담을 하자는 걸 제안하겠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이 대표는 이미 이와 관련 문희상 의장이 서신을 보낸 것이 전달됐다고도 했다. 이 대표는 내년 3·1운동 100주년 행사를 공동으로 하자는 이야기를 전달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일정이 다시 잡힌 배경을 기자들에게 “어제 연회장에서 이렇게 됐는데 오늘 면담을 해야 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당연히 하셔야 된다’고 즉석에서 지시를 하셨다”며 “그렇게 된 것이다, 다른 것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다른 게 아니다”라고 언급한 것은 일각에서 나온 ‘급이 안 맞아서 회담을 무산시킨 것 아니냐’는 추측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18일 예정된 면담에는 부의장만 참석예정이었고 김영남 위원장의 참석은 예정에 없었다.

19일 오전 만수대의사당 접견실에서 만난 여야 대표들과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만남에는 안동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최금철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 부위원장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북한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원래 어제 일찍 여러분들하고 이 자리에 앉아서 얘기를 나눴더라면 그저 하고 싶은 말을 다 툭 털어놓고 할 수 있었겠는데, 시간이 제한됐기 때문에 아마 좀 추려서 박사논문 통과시킬 때 변론하는 식으로 아마 나아가야 할 것 같다”고 말을 꺼냈다.

▲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찾은 여야 3당 대표가 19일 오전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면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김영남 위원장.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찾은 여야 3당 대표가 19일 오전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면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김영남 위원장.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학수고대 보람이라는 게 바로 오늘 같은 광경을 놓고 예로부터 쓰던 의사 표시라고 생각된다”며 2007년 이미 이해찬 대표와 정동영 대표를 만났던 추억을 언급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해찬 선생과 통신을 통해서 자료를 읽을 때마다 옛 추억에 잠기곤 했고, 정동영 선생과도 다른 동무들 통해서 들었는데, 내가 남녘에서 정동영 선생이 지금 무슨 활동을 벌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백의종군한다”고 그러더라“고 말했다.

김 상임위원장은 “다시 원내로 복귀하셨기 때문에 우리와 손잡고 통일 위업을 성취하기 위해서 매진하자고 했다”며 “정의당 대표 여사(이정미 대표)하고도 다시 만나게 되니까 아름다운 마음으로 더 뜨겁게 합심해서 통일 위업 성취에 매진해 나가자”고 말했다.

이에 정동영 민주평화당 당대표가 “위원장님, 10년 전에 뵀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으세요. 10년 전에 뵀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세요”라고 말을 건네자 김 상임위원장은 “변함이 없어요? 아니 정동영 선생 모습이나 리해찬 선생 모습이나 뭐 마찬가지”라며 “우리 통일 위업을 성취할 때까지는 영원한 모습대로 활기있게 싸워가자”고 답변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우리가 모두 졸장부가 돼서야 되겠습니까? 그게, 대장부가 됩시다”라며 “그렇게, 민족의 대의라고 할 데야 통일 위업이 아닙니까? 이번 북남 문제는 대통령과 함께 북남 수뇌회담 남측 대표단 일행으로서 여러분들이 평양에 오신 것도 속으로는 통일 위업 성취에 한마음 한 뜻으로 효과 있게 바쳐나가자”고 말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졸장부’, ‘대장부’라는 단어를 어떠한 의도에서 꺼낸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전날 정당대표들과 면담이 일방 취소된 것에 불만을 표현한 걸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평양 가기 전, 대통령이 각당 대표들을 평양으로 초청한 것에 일부 정당이 거부한 일에 대해 “중요한 건 대의”라고 말한 적 있는데 이 같은 발언을 안다는 표시일 수도 있다.

이날 면담에서 이해찬 대표는 “6·15 정상회담을 하고 잘나가다가 그만 우리가 정권을 뺏기는 바람에 지난 11년 동안 아주 남북관계 단절이 돼가지고 여러 손실을 많이 봤다”며 “이제 저희가 다시 집권을 했기 때문에 오늘 같은 좋은 기회가 다시 왔는데, 제 마음은 남북관계가 아주 영속적으로 갈 수 있도록 튼튼하게 이번에는 만들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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