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출판사는 광고 없이 독립 잡지들을 낸다. ‘여성의 언어로 말하고 여성의 눈으로 새로운 가치를 읽어내는 문화잡지’를 지향하는 계간지 ‘우먼카인드(womankind)’와 철학을 쉽게 풀어내 ‘보다 충실한 삶’을 찾으려는 ‘뉴필로소퍼(New Philosopher)’다.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 바다출판사에서 나희영 우먼카인드 편집장과 장동석 뉴필로소퍼 편집장을 만났다. 바다출판사에는 문예팀·인문팀·과학팀이 있는데 각각 잡지 우먼카인드, 뉴필로소퍼, 스켑틱(SKEPTIC)을 만든다. 인문학 열풍이 한풀 지나가고 페미니즘 이슈가 더 주목받지만 지난해 11월 창간한 우먼카인드(3000부)보다 지난 1월 창간한 뉴필로소퍼(5000부)의 부수가 좀 더 많다.

▲ 나희영 우먼카인드 편집장(오른쪽)과 장동석 뉴필로소퍼 편집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 바다출판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 나희영 우먼카인드 편집장(오른쪽)과 장동석 뉴필로소퍼 편집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 바다출판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여성의 언어란?

불법촬영·임신중절 등 한국 사회에서 현재 뜨거운 젠더이슈는 의외로 몇 안 된다. 우먼카인드는 여기서 한발 떨어져, 한국 사회에서 널리 유통하지 않는 이야기를 다룬다. 나 편집장은 “페미니즘 책을 소비하는 독자들 요구와 우먼카인드의 온도차가 있다”며 “이슈파이팅하는 잡지는 아니고 좀 더 스펙트럼이 넓다”고 말했다.

‘여성의 언어’로 말한다는 건 뭘까. 나 편집장은 “여성들이 ‘설치고’ 행동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는 게 우먼카인드가 지향하는 여성의 언어”라며 “여성의 목소리를 안정적으로 낼 지면 제공이 우먼카인드의 존재이유”라고 말했다.

최근에 나온 우먼카인드 4호에서 김하나 작가는 과거 여성 작가들이 왜 남자의 이름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등의 내용을 다뤘고, 김진아 카페 울프소셜클럽 대표는 남성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돈이 어떻게 흐르는지 분석해 어차피 써야 할 돈이라면 여자에게 돈을 쓰자는 주제로 글을 썼다. 박선영 전 기자는 한국 사회, 특히 언론사에서 벌어지는 젠더불평등을 본인의 경험으로 풀어 딸에게 설명하는 형식의 글을 기고했다. 모두 호주판 우먼카인드를 현지화(localizing)하는 과정에서 나 편집장의 고민이 묻어난 원고들이다.

▲ 우먼카인드 홈페이지
▲ 우먼카인드 홈페이지

나 편집장은 “호주판과 주제도 다르게 선정하고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슈를 담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장 편집장은 “뉴필로소퍼는 호주판이랑 주제를 같이 가긴하지만 한국 독자들은 기승전결 구성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걸 맞추지 않으면 어색해하는 부분이 있다”며 “번역하고 재구성하고 디자인하는 게 한 달 가까이 걸리는 지난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우먼카인드는 지난 2014년 창간한 호주판 원고를 약 70%정도 번역해 싣고 나머지는 한국 필자의 글로 채운다. 영미권에선 기존 삶의 대안을 찾자는 취지로 다양한 주제로 확대하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 독자들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먼카인드는 문화·인문학에 중점을 둔다. 매호 4~5개 이슈를 다루고, 국가 하나를 선정해 그 나라 사람의 이야기도 담는다. 최신호에선 아이슬란드를 다뤘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를 보면 아이슬란드는 지난 9년간 성평등 지수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과 이후 1980년 최초 여성 대통령으로 1996년까지 집권한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의 인터뷰가 실렸다. 이 외에도 창간호부터 터키, 탄자니아, 티베트 등 국가 하나를 정하고 그 나라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 계간지 우먼카인드. 사진=이우림 기자
▲ 계간지 우먼카인드. 사진=이우림 기자

주 독자는 여성이다. 나 편집장은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 여성 독자가 90% 정도”라고 했다. 잡지 이름이 진입장벽인 걸 아닐까. 나 편집장은 “오히려 서구 페미니즘과 한국 페미니즘의 온도차가 진입장벽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젠더 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이 주로 여성이지만 남성에게도 의미가 있다. 나 편집장은 “앞으로도 사회는 변할 거고 젠더이슈는 계속 뜨거울 텐데 제호만 보고 여성만 보는 잡지라고 외면할 수 없다”며 “기존 주류 담론들이 남성중심이라 우먼카인드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잡지가 여럿 있지만 이런 특징 때문에 “여성 잡지 중에서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자부했다.

“사실 모든 사람의 언어가 동일하다. 여성의 언어가 하나로 규정된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 그런 목소리를 듣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장 편집장이 덧붙였다. 여성의 언어가 여성에 갇혀있지 않고 철학이 철학자들 말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새로운 철학, 생활철학

“교수는 필진에서 빼고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생활철학잡지를 표방했는데 하이데거가 어쩌고 이런 얘기를 하긴 그렇다. 젊은 평론가·시인·작가 등을 필진으로 넣으려 한다.”

뉴필로소퍼는 철학을 쉽게 풀어 삶에 영향을 주고자 한다. 장 편집장은 “창간호에서 스마트폰을 쓰면서 대면접촉이 사라진다는 얘기를 작가 김민섭씨에게 부탁하면서 고색창연한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해당 글에서 김씨는 자신이 과거 삐삐부터 휴대폰, 스마트폰을 쓰면서 애인과 어떻게 소통해왔는지 자신의 경험으로 보여줬다.

▲ 장동석 뉴필로소퍼 편집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 바다출판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 장동석 뉴필로소퍼 편집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 바다출판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장 편집장은 “특히 젊은 독자들은 경험을 통해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에 이런 형식의 글을 실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오는 10월에 나올 4호의 주제는 스포츠다. 그는 “축구를 사랑하는 여성평론가에게 ‘승패가 없는 평론의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왜 승패에 몰두하는가’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뉴필로소퍼의 철학은 어렵지 않다.

호주판 원고를 기본 틀로 하되 다소 산만한 주제를 분류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한국 필자를 찾는 게 편집장의 중요한 일이다. 그는 “(남성 패션지) GQ가 오래갈 수 있는 이유는 뻔한 이야기를 늘 다른 방식으로 전해서가 아닐까”라며 “영미권의 철학정신을 어떻게 한국에 소개하고 현지화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뉴필로소퍼의 독자도 주로 2030세대다. 장 편집장은 “처음엔 분명한 독자층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젊은 세대가 인문철학에 관심이 높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까지 인문철학이 고담준론만 읊조리는 식상한 사람들의 것이었는데 ‘생활철학’에 반응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계간지 뉴필로소퍼. 사진=이우림 기자
▲ 계간지 뉴필로소퍼. 사진=이우림 기자

어떻게 살 것인가

두 잡지 모두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하는 동시에 잡지의 생존과 번영을 꿈꾼다. “마이너스가 될 순 없죠.”(나 편집장), “쉽게 접지는 않겠지만 잡지가 창간하고 사라지는 시기가 짧아졌죠. 한 후배에게 정기구독 좀 하라고 했더니 ‘이거 3~4년은 낼 거죠’라고 해요. 유지하는 게 어려운 시대가 됐잖아요.”(장 편집장)

우먼카인드 다음 호는 11월에 나온다. 지난해 11월에 창간했으니 1주년이다. 냉정하게 평가받을 시점이다. 뉴필로소퍼도 내년 1월이면 1년이 된다. 나 편집장은 “온라인 반응을 오프라인에서 눈으로 확인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호주판과 계약 조건이면서 편집방향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두 잡지에는 광고가 없다. 철저하게 콘텐츠의 질로 승부한다.

출판사에서 단행본을 만든 경험을 살려 ‘과월호’ 개념은 없애고 꾸준히 팔릴 에버그린 콘텐츠(Evergreen Contents)를 추구한다. 두 잡지는 최근 각 1호씩 전자책으로도 출간했다.

나 편집장 말대로 “단행본을 함께 만든 저자들이 잡지 필진으로 참여할 수 있고, 잡지가 지닌 속도감·시의성에 단행본이 가지는 콘텐츠의 단단함” 등이 이들의 경쟁력이다. 장 편집장은 “시사주간지 시장은 거의 죽었다”며 “긴 시기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 그게 승부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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