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옆 밤섬은 고려 때 죄인들 유형지였다. 조선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 유본예가 쓴 ‘한경지략’에 밤섬 이야기가 나온다. 밤섬에는 약풀과 뽕나무를 길렀다. 멀리서 보면 그 섬이 마치 밤처럼 보여 밤섬이라고 불렀다. 늙은 버드나무와 맑은 모래가 조화를 이루던 밤섬 사이 서강은 아름다웠다.
조선시대엔 여의도보다 밤섬이 더 유명했다. 조선총독부가 1914년 펴낸 서울지도에도 여의도는 연병장만 있는 잡초투성이 버려진 땅이었다. 물론 여의도엔 사람이 살지 않았다. 반면 밤섬엔 집 짓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1925년 큰 홍수때 밤섬을 휩쓸어 큰 피해를 입었다. 그때 밤섬엔 170가구 1천여 명이 살았다.
1968년 2월 밤섬에 살던 62세대 400명 넘는 주민들은 모두 땅을 빼앗기고 쫓겨났다. 당시 불도저 서울시장 김현옥이 홍수 때마다 물길을 막고 선 밤섬을 없애기로 했다. 밤섬에 다이나마이트를 묻어 폭파시켜 물 아래로 잠기게 했다.
김현옥 시장은 밤섬 주민들을 모두 홍익대 옆 와우산 꼭대기로 강제이주시켰다. 김현옥은 ‘불도저 김’으로 불렸다. 보상금 없이 토지를 강제수용했고 걸핏하면 불도저를 동원해 철거를 강행했다.와우아파트는 1970년 김지하의 시 ‘오적’에도 등장한다. “건설이닷. 모든 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김현옥 시장은 고은의 만인보에도 등장한다. “무턱대고 밤섬을 폭파한 뒤 장승 같은 키로 박정희의 개발에 신났다.”
지난 6일 밤 11시22분께 동작구 상도동 한 공사장에서 지반이 침하하면서 상도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건물 일부가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천만다행으로 심야 시간이라 사람이 다치진 않았다.
인근 주택가 주민과 유치원은 이미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관할 구청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난 4월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가 작성한 자문의견서엔 “빠른 시일 내 현장방문과 관련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고 돼 있었다. 이를 놓고 정치권은 벌써부터 부실감리, 불법행위 은폐와 축소라며 공세를 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