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김정은의 평양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과 북 모두 ‘새로운 시대’를 다짐했다. 노동신문 전망처럼 “드디어 평화의 길, 화해협력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일까.

다짐과 전망이 현실로 나타나려면 정상회담 18년을 톺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연결된 국가정보자문회의(NIC)는 2000년 12월에 낸 보고서에서 2015년 남북이 통일하고 동북아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리라 전망했다. 보고서는 근거를 명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2000년에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사실에 주목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낙관적 분석이 봇물을 이뤘다. 김대중-김정일 회담은 물론, 2007년 노무현-김정일 회담으로 10‧4선언이 발표되었을 때도, 2009년 미국에 오바마 정권이 들어설 때도 남과 북은 이미 통일의 길에 들어섰다는 담론이 줄을 이었다. 심지어 이명박 정권 시기에도 ‘2013년 체제’라는 담론이 희망적 관측을 담고 지식사회에 퍼져갔다.

▲ 2000년 6월13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00년 6월13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2015년 남북 관계는 충돌 위기 상황까지 맞았다. 가까스로 유지되어 온 개성공단마저 2016년 2월 박근혜 정권이 전격 폐쇄했다. 이미 미국 NIC는 다른 전망을 하고 있었다. 2000년에는 남북이 2015년 통일을 이루리라 보았던 NIC가 2030년에도 남북 사이에 긴장이 이어지며 남한은 경제를 위해서는 중국을, 안보를 위해서는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NIC 보고서를 과대 해석할 이유는 없지만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통일한국’은 언제나 일본을 중시하는 미국에 부담이 될 수 있다. 2000년 보고서가 조지 부시 정권의 평양 압박과 남북대화를 견제하는 정책에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2012년 보고서를 짚어보면 “경제를 위해서는 중국을, 안보를 위해서는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남한에 대한 ‘불편함’이 읽혀진다. 2030년까지 남북 사이에 긴장이 이어진다는 전망에 미국의 희망이 담긴 것이라면 2018년 다시 시작한 남북 대화에 들뜬 낙관은 금물이다.

옹근 1년 전 나는 “촛불정부의 진지한 대화 제의를 미사일로 답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라고 김정은에 촉구했다(김정은의 길, 문재인의 손, 2017년 8월15일). 서울과 평양은 1년 전과 견주면 어쨌든 가까워졌다. 그래서다. 지금이야말로 실사구시가 절실하다.

에두르지 않고 곧장 말한다. 남쪽의 부익부빈익빈 체제나 북쪽의 ‘수령경제 체제’ 모두 겨레의 미래일 수 없다. 남쪽사회는 자살률, 출산율, 노동시간, 사회복지를 비롯한 삶의 거의 모든 수준에서 선진 자본주의 체제와 현저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북쪽은 과도한 명령경제 체제가 이어지면서 1990년대 ‘대량아사 사태’를 맞았다. 고비를 넘기고 시장이 퍼져가고 있지만 평양 밖 민중의 삶은 여전히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북 모두에 ‘문재인-김정은 노믹스’가 절실한 이유다. 5천년 역사에서 남북을 아우르는 경제발전 구상은 한 차례도 없었다. 왕조시대에서 곧바로 식민지, 분단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남북은 인구 7500만명이 넘기에 남쪽은 과도한 수출입의존도를 줄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견할 수 있으며 북쪽은 풍부한 지하자원과 우수한 노동력으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무개차를 타고 18일 평양순안공항에서 백화원 초대소로 이동하며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무개차를 타고 18일 평양순안공항에서 백화원 초대소로 이동하며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정치적 통일은 마음에서도 미뤄야 마땅하다. 남과 북이 경제발전을 공동으로 구상하고 협력해서 각각 부익부빈익빈 체제와 수령경제 체제를 넘어서는 ‘문김노믹스’를 구현해간다면, 통일은 저절로 온다. 문제는 문김노믹스의 장애물이다. 현재 가장 큰 걸림돌은 ‘북미 핵문제’—북핵문제가 아니다—이다. 안타까운 것은 일방적으로 미국을 대변하는 국내 매판적 언론권력이다.

그럼에도 문김노믹스의 꿈과 의지를 공유할 수 있다면 엄연한 현실인 북미 핵문제도 남과 북이 공동으로 넘어서야 옳다. 국제사회 여론을 트럼프의 미국 아닌 남북이 주도해가야 한다. 김정은의 결단이 더 필요하다. 문재인이 내민 손을 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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