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는 ‘80해직을 말한다’는 기획세미나가 열렸다. 이 세미나 주관단체 중 하나인 미디어오늘에서는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제목으로 80년 언론인해직과 이명박근혜 언론인해직이 닮은 꼴이라고 보도했다. 나는 이날 ‘민주화 이후 80해직기자들의 투쟁’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러나 1000명이 넘는 80해직기자들의 삶을 다 추적할 수도 없고 해서 나는 내 사례를 들어 남자 기자들과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여기자의 40년 인생을 이야기했다. 말이 40년이지 80년 광주로 인해 해직된 이후 40년 세월이 보통세월인가? 그 때문인지 난 각사 80해직기자들의 이름이 화면에 흐르던 세미나 초입부터 겉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내 발제를 할 때에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디어오늘은 인터넷판 기사에 내 우는 얼굴을 내보내고 내가 울먹이며 발제문을 읽어내려 갔다고 썼다.

그런데 내가 왜 시종 울며 발제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내용이 쏙 빠진 기사를 읽으며 나는 남성언론에 의해 내가 다시 침묵 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됐다. 나는 이날 혼자서 남성언론에 대한 미투운동을 벌였다. 나는 1991년 10년간의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 돌아와, 복직(연합뉴스)도 거절당하고 한겨레 합류도 만류(?) 당한 후 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이 대선출마와 함께 91년 11월 창간한 문화일보에 들어가 강제로 사표를 쓰게 된 2004년 8월까지 13년간을 일했다.

▲ 유숙열 이프북스 대표,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 유숙열 이프북스 대표,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사진=이우림 기자

문화일보에서 일하는 동안 난 노동조합의 대모(?)라는 이유로 숱한 인사상의 불이익과 해고의 위협을 당했다. 마지막에는 사장의 논설위원실 발령 명령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논설실장이 그 얼마전 내가 비상임 방송위원이 된 것을 꼬투리삼아 “대통령(당시 노무현대통령)한테 임명장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을 비판하는 논설을 쓰겠냐?”는 해괴한 논리를 들며 나의 논설위원실 진입을 반대했다. 그런 상태로 1년 넘게 버티면서 나는 건강의 위협을 느껴 결국 사표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이 50에 언론인으로서의 커리어는 중단되고 나는 알지 못할 억울함으로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봄인 2005년 5월 이프에서 주최하는 안티미스코리아 합숙훈련장에서 나는 병원으로 실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꼬박 7년 동안 투병생활을 했고 2012년 봄 의사의 치료종결 판정을 받고 약도 끊었다. 그런데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 때문에 7개월 만에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페미니스트로서 나는 죽은 예수를 끌어안은 어머니 마리아의 비통한 모성을 다룬 작품 ‘피에타’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전혀 내 예상을 벗어났고 그 핵심 메시지는 “모든 여자는 구멍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머니의 구멍도 예외가 아니다. 만일 그녀가 자식을 낳아 그 애를 버리고 키우지 않았다면”이라는 것이었다. 그 영화는 예술의 허울을 썼을 뿐 실상은 여성에 대한 성고문이었고 나는 이를 악물고 그 영화를 보아야만 했다.

나는 당시 내가 쓸 수 있었던 유일한 매체인 ‘웹진 이프’(www.onlineif.com)에 ‘김기덕의 자궁모독’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평을 썼다. 그런데 이 글에 아주 가까운 후배로부터 ‘영화는 영화다’라는 반론이 들어왔다. 그 후배는 문화일보에서 노조위원장을 지내기도 하고 영화 담당을 오래 하기도 한 기자 출신으로 ‘이프’에 칼럼을 기고하는 후원자이기도 했다. 나는 김기덕 감독이 영화담당기자와 술자리에서 내내 무릎 꿇고 술을 마셨다는 얘기를 바로 그로부터 들었다.

나는 내 편인 줄 알고 믿었던 그 후배의 반론에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진보 남성들의 해묵은 페미니스트 비판과 닮아 있었다. 그의 반론에 대해 나는 “김기덕 감독은 성공한 금기파괴자일 뿐이다”라는 제목으로 다시 반론을 썼다. 그러자 그 후배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장밋빛 영화가 아니라 핏빛 영화다”라며 다시 반론을 보내왔다. 그 다음 나는 병원에서 ‘피에타’ 3편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 제목은 “어머니의 자궁에 대하여 – 피에타 후유증”이었다.

그 때 단 한 언론이라도 여성의 시각으로 보도했다면 혹은 단 한명의 평론가라도 김기덕 영화의 폭력성을 지적했다면 어쩌면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997년 여름 내가 남성 언론에서 일하면서 ‘지식인 남성의 성희롱’을 특집으로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잡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를 창간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또한 2017년에 일어난 김기덕 감독에 대한 미투운동이 5년 일찍 그 때 일어났더라도 어쩌면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록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이지만 김기덕 감독에 대한 미투운동이 벌어지고 MBC 피디수첩에서 ‘거장의 민낯’을 방송했을 때 나는 김기덕 감독의 피해자가 나 혼자만이 아니었구나 하고 알 수 없는 안도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만 2012년 처음 ‘피에타’가 상영되었을 때 어떤 언론이나 평론가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기덕 감독은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개량한복 차림으로 수상식장에서 ‘아리랑’을 부르며 승승장구했다. 난 절망했다. 남성 언론에 절망하고 남성예술에 절망하고 남성 권력에 절망하고 남성 네트워크에 절망했다. 그래서 한번 무너졌던 내 정신은 다시 무너져 내렸고 나는 또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은 내가 입원했던 2012년 11월 22일 병원 독서실에 비치되어 있던 황동규 시인의 시집 ‘몰운대行’을 읽고 쓴 시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기억하며 - 나도 한때는 김수근을 좋아했다

신(神)이 되느냐

신발짝이 되느냐
시인(詩人)이 되느냐
인연(姻緣)이 되느냐!

네갈래 길에서

난 시인을 ‘선택’했다.
어짜피 무녀리와 숭여리는 적이다.
아무리 불쌍하게 보여도 적은 적이다.

시인을 선택한 나는

황동규 시인의 시집 ‘몰운대行’을 읽는다.
그 시집에는 시인은 어렵게 살아야, 관악일기,
비린 사랑노래, 풍장시, 뉴욕일기 등
70여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런데 그만

‘열(熱)받고 살다’에서
‘턱’ 걸리고 만다.

“내 시대 사람들은 어디 살건

열받고 살았다.
김수근이 지은 감옥 문예회관 문에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
이 기쁨!“

난 ‘이 기쁨’에서

또 다시 ‘턱’하고 걸리고 만다.

나에게 김수근은

‘턱’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이 물고문 받고 죽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지은 사람이다.

또한 지금은 상기하기도 아스라한 80년 여름

내가 그 유명한 고문기술자 이근안한테
물고문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김수근은 성당이나 교회, 극장 건물만

감옥처럼 지은 것이 아니다.
모든 집을 감옥처럼 지은 그는
진정한 감옥짓는 기술자였던 것이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벽돌집은

붉은 벽돌집보다 검은 벽돌집이 더 폼난다.

문예회관은 붉은 벽돌이지만

경동교회와 남영동 대공분실은 검은 벽돌집이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지나가며 보는

그 집은 세련되고 폼나 보인다.

그 곳에는 천정모서리 사방에

검은 모니터링 화면이 둘러쳐 있어
수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영화처럼 움직였을 것이다.

또 자살방지를 위해 주먹도 빠져나갈 수 없게
길죽하니 좁은 창문이 3겹으로 겹겹이 닫겨있었다 .
또 남민전의 이재문이 죽어나갔다는 칠성판과 함께
몽둥이를 들고 있는 건장한 남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방도 있었다.

칠성판에는 안전벨트같은 버클들이

주르륵 달려 있었고 테이블위에는
고추가루가 3/4 가량 담긴
물컵도 있었다.

황동규 시인은

“내 시대 사람들은 어디 살든”
즉 미국서 살건 한국서 살건
“열받고 살았다”고 말한다.

시인은 친구들의 삶에서

가난을 느낄지 모르나
내 눈에 그들의 가난은
어째 낭만적으로 들린다.

권력, 금력, 학력에 기술력까지 갖춘

그의 시대 엘리뜨들이 느끼는
‘열받음’의 토로에
나는 어째 실실 허탈한 웃음이
비어져 나오는 것일까?

차라리 난 최백호가 부르는

‘낭만에 대하여’를 들으며
도라지위스키나 한잔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싶다.

근데 그의 시대가 지나간 지금도

도라지위스키가 있을까?

차라리 한영애 노래를

선택하는것이 더 나을까?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나한테 도라지 위스키 한잔 사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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