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하반기 업무보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이 김태호 PD라는 점은 현재 MBC가 놓인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권석 MBC 예능본부장은 김태호 PD가 3개월 동안 연수를 끝내고 지난달 말 복귀해 후속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며 기획단계부터 ‘김태호 브랜드’ 마케팅으로 회사 수익을 증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도 김 PD 활용 방안을 주문했다. 

한 사람의 스타 PD에 상당한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는 현실은 현재 MBC의 위기를 보여준다. MBC의 위기는 수년간 급변한 미디어 환경 가운데 정체돼 있었다는 데 기인한다. 드라마와 예능은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유료방송이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MBC는 지상파 공통 과제인 판로 확보와 동시에 예능·드라마 부문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심하지만 정교한 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MBC 드라마의 경쟁력은 과거 ‘드라마 왕국’이라는 명성과 거리가 멀다. 주성우 MBC 드라마본부장은 10일 방송문화진흥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작가와 연기자들을 만나면 ‘MBC를 꼭 해야 하느냐’는 반응이 나오는 슬픈 현실이다. MBC 드라마 소구력이 떨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한 해 드라마 제작 편수가 170편에 육박하면서 수급 경쟁이 치열해졌고, 유료 방송사는 자금력을 동원해 스타 작가를 선점하는 만큼 MBC가 설 자리가 마땅치 않다.

주 본부장은 “드라마는 대개 ‘1년 농사’로 진행되는데 지난 공백 기간 동안 전혀 기획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수익성 강화를 위해 자체 제작을 강화하고 젊은 친구들 입봉을 많이 시켰다”고 말했다. 젊은 PD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장기적으로 MBC 경쟁력을 강화해나가겠다는 전략이지만, 그간 스타성을 인정받은 여러 드라마 PD들이 MBC를 떠난 상황에서 드라마 중심을 잡고 있는 인물이 부족하다는 점이 드러난 측면도 있다.

예능 부문도 고민이 깊다. 현재 MBC 예능을 견인하는 프로그램은 ‘나 혼자 산다’와 ‘라디오스타’ 정도다. 권석 MBC 예능본부장도 이날 업무보고에서 상반기 대표 성과로 두 프로그램을 꼽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무한도전’ 후속으로 관심을 모은 ‘뜻밖의Q’, 게임과 예능 접목이라는 실험적 도전을 강조한 ‘두니아-다시 만난 세계’ 시청률은 2%대 부진한 성적표로 시즌 종료를 앞두고 있다.

권석 MBC 예능본부장은 ‘뜻밖의Q’ 후속인 10대 타깃 오디션 프로그램 ‘언더 나인틴’으로 주말 경쟁력 회복에 나서는 한편, 하반기 금요일 밤 시간대 ‘예능 존(zone)’ 강화 계획을 밝혔다. 금요일 오후 9시부터 ‘나 혼자 산다’ 방영 시간대인 오후 11시대까지 예능 블록으로 편성하는 구상이다. 내달 첫방송 예정인 예능드라마 ‘대장금이 보고 있다’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MBC, 1년 지난 콘텐츠 ‘넷플릭스’ 유통 협상도 추진

MBC는 방영된 지 1년이 지난 구작(舊作)들의 넷플릭스 유통을 위한 협상도 진행하고 있다. 콘텐츠 유통 다각화 일환이다. 박태경 MBC 디지털본부장은 푹(pooq)유료회원을 현재 68만 명 수준에서 80만 명까지 늘리는 등 푹 중심 정책을 유지하는 한편, 글로벌 OTT(Over The Top·온라인동영상서비스)와 해외 IPTV 채널 등을 통한 유통 경로 다각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상파 3사(KBS·MBC·SBS)가 소속된 방송협회는 넷플릭스를 ‘미디어 공룡’이라 칭하며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지만, 글로벌 사업자인 넷플릭스를 언제까지 무시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3사는 협약에 따라 자체 OTT 플랫폼인 ‘푹’(pooq)으로 온라인 방송을 유통하고 있다.

▲ 서울 상암동 MBC 사옥.
▲ 서울 상암동 MBC 사옥.
다음 부사장 출신인 문효은 방문진 이사는 이날 “넷플릭스 성장은 올해 훨씬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3개사 단합은 전체 미디어 시장 변동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며 “3사 단합이 포털 견제를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 글로벌 사업자가 등장해 흐름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신인수 이사 역시 “지상파 3사 연대 강화가 또 다른 방송 3사 고립이 될 수 있다”며 “옛날에 비해 방송 3사의 위상이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시장에서 외면할 수 없는 수익원이다. 최근 CJENM이 넷플릭스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해외판권을 넘겨 300억 원 안팎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반면 MBC 드라마본부는 △지상파 광고 하락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으로 막힌 중국 시장 △자금조달 위한 유상증자·분사 불가한 공영방송 특성 등으로 드라마에 투자할 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MBC 업무보고가 끝난 뒤 최승호 사장은 “저는 ‘실패할 자유’를 주겠다고 얘기하면서 (사장으로) 들어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실패한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자율과 자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는 도전 등으로 구성원들 내부에 쌓이는 내공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체 역량을 키우고 제작비 조달을 위해 펀드를 만드는 등 여러 자금 마련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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