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미디어 기구가 달라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치권 인사나 공안 검사 비율이 공영방송과 미디어 규제기구에서 크게 줄었다. 여성 인사 비율은 늘었지만 여전히 개선이 필요하다.

최근 공영방송 이사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 선임이 끝나면서 문재인 정부 집권 1년 4개월 만에 미디어 기구 인사가 마무리됐다. 미디어오늘은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4개 정부의 미디어 기관장과 미디어 규제기구·공영방송 이사회의 정부여당 추천 인사들을 분석했다.

문재인 정부 미디어 기구 수장과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은 ‘언론학자’ ‘언론인’ 중심 인사가 두드러졌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과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모두 언론학자 출신이다. 방통위 출범 이후 언론학자 출신 위원장은 처음이다. 방송문화진흥회 이완기·김상균 이사장은 MBC 출신이다. 미디어기관장 가운데 정치권을 거치지 않은 언론인과 언론학자 비율은 참여정부가 62%로 가장 높고 문재인 정부가 58%로 뒤를 이었다. 반면 이명박 정부 때는 33%였으며 박근혜 정부 때는 한 명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치적 영향력을 줄이고 전문성을 높였다는 점을 평가할 수 있다.

▲ 조사대상이 된 미디어기관장은 방통위원장·방통심의위원장·KBS이사장·방문진 이사장·EBS이사장·코바코 사장·한국언론재단 이사장이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조사대상이 된 미디어기관장은 방통위원장·방통심의위원장·KBS이사장·방문진 이사장·EBS이사장·코바코 사장·한국언론재단 이사장이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방통위, 방통심의위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언론인과 언론학자 비율은 78%에 달해 이명박(46%), 박근혜(36%) 정부 때를 크게 웃돈다.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심영섭·김재영 방통심의위원은 언론학자 출신이고 허욱 방통위 부위원장, 허미숙 방통심의위 부위원장은 정치권을 거치지 않은 언론인 출신이다.

양대 공영방송 이사회의 구성은 비교적 다양성이 보장됐지만 박근혜 정부 때 언론인은 12% 언론학자는 6%에 불과해 방송사 이사회라는 말이 무색한 수준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의 경우 언론인과 언론학자는 각각 20%씩 차지해 40%를 기록했고, 이명박 정부 때는 언론인·언론학자 비율이 53%로 나타났다. 여기서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의 차이가 드러난다. 이명박 정부가 유재천, 김우룡 등 보수성향 언론학자와 언론인을 이사로 선임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언론 전문성 자체가 없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과 공안검사·정치인이 강세였다.

미디어 기구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 3기 방통위 최성준 위원장은 판사 출신이고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뉴라이트 학자이면서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 출신으로 미디어와 관련한 이력이 전혀 없다. 박근혜 정부 여권 추천 방통심의위원 가운데는 국정원과 연관 의혹이 제기된 북한학과 교수 조영기 위원, 공안검사 출신 함귀용 위원 등이 내정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KBS 이사회에는 뉴라이트 학자인 이인호 이사장이, 방송문화진흥회에는 영화 ‘변호인’의 소재인 부림사건의 실제 공안검사였던 고영주씨가 이사장을 맡았다.

이 같은 인사들은 방송의 체질을 바꾸려 했다. 고영주 이사장은 2017년 MBC 사장 면접 당시 언론노조 MBC본부 소속인사들을 뉴스 앵커나 주요 리포트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이 불거졌다. 대표적 뉴라이트 학자인 이인호 KBS 이사장은 KBS 이사회를 특정 사관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방문진에서 야권 이사들과 대립각을 세워온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 출신 차기환 이사는 방문진 이사를 연임하고 KBS 이사에 선임되면서 전무후무한 ‘공영방송 이사 3연임’ 진기록을 세웠다.

▲ 양대 공영방송 정부여당 추천 이사와 미디어 규제기구(방통위, 방통심의위) 정부여당 추천 위원. 디자인=이우림 기자.
▲ 양대 공영방송 정부여당 추천 이사와 미디어 규제기구(방통위, 방통심의위) 정부여당 추천 위원. 디자인=이우림 기자.

특히 이인호 이사장 시절 KBS 이사회는 보도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KBS가 이승만 정부의 한국전쟁 직후 망명 가능성을 보도한 뒤 임시이사회를 소집해 보도 독립성 침해 논란을 부른 것이 대표 사례다. 이 이사장은 KBS 역사 다큐멘터리 ‘뿌리 깊은 미래’와 관련해서도 “내용이 편향적이라는 항의를 받았다”며 프로그램을 공개 비판했다. KBS의 두 프로그램은 정부여당 추천 방송통신심의위원의 적극적 문제제기로 중징계를 받았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질 동안 방통위는 ‘방송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방관했다. 이사회, 방통심의위, 방통위가 공영방송을 무너뜨리는 협력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정치권에 몸담은 언론인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방통위 1기 최시중 위원장(동아일보)은 이명박 대통령 멘토이자 측근이었고 2기 이경재 위원장(동아일보)은 한나라당 국회의원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방통위 여권 추천인 허원제(SBS)·김석진(MBC) 상임위원도 자유한국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내거나 공천을 신청했던 인사들이다. 허원제 부위원장은 출마를 위해 임기 도중 사퇴해 비판을 받았다. 방통위·방통심의위 정부여당 추천 위원 가운데 정치인 출신 비율은 박근혜 정부 27%, 이명박 정부 16%인 반면 문재인 정부는 한 명도 없다.

이명박 정부 때는 양대 공영방송 이사회에서 유일하게 정치인이 정부여당 추천 이사로 선임됐다. 취임 직후 KBS 보궐 이사로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선대본부 정책자문단장 출신의 강성철 부산대 행정학 교수를 임명했다. 2012년에는 김관용 한나라당 경북도지사 후보 선대위·인수위원장을 지낸 이길영 전 KBS 보도본부장을 이사장 몫으로 임명했다.

이 외에도 각 정권마다 특성이 반영되는 인사가 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한 손병두 방문진 이사장, 벽산 대표인 김재우 이사장 등 공영방송 이사장에도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모습을 보였다. 네이버 출신 국민소통수석과 다음 출신 뉴미디어비서관을 발탁해 주목 받았던 문재인 정부는 KBS 이사에 네이버 출신 뉴미디어 사업가 김경달 네오터치포인트 대표를 선임했고 방문진 이사에 문효은 전 다음 부사장을 선임했다.

▲ 2008년 3월26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취임식. 현재 방통위는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진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2008년 3월26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취임식. 현재 방통위는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진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언론사 허가와 보도에 관여하는 미디어 기구 수장에 정치권 낙하산이 내려오는 관행은 문재인 정부 들어 개선됐으나 여전히 코바코(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와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캠프 출신’ 수장이 선임되는 관행은 바뀌지 않았다. 코바코의 경우 참여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 언론특보 출신인 정순균 사장이 선임됐고, 이어 이명박 정부 때는 이명박 대선캠프 출신 양휘부 사장, 한나라당 의원 출신 이원창 사장, 박근혜 대통령 대선특보 곽성문 사장을 잇따라 선임했다. 문재인 정부 방통위는 이달 초 문재인 대통령 대선특보를 지낸 김기만 사장을 선임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도 상황은 비슷하다. 참여정부 때 언론재단은 정남기(연합뉴스), 박래부(한국일보) 등 언론인 출신이 이사장을 맡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진흥재단으로 조직이 개편되면서 낙하산 사장이 끊이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언론문화특별보좌관 출신 이성준 위원장을 선임했고 박근혜 정부 때는 한나라당 국회의원 출신 김병호 이사장을 선임했다. 문재인 정부 때도 문재인 캠프 대선특보 출신 민병욱 이사장을 선임했다.

공영방송과 미디어를 감시하고 규제하는 기관의 유리천장은 보수 정권에선 더욱 높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여당 추천 인사들의 성비 불균형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남성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다. 양대 공영방송 정부여당 추천 이사의 성비를 보면 노무현 정부 때 남성 24명 대 여성 8명으로 남성이 많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남성 29명 대 여성 3명, 박근혜 정부 때는 남성 14명 대 여성 2명으로 대다수가 남성이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성 14명 대 여성 6명 선임으로 역대 정부 가운데 여성 이사 비율이 가장 높은 상황이다. 

미디어 규제기관은 방송통신위원회는 2008년 출범 이후 지금까지 정부여당 추천은 물론 야권 추천까지 통틀어 여성 위원이 1명 뿐이다. 박근혜 정부 때는 방통위는 물론 방통심의위에서도 여성 위원이 단 한명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 정부여당 추천 방통위 상임위원들은 모두 남성이었으나 방통심의위원의 경우 남성과 여성이 5:5 비율을 보였다. 윤정주 위원(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여성계 활동을 해온 인사이자 미디어 분야 전문성도 있다고 평가 받는다.

과거 위원 전원이 50대 이상 남성으로 구성된 3기 방통심의위는 ‘꼰대 심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의 동성키스 장면에 중징계인 ‘경고’를 의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방송심의 때 여성의 성상품화와 관련한 대목에서 “눈요기는 됐다”거나 인터넷 방송 심의 과정에서 “저렇게 예쁜 아가씨가 왜 저렇게 욕을 해?”라는 발언도 논란이 됐다. 

여권 관계자는 “방통심의위는 50대 이상 남성들의 꼰대 심의기구라는 비판을 받았다”며 “방통심의위는 전체 위원을 놓고 보면 남성6, 여성3 구도지만 정부여당은 반반씩 추천했고, 40대가 있는 등 연령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정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정권의 ‘선의’에 맡길 수밖에 없는 공영방송 이사회와 미디어 기구의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국회와 방통위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방통위와 방통심의위의 위원 자격 요건 강화 및 추천 방식 개선 등 ‘기구 지배구조 개선’도 필요하다. 지난달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방통심의위원의 특정 성별이 위원 수의 3분의 2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변화의 시작점이다. 

이번 조사에서 정당, 대선 캠프, 인수위원회 출신 인사들은 정치인으로 분류하고 청와대 출신은 비서관급 이상을 정치인으로 분류했다. 여당의 이사 추천 인원은 임명 횟수를 기준으로 해 특정 정당의 집권 기간 동안 동일 인물이 한 차례 연임한 경우 2회로 산정했다. 조사대상이 된 미디어기관장은 방통위원장·방통심의위원장·KBS이사장·방문진 이사장·EBS이사장·코바코 사장·한국언론재단 이사장이었다. 방송위원회의 경우 위원장만 기관장 분석에 반영했고 방송위원은 방송규제 위원 분석에 반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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