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2012년 파업 이후 유력 정치인 추천을 받은 기자들을 대거 경력기자로 채용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커지고 있다.

27일자 한국일보를 보면 MBC가 2014년 3차례 걸쳐 헤드헌팅(Head Hunting·재취업중개) 업체를 통해 채용한 경력기자 12명 가운데 8명은 청와대나 새누리당 출입 기자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과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등 청와대·여당 실세 정치인들 ‘추천서’(Reference)를 받아 MBC에 제출했다.

보도 이후 MBC 안팎에선 2012년 파업에 참여했던 인력들을 배제하는 대신 ‘사측과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로 물갈이를 하려 한 구체적 정황으로 보고 있다. 한국일보는 “언론계 이직 과정에서 ‘평판 조회’는 통상적으로 이뤄지지만 추천서를 요구하거나 이를 제출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 이정현 의원(왼쪽)과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미디어오늘·민중의소리
▲ 이정현 의원(왼쪽)과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미디어오늘·민중의소리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당시 MBC로 이직한 기자들을 추천·평가했던 정치인들은 이정현 전 수석, 홍문종 의원 외에도 윤영석 자유한국당 의원, 김행·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 이종현 전 청와대 춘추관장, 조해진 전 의원이었다. 모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실세 정치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한 이들이다.

이들은 MBC에 지원한 기자들을 ‘MBC에서도 훌륭한 기자가 될 것’, ‘MBC 미래에 꼭 필요한 존재’, ‘근성 있고 신중한 기자’, ‘복잡한 정부 정책 핵심을 빨리 파악하는 기자’, ‘이명박 정부를 취재하며 매우 심층적 기사를 씀’, ‘이명박 마크맨으로서 대선 과정 충실히 취재’, ‘이명박 대통령 임기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기자’ 등으로 평가했고 이러한 내용이 기자 추천서에 첨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MBC는 타 언론사처럼 채용 공고를 낸 뒤 경력기자를 뽑아왔지만 2014년 인력 채용 방식이 ‘헤드헌팅 업체 활용’으로 바뀌었다. 당시에도 “사측이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뽑기 위해 공개채용 제도를 포기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특히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합격한 기자 12명 가운데 10명은 MBC 사측에서 먼저 작성해 업체에 넘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헤드헌팅 업계에선 이런 방식의 채용을 ‘타깃 서치’(Target Search·기업의 구체적 의뢰를 받고 움직이는 것으로 보통 동종업계 경쟁사에서 누군가를 빼오고 싶을 때 쓰는 방식)라고 흔히 부른다. 그러나 업계에서도 “언론사 채용으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아울러 헤드헌터를 통한 채용은 당시 MBC 사측이 이명박·박근혜 청와대를 출입하거나 새누리당을 출입했던 기자들을 강하게 선호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사측은 채용을 원했던 타사 기자들을 선별한 뒤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자기 방식대로 ‘검증’한 것으로 보인다.

▲ 한국일보 27일자 1면.
▲ 한국일보 27일자 1면.
문제는 이들에 대한 검증 잣대 가운데 하나가 정부·여당 유력 정치인들의 ‘평판 조회’라는 점이다. 27일 당시 헤드헌터였던 ‘프로매치코리아’ 김아무개 부사장에 따르면, MBC는 김 부사장에게 기자들에 대한 레퍼런스 체크(Reference Check·평판 조회)를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현직 기자들에 대한 헤드헌터의 평판 조회는 보안 유지에 어려움이 있다. 이를 테면 재직하고 있는 언론사 동료 선후배를 상대로 헤드헌터가 기자 평판 조회를 진행하면 ‘아무개가 MBC로 이직한다’는 입소문이 날 것이고 이로 인해 구직자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이에 김 부사장은 블라인드(Blind·평판 조회에 응할 참고인을 채용 후보자에게 비공개로 하고 평판 조회를 진행하는 방식)가 아닌 오픈 레퍼리(Open Referee·평판 조회에 응할 참고인을 채용 후보자가 스스로 지정해 사전에 공개 제출하는 것) 방식을 제안했다. 

최종적으로 구직 기자들의 출입처 관련 인사들과 전직 동료들이 제공하는 평판을 받아 각각 ‘레퍼런스1’(Reference1), ‘레퍼런스2’(Reference2)를 작성하고 이를 기자들이 헤드헌터에 제공한 이력서 등과 첨부해 MBC에 제출하기로 했다. 앞서 언급한 정치인들은 MBC에 지원한 기자들이 헤드헌터에 제공한 레퍼리(Referee·평판 조회에 응할 참고인)인 셈이다. 즉, 이명박·박근혜 청와대 혹은 새누리당 출입 기자들이 자신들의 자질과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줄 정치인으로 이들을 꼽은 것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MBC로 이직한 기자들이 소속됐던 출입처 인사들, 즉 정치인들이 ‘직접’ 기자 추천서를 작성한 것으로 단정하긴 어려워 보인다. 다만 기자들의 MBC 이직에 과거 정부 청와대·여당 출입처 인사들의 우호적 평가가 영향을 크게 미친 결과라서 ‘권언유착’이라는 지적과 ‘MBC 사측 입맛에 맞는 인사’라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특히 당시 ‘친박 인사’ 위세가 상당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 멘트가 담긴 추천서 자체가 ‘간접 청탁’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MBC 기자들을 추천하거나 평판 조회한 정치인들은 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김 부사장은 이들 정치인을 접촉한 사실은 인정했다.

2014년 새누리당 원내부대표와 원내대변인을 지낸 윤영석 의원은 27일 통화에서 “(MBC로 이직한 ㄱ기자) 추천서를 쓴 기억은 없다. 헤드헌터 이야기도 모르겠고 접촉한 적 없다”며 “ㄱ기자와는 국회의원과 출입 기자 관계였다. 그가 MBC로 옮겨가는 데 내 역할은 전혀 없으며 그분이 MBC로 자리를 옮겼다는 걸 나중에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윤 의원은 “내가 모르는 사이 우리 의원실에서 누군가가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내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없는 것 같다”며 “국회의원 지위를 활용해 MBC 간부에 전화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지만 사회 상규상 아는 사람이 추천서를 써달라고 했을 때 안 써주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90% (확률) 이상으로 내가 추천서를 써준 적은 없는 것 같다”고 거듭 강조했다.

▲ 이동관 전 MB정부 청와대 대변인(왼쪽)과 조해진 전 새누리당 의원. 사진=채널A·미디어오늘
▲ 이동관 전 MB정부 청와대 대변인(왼쪽)과 조해진 전 새누리당 의원. 사진=채널A·미디어오늘
MB정부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 등을 지낸 이동관 전 대변인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 전 대변인은 “MBC로 이직한 기자인지 잘 모르겠지만 헤드헌터 쪽에서 전화를 해 ‘이 기자를 아느냐’ ‘유능한 기자이냐’고 묻는 경우 기자에 좋은 이야기를 하곤 했다”며 “그런 식으로 평판 조회를 하는 일은 왕왕 있다. 만약 내가 MBC에 기자를 직접 추천한다면 문제지만 헤드헌터가 물었을 때 평판을 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전 대변인은 “MBC로 이직한 ㄴ기자는 똑똑하고 유능했던 기자였다. (내가 평판 조회를 했다면) 좋게 이야기해줬을 것”이라며 “2014년은 우리 정부(MB정부)가 아닌 때다. 내가 누구를 추천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춘추관장을 지낸 이종현 전 관장은 “(MBC로 이직한) ㄷ기자 추천서를 써준 적은 없다”며 “다만 평판이나 품성에 관해 코멘트해준 적은 있다. 헤드헌터가 평판 조회를 요청하면 그분(ㄷ기자)뿐 아니라 다른 분들에 대해서도 코멘트해준 적은 있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직할 경우 그런 식으로 평판 조회가 온다”고 말했다.

조해진 전 의원은 “추천서 쓴 기억은 없다”며 “ㄹ기자는 MBC에서 스카우트한 기자로 아는데 스카우트였기에 추천이 필요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 부사장은 조 전 의원에 대해 “김행씨의 경우 차분하게 대해줬다. 반면 조해진씨는 다소 까칠해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일보는 MBC가 헤드헌팅 업체 ‘프로매치코리아’를 선정하는 과정이 불공정했다고 보도했다. △김 부사장과 권재홍 당시 MBC 부사장이 친인척 관계였다는 점 △공개입찰 사전 평가 1위 업체는 탈락하고 권 부사장이 심사위원으로 들어간 프리젠테이션(PT) 발표에서 프로매치코리아로 결과가 뒤집혔다는 점 △업체 선정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사내 감사에도 3차 채용까지 진행하며 2억여 원을 헤드헌팅 수수료로 이 업체에 지급했다는 점 등을 들어 ‘노골적으로 업체를 밀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부사장은 권 전 부사장과 아는 관계였다는 건 인정하면서도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 부사장은 “일반 기준에 비춰봤을 때 우리 수수료가 낮았다”며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가 있었음을 강조했다. 권 전 부사장은 한국일보에 “(지나간 일이라) 이제 관심도 없고 말할 것도 없다”고 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27일 성명에서 “2014년 당시는 MBC 기자 수십 명이 파업에 참여하거나 정권의 방송 장악에 저항하다 보도국에서 쫓겨나 유배지를 떠돌던 때”라며 “경영진이 사전에 낙점한 사람들을 채용하면서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세탁’하고 거액을 챙겨준 셈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형법상 업무방해, 입찰방해, 배임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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