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최승호 MBC 사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권력에 장악된 MBC ‘정상화’ 과제를 안고 취임했다. 정상화라는 단어에는 이른바 ‘세월호 참사 오보’로 대표되는 보도 참사를 비롯해 정부편향적 불공정 보도, 공정방송을 요구했던 구성원들에게 가해진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았던 경영진 청산 등이 뒤섞였다. 최 사장 취임 10개월 차를 맞은 지금 MBC는 청산과 재건을 향해 어디쯤 왔을까. 

최승호 사장은 지난 3일 방송의 날을 맞아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지난해 12월 새 경영진이 취임한 뒤 MBC는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청산과 재건을 동시에 해왔다”고 자평했다. 최 사장은 “어떤 조직보다 투명하고 깨끗했던 MBC가 지난 세월 부패에 젖은 현실이 드러났고 청산 조치를 했다”며 △불공정보도 △사원 ‘블랙리스트’ 분류 및 부당노동행위 △여권 권력자 추천 인사, 자격 요건에 안 맞거나 경력을 속인 부당채용 △성추행·성희롱·갑질·횡령 등 은폐 등의 조치 사례를 언급했다. 

▲ 최승호 MBC사장. ⓒ최승호 페이스북
▲ 최승호 MBC사장. ⓒ최승호 페이스북
최 사장은 “내년이면 MBC 프로그램들이 세상을 담고 공동체 미래를 생각하는 더욱 MBC다운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에 집중했다”며 “1년 전의 MBC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은 저조차도 차마 보기 힘든 것이었다면 지금은 마음으로 시청자들께 추천하고 싶은 방송이 됐다”고 자평했다. 이어 “예능과 드라마, 라디오 등 부문에서도 참신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새로움을 탐험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계속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실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승호 경영진’을 바라보는 구성원들 시각은 복잡하다. 당장 청산도 재건도 구체적인 비전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내부에서 나왔다. 최승호 사장 취임 이후 기대를 걸었던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김연국·MBC본부)는 4일 ‘72일 파업’ 1주년 노보에서 전에 없는 혹평을 내놨다. 

MBC본부는 이날 “미디어 환경은 급격히 변화했다. 지난 10년 가까이 치른 전쟁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과거 청산은 내부의 저항과 외부의 반격으로 흔들리고 있다. 미래 전략은 관성과 구성원들 사기 저하로 표류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공영방송으로서 자기 역할을 찾기 위한 전략을 갖고 있는가. 경영진은 당장 내년의 단기적 적자 해소가 아닌, 10년을 내다보는 ‘전략’을 찾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 최승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최승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현업에 종사하는 구성원들 고민은 깊다. MBC본부 서울지부 조합원들은 최근 좌담회에서 예능의 경우 ‘안전주의’, 뉴스와 인사는 ‘전략 부재’를 꼽았으며 나아가 ‘혁신을 위한 리더십 부재’라는 문제의식을 전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을 연출하는 오누리 PD는 “예전 본부장들은 말도 안 되는 출연자들을 프로그램에 꽂아 넣고 ‘오더’를 안 들으면 PD들을 괴롭혔는데 그런 오더는 사라졌다”면서도 “새로움을 탐험하자고 화두를 던졌으니 진짜 새로움을 탐험해야 하지만 정작 새로움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남호 MBC기자는 “‘어떤 뉴스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공감대가 없다. 공정성, 신뢰, 깊이, 친절 등 단어가 날아다니지만 완결된 문장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인사에도 임기응변이 많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비판은 근본적으로 위기를 타개해 나가야 할 최 사장과 경영진의 전략과 비전을 구성원들이 알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귀결된다. MBC 구성원들 사이의 무사안일주의, 여전히 변화가 요원한 지역 MBC와 서울MBC의 협업 문제 등도 과제로 지목됐다.

경영진 전략 부재는 대규모 적자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나왔다. MBC본부는 “2017년 김장겸 사장의 MBC는 70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던 지난 10년 김재철·안광한·김장겸 MBC가 세월을 허비한 결과였다”며 “(최승호) 경영진 처방은 안이했다”고 진단했다. 올해도 MBC 적자가 1000억 원대로 예상되는 가운데, 최 사장은 앞서 제작비를 증대해 프로그램 개별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MBC본부는 ‘과거 청산 없이 미래 전략도 없다’며 “노사가 MBC 신뢰 회복을 위해 출범한 정상화위원회는 사측 관심과 지원 부족, 적폐 청산에 대한 잘못된 신호로 인한 회사 내부 저항과 비협조 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승진 배제 블랙리스트’, ‘아나운서 블랙리스트’ 등 감사결과에 따른 법적 후속 조치가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최 사장 취임 이후 현재까지 MBC에선 14명의 직원이 해고됐다. 성폭력·외주사 갑질·횡령 등 비리 행위 관련 10명, MBC 구성원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 관련 2명, 왜곡 보도 관련 2명이다. 노조는 더 적극적이고 가시적인 적폐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2014년 입사한 경력기자 12명 가운데 8명이 청와대·여당 정치인들 추천서를 받아 MBC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나자 MBC본부는 경영진에 경력기자 채용 관련 감사결과 발표와 인적 청산·인력 재배치 등 후속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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