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좀 해, 이 년들아.” 회고 영상 속 김승하 KTX열차승무지부장의 과거 인터뷰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영상이 끝나고 불이 켜질 즈음엔 훌쩍이는 소리가 남았다. “기뻐도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 빈자리를 보는 그리움, 지나간 시간 그리고 다가올 시간에 대한 여러 마음이 섞여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회를 보던 최광기씨가 말했다.

지난달 21일, 정리해고 12년 만에 KTX 승무원들의 복직이 결정됐다.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22일 저녁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마당, 다시 빛날 우리’를 열었다. 승무지부 조합원 120여명과 대책위, 이들의 복직을 도운 50여명이 모여 지난 12년을 되돌아봤다. 12년 동안 복직의 끈을 놓지 않았던 조합원 33명과 정리해고와 파업을 함께 겪은 동료 90여명도 참석했다.

▲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마당’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마당’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파인텍, 세종호텔 등에서 장기 복직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과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참석해 축하 인사를 나눴다. KTX 승무원 복직 투쟁에 함께해온 대책위 인사들도 자리를 지켰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송경용 신부, 조계종 노동위원회의 혜문스님, 영등포산업선교회 진방주 목사,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등이 참석했다. 공공운수노조와 철도노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도 자리했다.

어울림마당은 축하와 기쁨만 아니라 지난 12년의 무게를 떠올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김승하 KTX지부장과 박미정 부지부장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했다. 박미경 부지부장은 “투쟁하면서도 힘든 점이 많이 있었고,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도 힘든 점이 많았다”며 “행사를 무사히 열 수 있을까 어젯밤엔 잠이 안 왔다”고 했다. 이날 자리엔 박장대소뿐 아니라 눈물, 침묵의 순간이 찾아왔다.

▲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마당’을 열었다. 이 자리엔 장기 복직투쟁 중인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마당’을 열었다. 이 자리엔 장기 복직투쟁 중인 노동자들도 함께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혜문 스님(조계종 사회노동위원)이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마당’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혜문 스님(조계종 사회노동위원)이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마당’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무대에선 참석자들의 축하와 소감이 줄을 이었다. 박준, 지민주, 류금신 등 노동가수들이 축하공연을 했다.

이정미 의원은 “12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승무원분들이 복직됐다는 그 하나만으로 기뻐하기에는 참 긴 시간이었다”며 운을 뗐다. 이정미 의원은 “그래도 오늘만큼은 승무원들이 마음껏 기뻐하고 축하를 나눴으면 한다. 이 자리에 함께한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김갑수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제 철도노조는 두 가지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안전업무인 승무직을 코레일이 직고용해 동지들이 다시 열차에 오르는 일, 또 하나는 철도 내 비정규노동을 정규직화하는 일”이다. 현재 승무직은 코레일(철도공사) 자회사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이다. 해고 승무원들은 원직이 아닌 사무영업직으로 복귀가 결정됐다. 해고 승무원들은 “승무업무의 코레일 직접고용을 위해 계속 투쟁하겠다”고 밝혀왔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철도노조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과 연대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마당’에 참석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마당’에 참석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노동가수 박준씨가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마당’에 참석해 공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노동가수 박준씨가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마당’에 참석해 공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해고 승무원과 대책위 활동가들은 토크콘서트에서 복직 투쟁하던 지난 12년을 회고했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김승하 지부장이 처음 대책위를 제안한 순간을 떠올렸다. 2015년 2월 대법원(주심 고영한 대법관)은 KTX 해고 승무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이들이 “철도공사 소속 정규직이 아니”라며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원고 승소 결정한 원심을 뒤집었다. 그해 3월 승무원 박아무개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혜진 활동가는 “대법 판결이 나던 날 김승하 동지가 ‘대책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머리 위에 별이 왔다갔다하는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은 싸움을 더 해야하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싸움, 용기를 다시 내야 할 싸움이었으니 다른 분들 도움을 얻어 어렵게 대책위를 만들었다”고 했다. KTX대책위는 그로부터 2년 뒤인 2017년 5월 발족했다. 

▲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당’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당’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당’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당’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승하 지부장은 “기자들은 한결같이 제일 힘들었던 게 뭐냐고 묻는다”며 운을 뗐다. 김 지부장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대법 판결이 나고 한 친구를 잃었을 때다. 그 전에는 국회 농성에 들어갔을 때를 꼽았다. 난 밖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데, 들어간 친구가 완전히 통제받으며 밥도 못 먹고 그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2006년 4월 KTX 승무원 84명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한명숙 국무총리 면담과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였다. 경찰은 이들을 강제연행했다.

김혜진 활동가는 KTX 승무원들의 12년 긴 투쟁이 의미를 짚었다. 김 활동가는 “승무원들은 단순히 ‘노동조건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승객안전 지켜야 하니까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하는 사람이 생명과 안전에 권리를 가져야 사회가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확신으로 싸웠기에 많은 이들의 생각을 바꿔냈다”고 했다. 

▲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당’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당’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마당’에 참석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22일 저녁 ‘KTX 해고승무원 직접고용 어울림마당’에 참석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박미정 부지부장은 “우리 승무원들이 한 자리에 모인 건 2004년 첫 입사 때 이후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박 부지부장은 “처음 300명이 다 같이 시작했던 싸움인데, 현재는 33명이 남았다. 복직투쟁을 하면서 내 인생에서 겪을 모든 희노애락을 다 느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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