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역 민영방송인 TJB 대전방송(사장 이광축)에서 일한 아나운서들이 퇴직금을 받지 못해 진정을 넣었는데 노동청이 다른 판단을 내놔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들은 TJB와 ‘전속 아나운서 출연 계약서’ 등을 쓰고 약 5~7년 근무했다.

가장 먼저 퇴사한 A씨는 TJB에 퇴직금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아나운서를 프리랜서라고 보고 지급하지 않았다. 지난 2017년 10월 A씨는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하 노동청)에 퇴직금 진정을 넣었고 노동청에선 ‘체불 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를 발급했다. 해당 확인서는 근로감독관이 노사를 조사한 뒤 체불액을 적어 발급하는 문서다.

노동청에선 퇴직금 체불이 있다고 봤지만 뒤이어 검찰 지휘 하에 이루어진 수사에선 다른 결과가 나왔다. 지난 2월 노동청은 “TJB는 A씨가 노동자임을 전제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내사종결(혐의없음)’했으니 민사상으로 권리구제를 받길 바란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A씨는 2년 넘는 민사소송 끝에 ‘체불 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에 명시한 금액 중 일부를 받았다. 노동청과 마찬가지로 민사에선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이후 퇴사한 B, C씨도 TJB에서 퇴직금을 받지 못했고,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 이번에는 노동청이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내사종결(혐의없음)했다. B씨는 노동청에 재진정을 넣었지만 같은 결론을 얻었고, C씨는 노동청에 재진정을 준비하고 있다.

▲ 대전 지역 민영방송 TJB 대전방송
▲ 대전 지역 민영방송 TJB 대전방송

C씨는 미디어오늘에 “A와 동기로 입사해서 같은 조건에서 일했는데 노동청에선 다르게 판단했다”며 “노동청에서 퇴직금 체불을 확인하고도 검찰 수사에서 사업주의 고의가 없다고 ‘혐의없음’ 나왔는데 재량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A씨와 같이 노동청에서 ‘체불 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를 받으면 민사에서 법률구조공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B, C씨는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노동청 관계자는 1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개별 사건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며 “당시 근로감독관은 모두 다른 부서로 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전민방 아나운서의 사례를 듣고 “노동청에서 다른 결과가 나왔다면 조금씩 근무여건이 달랐을 것”이라며 노동청과 검찰의 판단이 다른 것에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에 체불이 있어도 사업주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엔 그런 결론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나운서들을 대리한 김성훈 노무사는 미디어오늘에 “A씨 노동청 진정 이후 회사에서 업무지시를 최소화해 노동자성을 없애려 한 건 맞지만 (B와 C가 A와 노동조건이 달랐던 건) 짧은 기간이었다”고 전한 뒤 “A씨는 진정을 취하하거나 사업주 처벌을 거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나운서들은 노동자가 아니다? 

아나운서들은 채용과정이 정규직과 다르지 않았고, 사실상 노동시간과 장소가 지정됐으며 기본급 등을 고정했고 회사 승인 없이 다른 영업활동을 할 수 없었던 점 등을 들어 자신들의 노동자성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TJB는 이들이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 프리랜서라고 반박하고 있다. 

TJB 관계자는 1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출퇴근을 보고하지 않았고, 프리랜서라서 종합소득세를 냈지 정직원처럼 연말정산을 하지도 않았다”며 “시청자들이 헷갈리기 때문에 동일 권역에서는 다른 방송에 나가지 못하게 한 거고 어차피 다른 방송사에서 받아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청과 검찰에서 오랜 기간 조사해 노동자가 아니라고 판단내린 결과이니 당사자들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TJB 사옥.
▲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TJB 사옥.

그러나 프리랜서라는 열악한 지위를 이용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C씨는 “6명의 아나운서가 모두 회사를 나가면 안 된다며 3명은 1년 계약, 3명은 2년 계약을 하겠다고 했다”며 “아나운서가 직접 프로그램 편집까지 했는데 수당은 3000원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또한 노동자성을 부인하기 위해 국·팀장 지시가 아닌 작가 등을 통한 지시체계로 바꾸거나 아나운서들과 밥을 먹지 않는 식으로 사내 문화를 바꿨다고도 주장했다. 아나운서들은 정규직이 아니라 노조의 보호를 받지도 못했다.

TJB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한 아나운서도 있다. 퇴사한 아나운서 입장에선 회사·노동청·검찰 모두 일관성이 없다고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TJB 관계자는 “능력이 있다면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도 있다”며 “인사위원회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의 근본에는 상시인력인 아나운서를 프리랜서로 채용하는 문제가 있다. TJB 관계자는 “다들 몸값 키워서 서울(방송사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지역 민영방송사가 정규직으로 뽑아봤자 더 큰 방송사로 이직하기 때문에 내부에서도 아나운서를 정규직으로 뽑는데 찬성 여론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TJB 관계자는 “광고도 엄청 줄었고 정규직 아나운서를 쓸 형편이 안 된다”고도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