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연금’, ‘기금고갈론’, ‘지급 보장 법제화’. 이 세가지 단어는 오히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이끄는 프레임으로 작용하고 있어 유의해야한다. 지급보장 법제화도 본질이 아니다. 정치권은 정치공방에 몰두하면서 이런 자극적 언사를 위주로 쓰고 언론도 여기에 따르고 있다.”

지난달 17일 국민연금 자문위원회가 국민연금 장기재정 추계를 발표하며 국민연금 불안이 고조됐다. 미디어오늘은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인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을 만나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을 물었다. 오건호 위원장은 국민연금 제도 불안은 사실이지만 자극적 단어를 사용해 불신을 조장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상황을 솔직하게 밝히고 사회적 합의를 강화할 때라고 밝혔다.

오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 보장의무를 명확히 하라고 한 발언의 ‘정치적 효과’는 인정하지만 논쟁의 본질은 아니라고 짚었다.

“현재도 보장에 준하는 조항이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 단체나 일부는 그 문구를 강화하라는 건데, 강화된 조항이나 현재 조항이나 법제적으로 같다. 실효성은 법제적으로 크지 않지만 지급 불안감이 커진 상태에서 국민들 불신을 완화하고 연금개혁 논의가 활성화된다면 정치적 효과는 있다.

다만 이건 본질이 아니다. 진짜 쟁점은 연금개혁이다. 명분상 안정이 아니라 실제 안정화를 원한다면 연금개혁이라는 진짜 쟁점으로 옮겨와야 한다. 실질적 안정을 위해서는 결국 보험료 인상을 꺼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으니 하나의 명분으로 자꾸 지급보장 명시를 이야기한다.”

▲ 3일 서울 중구의 한 건물에서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이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 3일 서울 중구의 한 건물에서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이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두 번째 프레임은 ‘기금소진론’이다. 장기재정추계(70년)에 따르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2042년부터 지출이 수입을 넘어서, 2057년에 고갈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발표 이후 국민연금 가입자들 불안은 커졌고 비난 여론도 거세졌다. 이에 ‘기금고갈론’으로 공포를 조장하지 말라는 여론도 나왔다. 그러나 오 위원장은 ‘기금고갈’이 아니라 ‘기금고갈론’이라는 말은 마치 기금고갈이 사실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고 짚었다.

“기금고갈 통계를 낸 것은 공포마케팅이나 광풍이 아니라, 진단 결과다. 대책 논의를 위한 분석한 거다. 불편한 것도 인정해야 대책논의가 가능하다. 나아가 재정추계를 못 믿는다는 말도 나오는데,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위에서 토론하는 거다. 기금고갈을 기금고갈‘론’이라며 비판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실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책임있는 논의를 방해한다.”

세 번째 프레임은 ‘용돈 연금’이라는 조롱이다. 오건호 위원장도 “가입기간이 짧고, 소득이 적어서 생긴 일을 비아냥거린다고 풀리느냐”며 ‘용돈 연금’이라는 단어를 자제하길 당부했다.

‘용돈 연금’은 현재 국민연금 수급자들이 받는 연금이 평균 39만원이라는 통계에서 시작됐다. 오 위원장은 “현재 국민연금액이 적은 이유는 연금의 역사가 짧아 가입기간이 짧아서다. 하지만 자신이 납부한 비용에 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연금을 받고 있다. 미래에는 지금보다 대체율이 더 낮아지지만 여전히 낸 것보다 2배는 더 받는다. 이런대도 용돈연금이라고 이야기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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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 프레임 외에도 오건호 위원장은 자유한국당 등에서 나오는 “국민연금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부정적 의견을 더했다. 지난달 28일 자유한국당 함진규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에서 “(정부는) 635조원이나 되는 세계 3대 연기금 중에 하나인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을 1%만 높여도 기금 고갈 시기는 5년 이상 늦출 수 있고, 보험료율을 2%p를 올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임을 되새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오건호 위원장은 “수익률이 높아지면 당연히 재정이 좋아지겠지만 고수익은 고위험을 수반해야 한다. 연기금의 공적 성격상 고위험 자금에 들어가기 어렵고 고수익 추구는 어렵다”고 했다. 오 위원장은 “기금 수익률이 1%도 안되는 상황은 이례적이지만 이는 한국당이 집권했어도 똑같았을 것”이라며 “국내 주식시장이 하락한 결과다. 게다가 연기금의 시한을 반년~1년 치로 분석하는 건 맞지 않다. 보통 장기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적 공세이며 기금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건호 위원장은 가장 중요한 건 정부가 국민연금에 책임 의식을 공유하고, 국민이 연금개혁에 나서게 하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젠 수십년째 9%에 묶여 있는 보험료율을 올리자는 힘든 말을 꺼내야 한다.

“일각에선 부정적 경우의 수만 부각한다. 불신을 완화하고 전향적 연금개혁 논의로 가야 한다. 정치적 해석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보험료율은 현재 9%(가입자 4.5%, 회사 측 4.5%)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18%까지 올랐고, 한국도 단계적으로 13%까지는 올려야 한다. 정치권은 이런 말을 하기 어렵겠지만 국민연금을 있는 그대로 보고 정공법으로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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