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3가지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합의문에 따르면 북한은 동창리 엔진시험장 및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 참관 하에 영구 폐기하고, 6·12 북미공동성명 정신에 따라 미국이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 조치를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표명했다. 또한 양 정상은 남과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없어 선 비핵화 조치 후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미국과 이미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했는데도 상응조치인 종전선언을 미국이 막고 있다는 북한 입장 사이에서 이번 9월 평양공동선언이 교착관계에 놓인 북미관계를 풀 수 있을지 주목된다.

우선,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폐기에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믿지 못하고 있다고 김 위원장은 답답함을 호소했는데 이에 후속조치로 유관국 전문가 참관이라는 검증 절차를 두고 영구적으로 폐기하겠다고 못 박았다. 미국 입장에서 핵탄두는 위협 대상이지만 이를 이동시킬 수단을 영구 제거하면 위협이 사실상 사라지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달콤한 제안일 수밖에 없다.

다만, 여전히 북한은 핵폐기의 조건으로 미국의 상응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이라는 전제는 종전선언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향후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예로 들어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혀 북미간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세번째로 남북 양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 이어 다시 한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남북관계가 발전되면 핵위협도 줄일 수 있다는 시그널이다.

나아가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고 합의했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지난 7일 국회 강연에서 “북한이 핵탄두를 화끈하게 폐기하는 등 협조하면 가능하겠지만 지금처럼 교과서적 처방 순서(동결, 신고, 사찰, 검증)에 따르면 완전 비핵화에는 우려가 있다”며 “우리가 아는 검증 주의자들의 순서가 아니라 중요 부분의 해체를 동결 다음으로 가고, 신고를 그 다음으로 하는 등 파격적 조치가 없다면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미국은 북핵 일괄타결을 내세우지만 북한은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른 핵폐기를 주장해 파격적 조치가 없다면 북미 교착을 풀기 어려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번 합의문이 우리 정부로서 최대치를 담은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고유환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남북 합의에서 비핵화 관련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들어간 것은 처음”이라며 “북미간의 직접 협상이 필요한 부분은 빼고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취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고유환 교수는 “(북측이 조건을 내건) 상응 조치는 균형적 이행과 동시 행동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핵폐기의 신고 이야기가 없는데 북미 간 이야기를 할 것 같다”면서 “상응하는 조치가 있다면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는 것은 남북 사이 합의를 하더라도 북미 간 합의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연철 통일연구원 원장은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의 영구적 폐기는 문재인 대통령도 비핵화의 실천적 조치라고 얘기했고 북한이 할 수 있는 조치 중에서 우선적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을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 남북 정상이 19일 오전 백화원 영빈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모습. 사진=평양공동영상취재단
▲ 남북 정상이 19일 오전 백화원 영빈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모습. 사진=평양공동영상취재단

김연철 원장은 “상응조치가 있다면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는 부분을 미국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그리고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할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현재 상황에서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이라고 평가한다”며 “남북관계도 발전하고 전쟁없는 상태도 실현하고 북핵 문제로 해결할 수 있는 있는 길이다. 지금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의 선언”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황지환 교수(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는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무언가 조치를 하겠다고 ‘신고’한다던지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다”며 “실질적으로 미국과 이야기를 하면서 요구하는 것을 북한이 얼마나 받느냐 또 미국이 북한 요구를 얼마나 받는냐로 보면 아직 (공동선언문 성과를)판단하기 어렵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가 사실 모든 것의 핵심인데 이 관점에서 보면 아직 잘 안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 교수는 “북미관계의 현재 교착 상태의 돌파구가 될 정도라고 평가하기에는 어렵다”며 “미국에서 보면 엄청난 양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남북관계 발전 방안은 공동선언에서 밝힌 것처럼 “획기적인 조치들이 취해지는 등 훌륭한 성과”로 평가된다.

특히 남북이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기로 한 것은 남북 경제협력 관계를 본격적으로 조성하겠다는 뜻이 상징적으로 깔려있다. 특히 개성공단 정상화는 대북제재라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남북의 경제협력 모델로 다시 복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돼 있다.

평양공동선언에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를 부속합의서로 채택한 것도 구속력을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평양공동선언문에 부속합의서로 덧붙여 양 정상이 합의한 것이나 다름없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평양선언문에 담긴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기”와 같은 말은 역대 남북 합의문 중 가장 진전되고 구체적인 군사 부문 위협제거 합의 내용으로 평가할 수 있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해 합의서 이행실태를 점검하기로 한 것도 후속 조치로서 구속력을 높이는 상세 방안이다.

이밖에 ‘금년내’라고 시한을 못박고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를 연결하기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한 점,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를 개소해 상시적인 이산가족 상봉을 하기로 한 점 등도 의미가 있다.

문화 및 예술 분야 교류와 관련해서는 남북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중심으로 짜여졌다. 10월 중 평양예술단의 서울공연을 진행하고 2020년 하계올림픽경기를 포함한 국제경기에 공동으로 적극 진출하고 2032년 하계올림픽 남북공동개최까지 하는데 협력하기로 했다. 기존 남북정상회담의 정신을 계승하다는 뜻에서 10·4 선언 11주년 행사를 개최하고 3·1운동 100주년 기념식도 남북 공동으로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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