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도 2분기 가계동향조사’는 저소득층 소득이 준 데 반해 고소득층 소득은 늘었음을 보여준다. 이 기간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소득1·2분위에선 감소했지만 소득4·5분위의 경우 증가했다. 5분위는 소득 상위 20%, 1분위는 소득 하위 20%를 의미한다. 소득 양극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언론은 양극화 원인을 소득주도성장에서 찾았다. 공세가 매섭다. 24일자 9개 종합일간지 기사 중 ‘소득주도’가 들어간 보도는 모두 42개. 반면 ‘혁신성장’이 들어간 보도는 21개였다. 기사 다수는 양극화 책임을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돌리고 있다.

기승전 ‘소득주도성장 탓’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 ‘고용 쇼크’ 저소득층만 덮쳤다”(세계일보)
“최저임금 과속의 역설… 저소득층 취업자 18%가 직장서 밀려나”(조선일보)
“양극화 10년 만에 최악 소득주도 성장 역주행”(중앙일보)
“고용 이어 분배참사… 부유층 소득만 사상 최대로 늘었다”(중앙일보)
“상위권 소득 10% 늘 때 취약층 8% 줄어… 소득주도성장의 역설”(동아일보)
“‘거꾸로 소득성장’ 10년만에 최악 양극화”(동아일보)
“실업자·폐업자엔 속수무책 소득주도성장… 중산층까지 무너질라”(한국일보)

▲ 2018년 8월24일자 조선일보 31면.
▲ 2018년 8월24일자 조선일보 31면.
조선일보는 독설을 뿜었다. 사설에서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을 “반(反)시장적 오만” “선의로 포장된 반시장 정책”이라고 맹비난했다. “고용 참사에 이은 양극화 쇼크는 수많은 우려를 무시하고 무모한 경제 실험을 벌인 독선과 잘못을 효과적으로 시정해 경제를 올바른 길로 이끌 능력의 부재가 부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진 조선일보 경제부 차장은 24일 칼럼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무혈입성한 문재인 정부는 반도체 등의 수출 급증 덕분에 3% 성장률이란 선물까지 받아들고 출발했다”며 “그런데 모두가 말리는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다 불과 1년여 만에 고용도 실패하고, 소득 불평등까지 악화되는 재앙을 맞았다. 멀쩡한 사람을 임상실험한답시고 환자복 입히더니 중환자실로 집어넣은 꼴”이라고 비판했다.

경제지는 더 노골적이다. 매일경제 1면 제목은 “벼랑 끝 내몰린 ‘소득주도성장’”이었고 3면 제목은 “MB·朴 때보다 서민소득 악화… 빈부격차 키운 소득주도성장”이었다. “‘소득주도’ 실패 인정하고 궤도 수정해야… 기업 氣 살리기가 핵심”이라는 4면 제목은 이 신문이 진짜 하고픈 말로 보인다.

오일만 서울신문 편집국 부국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문제는 최저임금 문제를 소득주도성장 무용론으로 확산시키려는 정치권 일각의 움직임이다. 한 가지 쟁점을 다른 영역으로 확대하는 이른바 ‘전략적 주도’ 전략이다. 과거 보수 세력들이 노무현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사용한 수법이었다. 최근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을 중심으로 경제위기·망국론 프레임이 확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역대 정권을 괴롭혔던 가계부채나 소득분배, 부동산 문제 등에 속 시원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현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정부 실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득주도성장 무용론과 망국론 프레임은 과하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분배 지표 악화에 “2분기 분배지표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결과다. 고용난 속에서 일자리를 잃은 저소득 가구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썼다. 이어 “지난해 10월께부터 부진한 흐름을 타기 시작해 올해 들어 더 나빠진 자동차와 조선 같은 주력 제조업 영역에서 임시·일용직을 중심으로 취업자 수가 많이 줄었다”며 “이는 파견업체를 포함한 ‘사업시설 관리·사업지원 및 임대서비스업’ 영역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완충 역할을 해줄 자영업에서도 고용난이 심해져 2분기 소득격차에 반영돼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 매일경제 2018년 8월24일자 3면.
▲ 매일경제 2018년 8월24일자 3면.
정부, 일자리 예산 최대 확대

위기감을 느낀 정부와 여당은 23일 일자리 창출, 사회안전망 확충, 지역경제 활성화에 방점을 둔 확장 재정 운용에 합의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일자리 예산을 역대 최고치로 확대해 민간·공공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장애인·여성·노인 등 고용 취약층 일자리 기회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바로 비난이 이어졌다. 중앙일보는 ‘정책 실패를 재정 확대로 가릴 수 없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정부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을 앞세운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을 메우기 위해 나랏돈을 왕창 푸는 미봉책을 동원하고 있다”며 “한마디로 재정 중독이요, 재정 낭비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멀쩡한 재정마저 망가뜨리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주장은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어 투자와 생산이 늘고 소득이 올라가도록 정책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 氣 살리기가 핵심”이라는 매경 기사 제목처럼 ‘규제 완화’로 요약될 수 있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정부정책을 보면 눈앞의 목표에만 매몰된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에 들인 노력만큼 혁신성장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고용·소득 감소가 지금과 같은 참사 수준에 이르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글 말미에 “임기응변식 일자리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업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일자리는 다르다. 소득주도성장 못지않게 혁신성장에도 주력해야 하는 이유”라고 경고했다. 

한국일보도 사설에서 “당정은 내년도 일자리 예산을 역대 최대로 편성하겠다고 했다”며 “최악의 고용 상황 타개를 위해 재정을 확대 투입하는 것은 시급하고 불가피한 일이나 근본 대책은 아니다. 언제까지 세금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부작용을 메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 한국일보 2018년 8월24일자 28면. 전성인 홍익대 교수 인터뷰.
▲ 한국일보 2018년 8월24일자 28면. 전성인 홍익대 교수 인터뷰.
의문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과연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제대로 실험하긴 했었나. 소득주도성장이란 무엇인가. 총수요 부족에서 기인하는 경제 위기를 극복할 방안은 왜 규제 완화뿐인가. 여러 물음에 대한 답은 ‘소득주도성장 때리기’에 골몰하는 언론에선 찾기 어렵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득주도성장이든 뭐든, 지지층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해야 한다. 트럼프를 봐라. 백인 근로자 등 지지층을 위한 정책을 일관되게 밀어붙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최저임금 올려놓고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대기업 유보금이 중소 하청업체나 소상공인에게 흘러갈 수 있는 다양한 경제민주화 정책을 취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말하던 언론들은 어느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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