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황수경 전 통계청장을 전격 교체하면서 논란이 확산 중이다. 청와대는 26일 신임 통계청장에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정권이 경제정책 책임자의 잘못을 묻지 않고 엉뚱한 사람을 경질했다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앞으로 통계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정권 차원에서 구미에 맞게 통계를 조작하려고 작정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인사는 결코 할 수 없다”고까지 했다.

황 전 통계청장 체제 아래 나온 가계동향조사 결과가 소득주도성장 정책 기조에 반하는 내용이 나왔기 때문에 황 전 청장을 교체할 경우 충분히 논란이 일 것을 청와대는 짐작했을 수 있었다. 논란을 감수하고라도 통계청장을 교체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관심이 쏠린다.

문재인 대통령과 장하성 정책실장은 지난 주말 연이어 소득주도성장 정책기조 방향을 수정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나온 카드가 통계청장 교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김대기 통계청장이 1년 1개월 만에 물러난 적이 있지만 이후 통계청장들은 1년 8개월 이상 근무했다. 교체시기로 따져도 황 청장이 13개월 정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것은 이례적이라는 얘기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이번 인사는 경질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청와대가 신임 통계청장으로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임명하면서 내놓은 입장을 보면 기존 황수경 전 통계청장 체제 아래 나온 통계 결과에 불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청와대는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을 “경제학자 출신으로 소득분배, 빈곤정책, 사회통합 분야에 정통한 통계전문가”라며 “신규 정책수요를 반영한 새로운 통계지표 발굴, 조사방법 개선 등 신뢰성 있는 통계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통계청을 국가데이터 허브로 거듭나게 할 적임자”라고 밝혔다. 역으로 말하면 황수경 전 통계청장은 신뢰성 있는 통계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말로도 해석된다.

문제의 통계는 1·2분기 소득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소득 결과다. 통계청은 해당 시기 각각 8%, 7.6% 소득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고, 그 결과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와의 격차가 벌어져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 같은 통계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고용률 악화, 저소득층 소득 감소, 그리고 소득주도성장 폐기 주장으로까지 확산됐다.

그런데 이 같은 통계를 두고 통계청 안팎으로 논란이 크게 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통계 문제점을 주도적으로 제기한 인사가 신임 청장으로 임명된 강신욱 연구위원이다.

강 연구위원은 지난 16일 한국노동연구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공동 주관한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해 2017년도부터 실시한 가계동향조사의 표본이 바뀌어 그 이전 조사와의 직접 비교는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통계의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강 연구위원이 제출한 토론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가구 소득 조사의 표본과 방식이 변화됐다. 2016년의 경우 기존 시계열과 동일하게 표본을 교체하고 가계부 기장 방식을 썼지만 2017년부터 표본이 8700가구에서 5500가구로 감소하고, 분기단위로 공표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그리고 2018년엔 다시 8700가구로 표본을 확대했다. 해당 표본은 2017년도 계속 표본과 2018년 신규 표본으로 구성됐다.

표본 변화로 1분기 고령층 비율은 18.1%에서 19.2%로 증가했다. 소득하위 20%인 1분위 가구 중 연령 65세 이상 가구의 비율로 따지면 2017년 1분기 67.3%였던 것이 2018년 67.8%로 상승했다.

강 연구위원은 “2018년 1/4분기의 가구 소득분배 악화는 데이터의 변화, 분기 단위의 변화라는 점을 감안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며 “가구 구조의 변화, 노동시장의 변화가 종합적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소득 계층별 구성 변화가 동시에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같은 토론회에서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8년 추가된 표본의 분위별 비중(1인 가구 포함으로 변동)을 분석한 결과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에서만 추가표본의 비중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1분위에서 추가표본 비중은 71.8%로 나타났는데 다른 분위의 비중은 평균 59.2%로 나왔다. 다시 말해 표본 추가시 소득이 매우 낮은 1분위 가구의 표본이 많이 포함됐다는 얘기다. 홍민기 연구위원은 또한 1분위 추가 표본의 특징으로 20대 가구주의 추가 비중이 80.3%로 매우 높다는 점, 1인 가구의 추가 비중이 63.2%로 약간 높다는 점, 20~30대 1인 가구와 2인 가구가 추가 표본에 많이 포함됐다는 점을 들었다.

결론적으로 홍 연구위원은 “가계동향조사 2018년 표본 추가 시에 저소득 가구가 많이 포함됐다”며 “가계동향조사가 고소득을 잘 포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그동안 많이 제기됐지만 고소득 가구 대신에 저소득 가구를 많이 포함시키는 것이 소득 대표성을 높이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조사 자료인 분기 통계(2018년 변경)를 둘러싸고 과한 해석과 논란이 발생했다. 소득분배 추세 변화에는 10년 이상의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장기적인 시각에서 소득 변화 통계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2018년도 표본 가구수를 변화시키면서 저소득 가구수를 과대 대표하는 우를 범해 최하위 소득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고, 최상위 소득과 간극이 더욱 벌어진 통계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
▲ 문재인 대통령.

토론회에 나온 박상영 통계청 사회통계국 복지통계과장은 “수십 년 동안 이어온 가계동향조사라는 중요한 통계에 혼선과 불신을 야기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참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표본 수가 증가했다고 하면 이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여지를 남겨놨어야 했는데 이를 간과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고 시인한 것이다.

청와대가 전격 통계청장을 교체한 것도 통계청 자료의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선 논란이 있더라도 서둘러 인사를 하는 게 맞다고 결론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청와대가 나서 기존 통계자료의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통계청장 교체를 통해 에둘러 신뢰성 논란을 환기시키면서 소득주도성장 기조에도 변화가 없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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