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시사프로그램 ‘김광일의 신통방통’이 장애인이 피해자인 성폭행 사건을 다루며 2차 가해성 발언과 장애인 비하발언을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22일 강원도 한 마을에서 70~80대 남성 7명이 같은 동네에 사는 장애인 여성을 2004년부터 상습 성폭행했다는 내용을 다뤘다. 그러면서 가해자를 감싸고 피해자를 모욕하는 마을 주민의 인터뷰를 그대로 보도했다.

해당 프로그램에 등장한 여성 주민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정신 빠진 사람이지. 손주 딸 같은 걸, 잘못된 거지”라고 말했고 한 남성 주민은 “노인들 속은 것 같아. 걔는 임신이 안 되는 애다. 그랬는데 그거 임신이 덜컥 돼 버렸네”라고 했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40여개 단체는 지난 24일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속은 것 같다’는 요지의 주민 발언은 그대로 옮기기조차 민망한 내용”이라며 “장애여성과 그 가족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발언이고, 명백한 피해자 인권 침해이며, 2차 피해를 주는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주변인의 발언은 반드시 걸러져야 할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 지난 22일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
▲ 지난 22일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

또한 진행자 김광일씨는 ‘속마음 셀카’라는 코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옛날 저희 시골마을에서는 반편이라고 불렀던 그런 남성이나 여성이 마을마다 한둘쯤 있었습니다. 요즘은 쓰지 않는 말입니다. 지적 능력이 다소 떨어졌던 장애인을 그렇게 말했죠. 아이들도 그 시절에는 예사로이 이런 사람들을 놀려 먹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런 여성에게 여럿이 오랫동안 성폭행을 하는 몹쓸 짓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성적 악귀가 마을에 들어오지 말라고 천하대장군을 세워놓는 그런 마을도 있었죠. 아직도 이런 일이 있나. 이런 사건을 들을 때마다 참 가슴이 먹먹합니다.”

이에 민언련 등은 “‘반편이’는 두말 할 것 없이 명백한 장애인 비하용어”라며 “이런 부적절한 용어를 전문 방송인인 앵커가 ‘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이런 비하 용어를 사용했다”고 비판했다.

“예전에는 놀려 먹기도 했다”, “몹쓸 짓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등의 표현에 대해서도 민언련 등은 “‘장애인 성폭행’을 마치 ‘옛날에는 일상적이었던 추억’ 쯤으로 일축한 것”이라며 “‘성적 악귀’, ‘몹쓸 짓’ 따위의 표현은 성폭력사건의 심각성을 축소하고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고 우려했다.

이들 단체는 이날 방송이 심의 규정을 위반했다고 봤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0조(양성평등) 4항을 보면 방송에서 성폭력, 성희롱 또는 성매매, 가정폭력 등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안 된다. 또한 제21조(인권 보호) 2항을 보면 방송은 심신장애인 또는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을 다룰 때에는 특히 인권이 최대한 보호되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민언련 등은 “이러한 방송 참사에도 TV조선은 침묵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이는 방송의 공적 책임과 역할을 철저히 외면하는 행태”라며 “시청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는 물론이고 프로그램 폐지, 관계자 징계를 비롯한 강력한 재발방지 대책을 즉시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TV조선은 홈페이지에서 해당 방송분량을 삭제했다.

▲ 채널A  “산골마을의 은밀한 성폭행…가해자는 ‘이웃들’” 보도
▲ 채널A “산골마을의 은밀한 성폭행…가해자는 ‘이웃들’” 보도

민언련은 이 사건을 지난 20일 최초로 보도한 채널A 역시 2차 가해 인터뷰를 내보냈다고 지적했다. 채널A는 “산골마을의 은밀한 성폭행…가해자는 ‘이웃들’”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성폭행 피의자를 두둔하는 인터뷰 내용을 전했다. 피의자의 배우자는 채널A에 “자기는 죽어도 임신시킨 짓은 안 했다는 거지. 하도 애가 덤벼드니까 만지는 것은 만져봤다 하더라고”라고 말했다.

다음날인 지난 21일 중앙일보는 “‘하도 애가 덤벼드니까…’ 지적장애 여성 성폭행한 피의자 가족의 말”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해당 사건을 보도했다. 피의자 배우자의 발언을 인용해 제목을 붙였다.

이에 민언련은 “기계적 중립 뒤에 숨어 피해자를 모욕하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보도 행태는 TV조선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며 “이런 보도는 성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고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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