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1심 판결이 무죄로 나온 결과에 대해 현행 법체계의 한계를 지적하는 주장이 있는데,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처벌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른바 ‘비동의 간음죄’(No means no rule)가 없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무죄가 선고됐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이런 주장이 나온 곳은 모순적이게도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였다. 이 토론회에서는 현행법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도 충분히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에 유죄를 선고할 수 있었지만 사법부의 남성 중심적인 법해석에 의해 무죄가 나왔다는 의견이 나왔다. 

다만 안희정 사건 외에 공공장소에서 기습적으로 당한 추행이나, 채용과정 중에서 벌어진 성범죄 등에 처벌을 내리기 위해서는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돼야 한다고 했다. 안희정 사건 때문에 이 법안이 주목을 받기는 했으나 안희정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라기 보다 또 다른 입법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4당 의원들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나경원, 윤종필, 김승희, 송희경, 김정재, 김현아,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 신용현, 김삼화,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 추혜선 정의당 의원, 조배숙 민주평화당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의 진선미 의원 등은 ‘미투에서 여성정치까지: 사회적 주변에서 정치적 주체로’라는 또 다른 토론회를 주최했다.

▲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4당(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의원들이 공동 주최한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4당(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의원들이 공동 주최한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4당이 공동주최한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는 이 법안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 이후 부각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안희정 사건과는 별개라는 것을 강조했다. 김태명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안 지사 사건의 해결을 ‘비동의 간음죄’ 도입으로 하려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이미 현행법에 있는 ‘업무상 위계에 의한 간음’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명 교수는 “일부 언론에서는 마치 법이 미비해서 안 지사를 처벌할 수 없었다고 쓰는데, 충분히 지금 처벌할 수 있다”며 “사법부가 남성 중심적인 성인식 사실 판단에 기초했기 때문에 처벌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교수는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피해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호텔방에 오게 하고, 피해자의 신체를 만지는 등 권력형성범죄의 전형적인 행동을 했고 △안 전 지사가 ‘미안하다, 괜찮니’ 등의 말을 피해자에게 한 것을 인정했으면서도 ‘위력’을 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점은 잘못된 판결이고 △피해자가 고개를 숙인 채 ‘아니다’라고 하거나 ‘모르겠다’고 말했음을 인정했는데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는 것은 맞지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교수는 ‘위력에 의한 간음’ 조항은 한국과 일본밖에 없으며, 오히려 ‘비동의 간음죄’가 있는 외국에서도 입법 공백이 생겨 ‘위력에 의한 간음’ 죄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입법공백의 문제보다 잘못된 판결이라는 의견이다.

김 교수는 ‘위력에 의한 간음’죄에 대해 형량강화가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현재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의 죄는 법정형이 각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김 교수는 “이는 강간죄와 강제추행죄 법정형의 5분의1, 6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며 “위력 관계가 있었다고 해서 강간의 피해가 다른 것도 아닌데 법정형이 이렇게 차이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특히 위계와 위력을 수단으로 재물 또는 재산상 이득을 취득해 성립하는 사기죄의 경우도 법정형이 10년 이하인데, 위력에 의한 간음의 법정형은 재물을 해친 것보다 사람을 해친 경우 법정형이 짧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비동의 간음죄’의 도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공공장소에서의 사람의 성적인 신체부위를 지속적으로 쳐다보는 행위를 한 경우 △아직 위력을 행사할 관계가 아닌 경우, 예를 들어 채용과정 중에 있는 사람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신체의 특정부위만의 접촉을 허용하였으나 다른 신체부위를 접촉한 경우 ‘비동의 간음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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