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들! 그런 비뚤어진 시선으로 기사 써라. XX년들아.”

안희정 1심 선고 보도 이후 한 매체의 여성 기자가 메일로 받은 내용이다. 메일을 받은 해당 기자는 기사 내용이 주는 메시지는 전혀 읽지 않고 메신저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메일을 받은 후 기자는 한동안 우울감에 빠졌다고 말했다.

여성 기자들을 향한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5일 한 언론사 기자가 쓴 미투 사건 기사 댓글창에는 “역시나 ○○○ 여자 기자. 쓰레기야” 등의 욕설이 올라왔다. ‘국경없는 기자회(RSF)’와 인터뷰한 한 여성 기자는 온라인에서 “너무 많은 말을 하는 여성은 강간 당해야 한다”라는 발언을 봤다고 밝혔다.

기자를 향한 협박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그중에서도 주로 탐사보도 기자와 여성 기자가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여성 기자들은 온라인에서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을 향한 생명의 위협, 강간하겠다는 성적 협박 등의 위험에 처해있는 상황이다.

앞서 ‘국경없는 기자회’는 지난 7월25일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온라인 성희롱-악플러들의 공격’이란 주제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의회는 지난해 4월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에 대한 47개 회원국의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여론조사에 응답한 언론인 940명 중 40%가 지난 3년간 “사생활에 영향이 미칠 정도”로 괴롭힘의 대상이 돼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53%는 ‘사이버 학대’를 당했다고 답했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권위주의 정권을 비판하는 언론인일수록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국 언론계의 경우 이와 같은 조사를 체계적으로 진행한 사례가 없다. 

▲ ‘국경없는 기자회’가 공개한 보고서의 한 장면.
▲ ‘국경없는 기자회’가 공개한 보고서의 한 장면.
영국의 싱크탱크인 ‘데모스’는 지난 3월 수천 건의 트윗을 연구한 결과 여성 기자가 남성 기자보다 더 많은 모욕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국경없는 기자회’의 또 다른 보고서에서 밝혔다. 이에 따르면 여성 기자들에게 자주 사용되는 모욕적인 단어는 ‘걸레’와 ‘강간’, ‘창녀’ 등이었다. 공격행위는 여성 혐오적인 표현과 조작된 사진 보내기, 포르노 영상 보내기 등이었다.

인도의 탐사 보도 전문 프리랜서 기자 라나 아윱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민족주의 담론을 비판했다가 악플러의 표적이 됐다. 그녀는 악플러들이 자신을 창녀와 매춘부, IS 성노예로 불렀다고 말했다. 악플러들은 그녀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하고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가져간 뒤 ‘가능한 가장 무례한 방식’으로 포토샵을 했다고 설명했다.

2014년 아제르바이잔의 부패를 취재하던 기자 카디자 이스메이요바는 그의 적들로부터 실질적인 공격을 받았다. 적들은 그녀의 집 안에 카메라를 숨기고 사생활을 촬영했고 이 영상은 협박에 이용됐다. 알제리의 저널리스트 압두 셈마르는 온라인에서 그의 누이동생을 강간하겠다는 위협을 받았다고 밝혔다.

필리핀 두테르테 정부를 비판해온 대안언론 ‘래플러’의 CEO 마리아 레사는 “정부를 두고 비판 기사를 쓸 때마다 못생긴 개, 뱀으로 불렸고 강간과 살인 위협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국경없는 기자회’는 기자를 향한 악플러들의 온라인 공격이 기자들에게 자신검열을 일으킨다며 우려했다.

앞서 홍남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도 지난달 10일 여성가족부가 주최한 ‘여성 관련 이슈 보도 관행 및 언론인 의식 조사’ 연구 발표회에서 “젠더 이슈를 다루면 ‘메갈 기자’로 불리고 인터넷 댓글이나 이메일로 위협을 당한다”고 설명했다. 홍 연구원은 “악플러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나면 기자들도 위축된다. 따라서 젠더 이슈 발제 등에서 자체 검열을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한 3년차 방송사 기자와 5년차 경제지 남성 기자는 “이제까지 기사를 쓰고 난 후 단 한 번도 협박 메일이나 성적으로 희롱하는 댓글을 받아본 적이 없다. 동료 여성 기자들을 상대로 온라인상에서 행해지는 폭언을 듣고 놀랐다. 기사 내용이 불만이면 기사 자체에 항의하면 되지 왜 성적 공격 등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입을 모았다.

기자들은 온라인에서의 성희롱과 혐오공격에 어떻게 대처할까. 많은 언론인은 혐오표현 메시지를 무시하길 택한다. 러시아정부 비판매체에서 일하는 저널리스트 엘레나 밀라시나는 “난 그런 메시지를 읽지 않고 바로 삭제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일간지 ‘라방가르디아’의 브뤼셀 특파원 베아트리즈 나바로 역시 “내 정신건강을 위해 꽤 많은 날 동안 소셜 네트워크를 멀리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지난해 6월 자사 기자를 향한 누리꾼들의 도를 넘은 인신공격에 회사 차원에서 법률 지원을 하기도 했다. 당시 이제훈 한겨레 편집국장은 “기사 내용에 대한 비판은 지나치더라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 있지만 성폭력과 협박, 가족에 대한 욕설, 개인 신상 털기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밝힌 바 있다.

▲ 국경없는 기자회.
▲ 국경없는 기자회.
‘국경없는 기자회’는 정부가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악플러에 대해 △기소 강화 △ 체계적 사건 수사 등을 조언했으며 UN의 경우 각국 정부가 언론인의 안전을 위한 특별대표 기구를 창설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콘텐츠를 다루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에게는 위협과 공격의 대상이 되는 기자들을 위해 피해자 중심의 비상경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러한 방법을 구축해 기자들이 침묵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악플러의 공격을 받은 기자의 경우 △ 동료와 상급자에게 알릴 것 △ 스크린샷을 촬영해 증거를 보관할 것 △ 몇 시간 동안 소셜 네트워크와 연결을 끊을 것 등을 조언했다. 악플러의 공격 후에는 △ 확실한 증거를 기반으로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할 것 △ 단순한 사건 신고가 아닌 고소를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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