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잡월드(고용노동부 산하) 강사들은 현재 5천만원 손해배상 소송을 맞았다. 한국잡월드가 지난 8월1일 강사와 노조를 상대로 업무방해금지등가처분신청을 성남지원에 냈다. “무늬만 정규직하는 꼼수를 중단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지 말라는 취지다. 위반 횟수 당 백만원 배상금도 청구됐다. 강사 조합원 160여 명 대부분이 백만원 이상씩을 배상금으로 달고 있다.

“밥그릇 주니 밥상 달라는 꼴이다.” 박영희 한국잡월드 분회장은 싸움이 길어진 이유로 사측 인사의 말을 들었다. 그는 노사 협의 중 사측 위원으로부터 이 말을 들었다. 직접 고용을 주장하는 용역노동자들에게 ‘욕심이 지나치다’며 비꼰 말이다. 박 분회장은 “강사를 이렇게만 보니 평등한 대화가 될 수 없었다”고 했다.

▲ 한국잡월드 체험강사들은 지난 4월 노조를 만들고 합의없는 자회사 고용안 강행을 막기 위한 반대 행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
▲ 한국잡월드 체험강사들은 지난 4월 노조를 만들고 합의없는 자회사 고용안 강행을 막기 위한 반대 행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

노동계 내 ‘자회사 고용 정규직화’에 대한 우려가 팽배하다. 자회사 고용이 원칙없이 남용되는데다 이 경우 자회사는 기존 인력파견업체와 다를 바 없을 것이란 점에서다. 노동계는 “노조가 없는 곳은 소리소문없이 강행됐을 것”이라며 “자회사 남용은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대표적인 사각지대”라고 비판한다.

박 분회장은 “노사협의는 없다. 사측 협의안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의사결정구조가 사측에 유리한 상황에서 공정한 협의가 불가능했다는 지적이다. 박 분회장에 따르면 한국잡월드 상황은 더 심했다. 회사에 자회사안을 컨설팅해준 업체 임원이 노사 회의 사회자였다. 사회자는 박 분회장이 이의를 제기할 때마다 18명 위원 앞에서 ‘대표 자질이 없다’고 힐난했다.

진행과정도 공정하지 않았다. 강사는 비정규직 338명 중 275명으로 81%를 차지했지만 4회 회의때부터 참여했다. 박 분회장은 “그때 이미 자회사안으로 분위기가 기울어져있었다. 회사는 ‘직접고용이 되면 정년이 넘는 이들은 고용승계가 안된다’는 식의 허위정보를 유포했다”고 밝혔다. 박 분회장은 이를 보다 못해 대표 자격을 얻고 7회부터 참석했지만 “사회자의 편파적인 회의 진행으로 의견 개진이 힘들었다”고 했다. 지난 4월 자회사안은 16대2로 다수결로 통과됐다.

원칙없는 자회사 고용은 국립광주과학관과 한국잡월드의 차이에서 확인된다. 광주과학관은 지난 4월 용역노동자 78명을 전원 직접고용했다. 이들은 전시장과 교육프로그램 운영, 시설관리 등을 맡았다. 광주과학관 직원은 박 분회장과 통화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직접고용을 얘기했다. 기관의 성격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마사회 1500명, 한국가스공사 1100명, 발전5사엔 2천명 이상의 비정규직 직원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모두 노조가 있어서 문제가 알려진 곳이다. 현재 간접고용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의를 하는 공공기관은 656곳, 대상인원은 10만2581명이다.

이들은 가이드라인의 모호한 기준이 자회사안 남용을 열어줬다고 주장한다. 정부 가이드라인엔 “자회사 방식을 택하는 경우 사실상의 용역계약 형태 운영을 지양하고, 보다 나은 서비스 제공 및 전문적 업무수행 조직으로 실질적 기능을 하도록 경영‧인사관리 체계를 설계하여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만 정한다.

▲ 한국잡월드 체험강사들은 지난 4월 노조를 만들고 합의없는 자회사 고용안 강행을 막기 위한 반대 행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 한국잡월드 체험강사들은 지난 4월 노조를 만들고 합의없는 자회사 고용안 강행을 막기 위한 반대 행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준을 정할 수 없다면 고용노동부가 관리감독에 나서거나 최소한의 구제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분회장은 “정규직화의 전제가 노사 협의인데 민주적 협의가 불가능하다면 재논의시키는 절차가 있어야 할게 아니냐. 책임경영 안하겠단 기관의 비정규직들은 어디에 기대야 하냐”고 말했다.

자회사와 용역업체를 모두 겪어본 한국가스공사 용역노동자는 “자회사와 용역업체는 하등 다를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개 자회사, 7개 이상 용역업체를 겪어 본 홍종표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직지부장은 “노동조건을 아무리 말해도 용역업체에선 개선이 안됐다. 자회사로 가도 회사 간 갑을 관계가 같고, 을 회사로 갑 회사나 고용노동부 퇴직자들이 내려 올텐데 뭐가 달라지겠느냐”며 “고용유지만 시켜주겠는 거”라고 비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지난 7일 열린 국회토론회에서 “한국잡월드는 비정규직 330명이 있지만 지난 5월 1억3천여만원을 들여 자회사 설립 연구용역을 발주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산하 한국장학재단,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기관 11곳이 3300만원~4억여원을 들여 자회사 설립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박 분회장은 “전문 컨설팅 업체에 세금으로 배만 불려주고 간접고용은 유지하겠다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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