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이 6월14일부터 8월21일까지 5차례 가량 진행되면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욕설이나 물리력 행사같은 시민들의 격렬한 반응이 대폭 줄었다. 사람들은 언론 보도와 SNS로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시위를 한다’는 정보를 접했고, 이 정보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일과 불편함에 대한 완충제 역할을 했다.
1999년부터 시작된 휠체어 이용 장애인 리프트 추락사고는 2001년, 2002년, 2004년, 2006년, 2008년, 그리고 2017년까지 정말 오래, 꾸준히 이어졌다. 크게 다치거나 사망한 사건을 제외하더라도 리프트 고장은 일상이다. 과연 장애인들이 이 오랜 시간동안 공무원을 향해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시민을 볼모로 잡아야겠다!’고 나선 걸까. 장애인들은 정말 ‘민폐’ 외에는 말할 방법을 몰라서 이러는 걸까.
2001년 오이도역에서 리프트가 추락했을 때 장애인들은 지하철 선로를 점거해 대대적인 이동권 투쟁에 나섰다. 3년간 이어진 투쟁은 2005년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서울시는 2011년에는 3개 역을 뺀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2015년에는 ‘서울시 장애인 이동권 선언’을 통해 모든 역에 1동선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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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약속은 3년 만에 ‘구조상 어려움이 있어 엘리베이터 설치가 불가능한 역이 27개’라는 답으로 돌아왔다.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신길역 추락사에 도의적 유감은 통감하지만, 공식사과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박원순 시장은 2011년, 2015년 두 차례 모두 서울시 이동권 선언의 주체였다. 그런데 아직도 장애인 이동권이 이해되지 않는 모양인지 휠체어를 타고 직접 체험을 해야겠다고 나섰다. 공무원과 아무리 이야기해도, 시장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내도, 장애인 이동권은 사회의 스포트라이트 뒤켠에서 번복되고, 앞에서는 ‘체험’의 장치로 소비된다.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집단을 우리는 ‘사회적 약자’라고 호명한다.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큰 자원이자 마지막 전략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제를 이해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가능한 한 소란스럽게 외치는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우아하게’ 문제를 바로잡을 권력이 없어서다.
‘지하철 연착 투쟁’은 장애 이슈로는 드물게 각종 포털사이트 메인에 올랐다. 장애인의 날이 아니면 도통 메인에 오를 일이 없는 이름, ‘장애인’은 지하철을 세움으로써 비로소 ‘사회면’, ‘오늘의 사진’에 드러났다. 시위는 비가시적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시위 퍼포먼스의 강렬함이 메시지를 지워서는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수확을 기대하며 생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를 향해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시민적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