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유센터 ‘와락’이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협력사업으로 진행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배우자 실태조사 결과를 6일 발표했다. 지난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해고 노동자와 복직자의 건강 상태 조사는 여러 번 진행됐지만, 해고 노동자의 배우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권지영 와락 대표는 이날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발표회에서 “이번에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고 하니 많은 언론사 기자들에게 그동안 가족이 어떻게 생활했고 심정이 어떤지 궁금해하는 인터뷰 요청을 많이 받았다”며 “어떤 기자는 ‘당당한 일이고 잘못한 게 아닌데 떳떳하게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것조차 대중 앞에 나서서 말하기 어렵게 우리 사회가 해고 노동자들을 대해 왔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조사 과정에서 그때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일은 당사자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많은 분이 그때 기억을 다시 얘기하면서 감정이 올라와 괴로워했다”며 “이번 발표는 쌍용차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시 보여주기 위한 목적의 시간만이 아니다. 어떤 사람의 가족에게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당사자와 가족이 겪게 된 지난 10년의 일이 어땠는지, 이런 식의 해고가 반복돼선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6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가족 실태조사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정아 전 가족대책위 대표가 발언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6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가족 실태조사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정아 전 가족대책위 대표가 발언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외려 이번 연구에 참여했던 전문가들과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이 묻고 싶은 말은 그동안 국가가 해고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해줬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쌍용차 해고자, 가족들을 대신해 언론이 국가를 향해 물었어야 하는 질문이다.

”이 10년이라는 흘려보낸 시간. 우리가 겪은 파업이 아니었으면 겪지 않아도 됐을 일들을 겪으며 가졌던 나의 감정과 기억들은 과연 누가 보상해 주는 건지 묻고 싶다. 그냥 퉁치고 지나가면 되는 건가. 내가 지금 잘살고 있기 때문에 그 10년은 없었던 일처럼 넘어가도 되는지 국가에, 이명박에게, 경찰청 그리고 모든 권력자에게 똑똑히 묻고 넘어가고 싶다.”

이정아 전 쌍용자동차 가족대책협의회 대표는 2009년 파업으로 해고됐다가 지난해 4월 복직된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아내다. 쌍용차 사태가 터졌을 때 그는 4개월 된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었다. 다행히 이씨의 셋째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올해 10살의 초등학생이 됐다. 쌍용차 가족들은 이 아이를 ‘파업둥이’라고 부른다.

이씨는 지금까지 아이에 대한 얘기를 제대로 해본 적이 한순간도 없었다고 한다. 이씨는 “지난 10년간 무수히 많은 발언을 하고 어제 그제 연달아 와락에 찾아오는 기자들과 인터뷰도 많이 했는데 아이들에 관한 질문은 여전히 나에게 발목 잡는 일이다. 말을 꺼내려면 아직도 눈물이 터지는 일이다”고 했다.

이날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가 ‘당신과 당신의 가족은 이런 해고를 받아들일 수 있나요’라는 주제로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실태조사 연구결과 발표를 마친 후에도 해고자 자녀들에 대한 한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번 연구에 배우자에 대한 조사는 있는데 왜 2세에 대한 대용은 포함되지 않았는지 의문이었다.

김 교수는 “배우자들에게 (자살 생각 등을) 질문하기까지도 용기가 필요했다. 연구자 입장에서 당연히 궁금하고 묻고 싶었지만 아이에 대한 것까지 질문하기 어려웠다”며 “가장 비참하고 아픈 질문을 숫자로 만들어내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기억하게 만드는 질문이어서 어떤 질문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망설였다. 이 발표가 나가고 기사화되면 이걸 보는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은 분명 고통스러울 거로 생각한다. 배우자에 대한 조사는 올해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2015년에 이어 올해 다시 데이터를 모으고 비참한 경험을 굳이 캐묻고 숫자로 만들어 공유하는 이유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라는 창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경영상 이유로 해고당하는 노동자와 가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해고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이 다른 상황과 시점에서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 지난 6월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쌍용자동차 고(故) 김주중 조합원의 추모 분향소가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차려졌다. 사진=김한주 참세상 기자
지난 6월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쌍용자동차 고(故) 김주중 조합원의 추모 분향소가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차려졌다. 사진=김한주 참세상 기자
김승섭 교수 연구팀은 와락 활동가들과 함께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쌍용차 해고자 89명과 복직자 34명, 해고자 배우자 28명, 복직자 배우자 38명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중 배우자들에 대해서만 ‘지난 1년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은 결과 해고자 배우자 48.0%(12명)와 복직자 배우자 20.6%(7명)가 ‘있다’고 답했다. 일반 여성과 비교했을 때 해고자 배우자는 8.67배, 복직자 배우자도 3.27배나 높았다.

김 교수는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인데 가장 자살률이 높은 집단과 비교했을 때 이렇게 수치가 높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며 “최근 천안함 생존 장병에 대한 연구에서 생존 장병 50%가 자살 생각을 했다고 답했는데 해고자의 배우자가 48%로 나왔다는 점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고·복직 노동자와 배우자들은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심리적 경험 외에도 ‘지난 1주간 우울증상’(해고자 89.3%, 해고자 아내 82.6%), ‘2009년 이후 차별 경험’(해고자 아내 54.6%, 복직자 아내 62.5%), ‘지난 1년간 가족생활 불만족도’(해고자 58.0%, 해고자 아내 33.3%) 등 조사에서 일반 인구보다 건강과 정서 상태가 훨씬 악화해 있었다.

김 교수는 “해고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기사가 나갈 때마다 이들을 비웃거나 욕하는 댓글이 많이 달린다. 한국사회에선 비정규직 실업 노동자와 청년이 해고 노동자를 비난하고 있는데 ‘을’이 ‘을’을 비난하고 싸우는 동안 이 구조를 만든 권력과 사회는 점점 더 튼튼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충분한 재교육과 재취업 정책이 없는 상황은 해고자와 배우자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며 “한국 사회에서 지금 누구도 향후 몇십 년간 양질의 일자리가 대량으로 생기긴 쉽지 않다고 생각해 고용불안과 정리해고는 우리 사회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처럼 남을 가능성 높다”며 고 진단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온 이상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언론에서 피해 당사자의 경험을 꼬치꼬치 캐물어 구체적 경험을 떠오르게 하는 것 자체가 가해가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며 “트라우마 등을 이겨내는 힘을 개인이 가지도록 하는 게 전체적인 치유 과정인데 단번에 그날의 기억을 얘기해보라는 건 당사자들에게 굉장히 큰 피해가 될 수 있음을 주의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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