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지수가 OECD 최하위인 한국에서 경영계 내 유리천장은 한층 더 강고하다. 국제여성기업이사협회(CWDI)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이사회 여성임원 비율이 2.4%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20개국 가운데 가장 낮다. 여성가족부 자료를 봐도 매출액 기준 국내 500대 기업 전체임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100명 중 2.7명 꼴이다. 10.5명 꼴인 공공부문 여성 관리직 비율과 비교해도 열악한 숫자다(2017년 여성가족부, ‘공공부문 여성대표성 제고계획’).

견고한 기업 내 유리천장을 없애려면 높이려면 여성임원할당제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세계여성이사협회(Women Corporate Directors·WCD) 한국지부는 2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여성임원할당제, 세계적 추세와 우리의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여성임원할당제는 상장기업(또는 일정 규모 이상의 비상장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전체 임원 중 일정 비율 이상의 여성이 포함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노르웨이가 처음 시행해 현재는 독일·프랑스·말레이시아·인도 등에서 실시한다.

▲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는 22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여성임원할당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는 22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여성임원할당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유리천장에 대해 가장 늦게 문제 제기가 나온 영역이 민간부문인 기업계”이라며 “민간기업들이 영리활동에서 기업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여성임원할당제 도입에 반감을 표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은형 한국여성경제학회장(국민대 경영학 교수)도 “포춘이 정한 500대 기업에서 한국 여성CEO는 1명뿐이며, 그 외엔 기업 오너 가족인 경우뿐이라 (현실은) 수치보다 열악하다”고 진단했다.

한국 특유의 ‘후진적 기업문화’도 유리천장에 일조했다. 김광기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은 불투명한 의사결정과 접대문화를 짚었다. 김 소장은 “지금까지 기업 임원들은 공식 의사결정으로 성과를 높이기보다 일단 양적으로 회사를 키우기 위해 로비활동에 집중해왔다”고 했다. 대관·대언론 등 활동할 때 접대 대상인 주요 결정권자가 남성이므로 여성임원이 배제됐다는 지적이다. 김 소장은 “특히 학연과 지연을 이용해 로비할 때, 로비 주체도 대상에도 여성은 아예 없었다”며 “이는 지금도 엄연히 잔존한다”고 밝혔다.

▲ 이은형 한국여성경제학회장이 22일 ‘여성임원할당제, 세계적 추세와 우리의 과제’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이은형 한국여성경제학회장이 22일 ‘여성임원할당제, 세계적 추세와 우리의 과제’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토론자들은 남성 지배적 이사회 구조가 오히려 기업이 커가는 데 발목을 잡는다고 경고했다. 대표 사례는 2008년 미국 금융위기다. 조명현 기업지배구조원장은 “당시 문제점으로 ‘집단사고’가 대두됐다. 비슷한 배경을 가진 이들, 특히 50~60대 백인 남성만이 구성한 이사회는 비판적 사고를 피하고 의견일치를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은혜 학회장은 할당제를 성장정책으로 도입한 사례로 일본을 소개했다. 일본은 기업의 여성임원 할당 목표를 10%로 정하고 제도를 시행한다. 여성임원이 없는 상장기업은 그 이유를 주주들에게 설명하라고 기업지배구조 지침에 명시했다. 이 학회장은 “아베 정부는 여성친화 기업에 10조원 투자 정책을 펴고 있다. 아베가 페미니스트여서가 아니라 여성이 국가 경쟁력에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여성임원 의무 할당하지 않으면 현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고 내다봤다. 81년부터 공공부문 여성임원 비율이 40%였던 노르웨이도 기업 여성의무할당제를 권고에서 쿼터제로 바꾸기까지 20년 동안 임원비율이 7%에 그쳤다. 하나금융지주 부사장 등을 지낸 김유니스 이화여대 법학대 교수는 “공공부문에서 여성비율이 높아졌다고 (그 영향이) 민간영역으로 저절로 오지 않는다”며 “기업들은 법적 의무가 없으면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대표도 “현재 여성임원 숫자가 높은 서유럽도 할당제 이전에 (퍼센티지가) 한 자릿수였다”고 말했다.

▲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이 22일 ‘여성임원할당제, 세계적 추세와 우리의 과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이 22일 ‘여성임원할당제, 세계적 추세와 우리의 과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토론회를 연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늘 논의한 내용을 여성임원할당제 도입 과정에 반영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공동주최한 금태섭 민주당 의원도 “사회의 편견 때문에 법적 강제력을 써 여성의 임원진 진출과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며 “관련 법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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