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라시가 돌았다. 한 대기업 여자 사원에 관한, 이 여자 사원이 사내 남자 사원들 5명과 성관계를 맺고는 이를 평가했다는, 그 중에는 최근에 결혼한 유부남도 있다는,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아주 자극적인 요소를 모두 갖춘, 지라시가 말이다. 여기에 여자 사원의 사진과 휴대폰 번호 등 개인정보도 함께 공유되면서 지라시는 ‘진짜’인 것처럼 돌아다녔다. 그렇게 사람들의 엄지와 엄지를 거쳐 지라시에 등장한 여자 사원은 이미 ‘○○(회사명)녀’가 돼 있었다.

사실일까? 지라시를 받아 보고 머리 속에 떠오른 의문이었다. 배턴을 이어 받은 다른 의문, 사실이라 해도 우리가 이 여자 사원의 사생활과 개인정보를 공유해도 될까? 마지막 의문,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지금 여자 사원은 지라시로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 어느 의문 하나 당장 답을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지라시는 지라시일 뿐, 취재를 해야 했다. ‘지라시 중심에 서있는 여자 사원(A씨)에게 직접 들어야 한다.’

쉽진 않았다. 당장 A씨에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었다. 말 그대로 ‘백방으로’ 여자 사원을 만나기 위한 접촉에 나섰다. 구체적인 접촉 경로와 방법에 대해서 언급할 순 없지만(보도 이후 A씨가 속한 기업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와 경로를 물었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 2주 만에 어렵게 A씨와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A씨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당연했다. 지라시가 SNS에서 한창 떠도는 시기는 조금 지나 있었기에, ‘기사화’는 A씨에게 ‘긁어 부스럼 만들기’ 같은 것이었다.

▲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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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이 시작됐다. 우선 지라시 내용이 모두 사실무근이라면 ‘바로잡을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거짓으로 가득 찬 지라시를 마구잡이로 유포했을 때, 지라시에 등장하는 당사자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기사를 통해 조금이라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지라시가 덜 만들어지고 덜 유포되면 좋겠다는 말까지. 그렇게 여자 사원은 인터뷰에 응했다. 거짓을 바로잡겠다는 의지와 자신은 이미 피해자이지만 새로운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공감이 합쳐진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 관련기사 : 한국일보 / 평범한 회사원을 ‘○○녀’로 몰고간 지라시 ]

용기의 인터뷰는 충격으로 가득 찼다. 인터뷰 내내 A씨는 억울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물을 흘리면서도, 꿋꿋하게 ‘지라시 유포 이후’를 풀어냈다. A씨와의 대화를 A4용지에 옮겨 담으니 14장이나 됐다. A씨 삶은 지라시에 ‘영향’을 받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파괴’돼 있었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휴대폰, 병원에서 자신의 이름조차 쉬이 말할 수 없는 공황, 그리고 “내가 죽어야 끝날 거 같은” 공포감까지. 여자 사원의 삶은 이미 지라시가 유포되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태였다. 누군가는 “재미로”, 누군가는 “우월감에” 지라시를 뿌려댈 때마다, A씨의 인격과 영혼은 갉아먹히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를 동시다발적인 ‘지라시 폭력’에 A씨는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던 것이다.

▲ 이상무 한국일보 기자
▲ 이상무 한국일보 기자
A씨는 이 사건을 겪으며 들은 말 중 가장 듣기 싫었던 말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를 꼽았다. 어떤 소문이나 구설수에는 다 ‘이유’나 ‘근거’가 있을 거란 추정을 대변하는 옛 속담인데, “이런 지라시가 도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식의 뒷말들이 끊임없이 오갔다는 것이다. A씨 사건을 취재하면서 알게 됐다.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이다. 옛 선조 말 틀린 게 하나 없다는 말은 틀렸다. 그러니 제발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만 보고 “저 집 불을 때나 보다”고 판단하고 이웃에게 말하고 퍼트리지 말자. 지라시 피해자는 A씨로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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