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을 지낸 박보영 판사가 10일 여수시법원에 출근하자 민주노총 쌍용차지부 노조원 30여명이 면담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동아일보는 11일자 12면에 <험난했던 ‘시골 판사’ 첫 출근길… 시위대에 밀려 넘어지기도>라는 제목으로 이 사실을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노조원들은 법원 민원실에서 난동을 부렸다”고 썼다. 쌍용차 노조원들은 박보영 판사가 대법관 주심을 맡아 판결한 쌍용차 정리해고 합법판결이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대상이었다는 의혹에 답변해 달라며 면담을 요구했으나 박 판사는 면담을 거부했다.

▲ 한겨레신문 11일자 14면
▲ 한겨레신문 11일자 14면

조선일보는 11일 16면에 <‘대법관 시골판사’ 첫 출근길엔 민노총 시위>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실제 쌍용차 재판 결과가 정권에 유리하게 내려졌다는 근거는 현재까지 아무것도 없다. 선후 관계를 따져봐도 근거가 희박하다. 양승태 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은 쌍용차 판결 1년 뒤 작성됐다”며 의혹 자체를 부인하는 입장에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법원 보안 직원과 취재진에게 둘러싸인 채 집무실로 향하다 둘러싼 사람들에게 밀려 안경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다”고 썼다.

▲ 동아일보 11일자 12면
▲ 동아일보 11일자 12면

반면 경향신문은 이날 10면에 “쌍용차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최근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대상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면담을 요구하던 시위대는 “사실을 말해 달라. 우리는 박 판사에게 지난 과오가 있음을 추궁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변화를 만들고 싶어서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 조선일보 11일자 16면
▲ 조선일보 11일자 16면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2014년 대법원이 고법 판결 9개월 만에 선고를 뒤집는 속전속결 재판을 했”다며 박보영 판사의 대법원 판결이 이례적임을 강조했다. 한겨레신문은 14면에 사진기사로만 처리했다. 아래는 주요 일간지 관련기사 제목이다.

조선 16면 <‘대법관 시골판사’ 첫 출근길엔 민노총 시위>
동아 12면 <험난했던 ‘시골 판사’의 첫 출근길… 시위대에 밀려 넘어지기도>
세계 10면 <‘시골판사’ 박보영, 첫 출근길서 시위대에 봉변>
경향 10면 <쌍용차 해고자들 “우리를 기업합니까” / 박보영 ‘시골판사’ 첫 출근길 어수선>
한겨레 14면 사진기사 <박보영 전 대법관, 쌍용차 해고자 항의 뚫고 출근>

박보영 전 대법관이 대법관 퇴임 뒤 시골 판사로 재직한다는 소식을 이미 여러 언론이 미담기사로 쏟아냈다. 그러나 박보영 전 대법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명해 대법관이 됐고,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에 3번이나 등장한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고 노회찬 의원 삼성떡값 뇌물명단 공개도 유죄

박보영 전 대법관은 2013년 ‘삼성 뇌물검사’ 명단을 폭로한 고 노회찬 의원에게 유죄확정 판결을 내려 국회의원직을 박탈한 장본인이다. 당시 노 전 의원은 도둑놈보고 ‘저 놈들이 도둑놈들이야’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자신에게 시련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이 역시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처럼 항소심은 노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박보영 대법관이 유죄로 뒤집었다. 노 전 의원 판결은 사법농단 문건엔 등장하지 않는다.

박보영 전 대법관은 2014년 철도노조 파업사건 상고심에서 1,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노조 간부들에게 유죄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이는 양승태 사법농단 문건 중에 ‘VIP 보고’ 문건에서 “국정에 협조한 사례”로 등장했다.

박보영 전 대법관은 2016년 9월 민청학련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역시 1,2심 승소를 뒤집고 재심판결이 내려진 뒤 6개월 내 소송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배상청구를 기각시켰다.

박보영 판사는 1984년 M-16 소총으로 자신의 가슴과 눈썹에 3발의 총을 쏴 자살했다는 허원근 일병 의문사 사건에서 유족들이 제기한 재심청구를 기각했다.

장애인에도 일반교통방해 유죄…철도노조·민청학련 사건도 맡아

박보영 전 대법관은 2012년 10월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된 장애인 관련 집회에 참가해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모(46)씨의 상고심에서 무죄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2심은 전 차로를 점거한 시간이 15분 정도에 불과하고 점거 차로 외 다른 차로에서 차량 통행이 가능했던 점을 감안해 무죄로 판단했었다. 하지만 박보영 대법관은 차량 통행이 가능했더라도 이씨가 벌인 행진으로 극심한 차량 정체가 발생했다며 이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당시 법조계 일각에선 집회·시위 과정에서 수반될 일부 도로 점거 행위에 대해 대법원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헌법재판소가 집회·시위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교통방해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데도 박 전 대법관은 일반교통방해 혐의를 엄격히 적용해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켰다.

박 전 대법관이 전관예우를 마다하고 시골판사로 자원하자 한 신문은 사설에서 “대법관 출신이 개업하거나 로펌에 들어가면 가만히 있어도 수억원대의 수임료를 받는 전관예우가 암암리에 통하는 것이 우리 법조계의 현실인 탓이다. 그의 소신 행보는 뜨거운 박수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상찬했다.

쌍용차지부는 동아일보의 11일자 12면 〈시골판사의 첫 출근길…시위대에 밀려 넘어지기도〉라는 제목의 기사와 관련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쌍용차지부는 박 판사 면담을 요청했던 노조원들은 철문에 갇혀 들어오지도 못했는데 시위대에 밀려 넘어졌다고 보도한 게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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