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경영권 승계 작업’의 존재를 인정한 판결이 1년 만에 다시 나왔다. 파면 대통령 박근혜씨의 2심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이 대통령에 그룹 승계작업 지원을 묵시적으로 청탁했다”며 1심에서 무죄 선고된 뇌물 혐의를 유죄로 선고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김문석 부장판사)는 24일 박씨의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25년에 벌금 200억원을 선고했다. 박씨의 1심 형량보다 징역형은 1년, 벌금형은 20억원이 늘었다.

▲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사진공동취재단

2심 재판부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재판장)가 “일반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승계작업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형사재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선고한 것과 상반된다.

2심 재판부 판단은 이재용 1심 재판부가 지난해 8월25일 선고한 내용과 유사하다. 이재용 부회장 1심 선고 이후 경영권 승계작업 개념은 1여 년 간 사법부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이 부회장 2심 재판부도 경영권 승계작업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재판부는 검찰·특검이 지목한 승계작업을 “이재용이 최소한의 개인자금을 사용하여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해 사실상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재용이 이건희 회장의 그룹 지배권을 승계한다는 사실은 삼성그룹 내·외부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정치·경제적 여건 상 이재용의 지배권 축소가 예상돼 의결권 강화 작업이 필요했고 △미래전략실은 지배권 강화와 관련된 그룹 현안에 적극 관여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최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삼성전자로부터 16억 원 상당 뇌물을 받은 시점에 대통령이 삼성그룹 승계작업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봤다. 당시 청와대가 승계작업을 알아본 정황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업무수첩, 민정수석실 작성 보고서 등에서 확인된다.

재판부는 이에 “승계작업을 인정할 수 있고 뇌물수수자인 대통령이 이를 알고 있었다. 이 부회장의 청탁과 뇌물수수 간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며 16억원에 대해 뇌물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재판부는 삼성그룹의 미르·K스포츠재단 204억 원 지원금 부분에 대해선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삼성그룹은 공익활동의 일환으로 두 재단을 후원했을 가능성이 있고 후원금을 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우려됐다”며 뇌물 무죄를 선고했다.

박씨의 2심 판결은 대법원에 상고된 이재용 부회장 3심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삼성그룹 경영승계를 포괄적 현안이라 주장했던 박영수 특검은 이 부회장 2심 판단에 불복해 상고했다. 특검 측은 2심 판결문을 이 부회장 3심 증거로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징역 24→25년’, 최순실 ‘벌금 20억원 ↑’

박씨는 19개 범죄사건에서 모두 유죄(일부유죄 포함)를 선고받았다. 박씨는 53개 대기업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774억 원 강요한 사건을 포함, 기업 8곳에 의무없는 일에 하게 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강요미수 사건 9건에 유죄(일부유죄 포함)가 선고됐다.

뇌물 수수 및 요구혐의가 적용된 592억 원 중 총 246여억원이 유죄 선고됐다. △롯데그룹 70억 원 지원금 수수 △삼성전자 정유라씨 승마지원금 70여억원 수수 △삼성전자 영재센터 후원금 16여억원 수수 △SK그룹에 각종지원금 89억 원 뇌물 요구 등 4건이 유죄다.

이밖에 최씨에게 직무상 비밀이 담긴 문건 전달한 공무상 비밀누설 사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직권남용 사건 4건에 대해서도 혐의가 모두 인정됐다.

박씨의 총 형량은 징역 33년으로 늘었다. 박씨는 지난 7월20일 ‘국정원 자금 36억 원 뇌물수수’ 사건에서 징역 6년, ‘20대 총선 공천개입’ 사건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사건이 병합되지 않을 경우 형량은 누적된다.

한편 같은 재판부는 24일 최씨에 대해 징역 20년에 벌금 200억원을, 안 전 수석에 대해 징역 5년에 벌금 2천만원을 선고했다. 최씨는 1심에서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원, 안 전 수석은 징역 6년에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최씨 형량은 1심보다 강화됐고 안 전 수석 형량은 감형됐다.

재판부는 “최씨는 자신의 역할을 축소하고 오히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등 엄정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안 전 수석은 일부 혐의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고 그의 진술은 이 사건 진상규명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