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방북 동행을 공식 초청했지만 야당 대표들이 거부하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입에서 ‘당리당략’이라는 말이 나오고,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도 이례적으로 SNS로 서운함을 드러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10일 국회의장단과 5당 대표에게 방북 공식초청의 뜻을 밝혔다. 최대한 예우를 지키는 선에서 초청 의사를 타진했지만 싸늘한 답변이 돌아왔다.

임 실장은 “국회에서는 또 국회가 정상회담에 수행으로 함께하는 것이 과연 맞느냐 하는 이런 논의가 일었던 것을 제가 잘 기억한다”며 국회 특별단을 구성해 북한 정당과 만남과 함께 별도의 일정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행원 자격이 아닌 특별단의 지위를 부여해 북한 정당과 만남을 추진하겠다는 제안이었지만 야당의 입장을 돌려세우긴 역부족이었다.

정부의 공식 초청 기자회견이 끝난 후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11일 한병도 정무수석이 야당 대표를 찾았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 입에서 “당리 당략을 거둬라”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초당적 협력을 요청하는 내용이었지만 야당 대표들을 향한 강한 불만이 섞여 있는 뉘앙스였다.

임종석 비서실장도 초당적 협력을 요청하는 차원에서 SNS에 글을 올렸지만 이미 국회 동행 거부의사를 밝힌 야당 대표에 대한 서운함을 에둘러 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임 실장은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각 당의 전당대회가 끝나고 언론들은 일제히 ‘올드보이들의 귀환’이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보고 배운 저는 그렇게 만은 생각지 않는다”고 밝혔다.

임 실장은 “어쩌면 후배들에게, 또 국민들에게 (과거에 우리에게도 있었던) 새로운 정치 문화를 보여줄지 모른다는 기대를 마음 한 켠에 가지고 있다”며 “정치인들이 그저 효과적으로 싸울 궁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연인지 몰라도 주요 정당의 대표 분들이 우리 정치의 원로급 중진들이다. 저는 이 분들 복귀의 목표가 ‘권토중래’가 아니라 ‘희망의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면 한다”고 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미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어지러운 한국 정치에 '꽃할배'같은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오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겉으로는 중진으로 구성된 정당 대표를 치켜세우면서 그에 걸맞은 역할을 요청하는 내용이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중진의 역할을 해달라는 압박성 메시지로 볼 수 있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이 같은 메시지를 남긴 것은 여러 해석을 열어놓고 국회 동행 문제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임 실장이 부정했지만 ‘올드보이들의 귀환’이라는 말도 중진 정당 대표들을 오히려 낙인찍는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 평양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9월1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국회의장단과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여야 5당 대표 등 9명을 초청한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 평양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9월1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국회의장단과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여야 5당 대표 등 9명을 초청한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를 제외하고 국회 동행에 동의했던 정당 안에서도 청와대의 국회 방북요청 과정이 신중치 못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비서실장이 각당 대표들을 향해 ‘꽃할배’ 운운하는 sns 글을 올렸다. 이 또한 중진의 역할을 강조하고 협력을 호소하는 선의로 포장돼 있다”면서도 “그러나 비서실장이라는 지위에서 이 시점에 다른 의미로도 들릴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해 꼭 이런 글을 써야 했을까”라고 반문했다.

박 전 의원은 “남북관계와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모든 정권이 초당적, 대승적 협력을 강조한다. 토론과 논쟁을 하되 이른바 ‘전략적 이익’을 고려한 협럭을 늘 한편에 열어놓자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보면 남북정상회담과 국회비준 등을 대하는 보수정당들의 입장이나 태도는 옹졸하고 현명하지 못한점이 있다”면서 “그러나 정상회담을 불과 몇일 앞두고 청와대가 국회의장단과 각당 대표를 방북단에 초청한 것은 그 긍정적 의미와 선의에도 불구하고 세심하지 못하고 다소 일방적인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임종석 실장이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과거 남북평화 활동과 발언을 제시한 것에도 “압박이라는 반박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자회견 발표 후 한병도 정무수석이 정당 대표를 찾는 프로세스 과정도 오히려 반발을 불러 일으키는데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럼에도 물밑 접촉 이전 청와대가 정당 대표에게 기자회견 형식을 빌려 공식 초청의 뜻을 밝힌 것은 성사시켰을 시 남북교류 협력 메시지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입장에선 이미 대통령이 지난 5당 원내대표와 만남에서 국회 동행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적극 협조를 요청했다고도 볼 수 있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SNS에 서운함을 드러낸 것도 일련의 과정을 볼 때 야당이 애초부터 협력할 의지가 없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국회 동행 문제로 정부와 국회 사이 불신만 쌓인 꼴이 되면서 앞으로도 남북 교류협력을 놓고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김의겸 대변인은 11일 오후 브리핑에서 “같이 갈 수 있는 분들하고 같이 갈 것”이라며 국회 동행 초청을 수락한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그리고 정의당 대표들과 방북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정부 대 정부 뿐 아니라 국회 차원에서도 대화의 물꼬가 틀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지만 일부 야당이 빠지면서 국회 차원의 남북 협력 교류가 원활하게 진행될지 불투명하다.

김 대변인은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를 “당장 처리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단지 남북 정상회담 뿐 아니라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국민적 동의를 얻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를 열어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을 의결하고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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