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주 PD는 전남CBS(본부장 김의양)에서 이번 달에만 두 차례 업무복귀 명령을 받았다. 그는 지난 2016년 5월 전남CBS에 입사해 회사 간부에게 성희롱 등 피해를 당하고 두 차례 해고됐다가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강 PD는 CBS 본사(사장 한용길)와 전남CBS에 “일방적인 복귀 통보는 잠재적 해고 위협”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강 PD는 왜 당장 복귀할 수 없는 걸까.

강 PD는 성희롱 피해자가 눈치를 보거나 회사를 떠나는 관행을 막기 위해 CBS가 다음과 같은 조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관리 책임이 있는 한용길 CBS 사장과 성희롱 가해자인 윤승훈 전 전남CBS 보도국장의 진정성 있는 사과, 회사의 윤 전 국장 중징계, 윤 전 국장과 윤 전 국장을 옹호한 전남CBS 간부와 피해자 분리조치 등이다.

당사자에겐 가지 않은 사장의 입장문

한용길 사장은 지난 6월22일 CBS 전 직원에게 문자로 “그동안 성희롱 사건과 부당해고로 강PD가 고통을 받아왔고 CBS의 명예가 실추된 것에 대하여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아울러 강 PD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밝혔다.

▲ CBS 로고
▲ CBS 로고

CBS는 지난 2월7일 입장문에서 성희롱 문제제기 이후에 벌어진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고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정상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주일 뒤 광주지방노동청 여수지청에서 강PD가 계약직이 아닌 정규직 신분이라고 확인해줬다. 한 사장은 문자에서 이 사실을 언급하며 CBS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나 정작 강 PD는 해당 메시지를 직접 받지 못했다. 강PD 입장에서 해당 문자를 진정성 있다고 느끼기 어려운 이유다.

한 사장이 문자를 보낸 시점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강PD는 윤 전 국장, 당시 전남CBS 본부장과 이사, CBS법인 등을 부당노동행위로 노동부에 신고했다. 노동부가 이들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자 며칠 뒤 한 사장이 입장문을 냈다. 검찰수사를 의식해 문자를 직원에게 보냈을 것이라는 게 강 PD 생각이다.

CBS 측은 21일 미디어오늘에 “대표이사 명의로 전 직원에게 강PD 사건과 관련한 ‘유감’의 입장도 직접 발표했다”며 “재발방지 약속과 직원 교육 강화 방안에 대해서도 밝혔는데 이는 강PD의 의사를 모두 반영하고 업무환경을 개선시키겠다는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성희롱 가해자 징계 수위

과거 전남CBS는 지역 자치본부여서 징계 등 인사권이 전남CBS 이사회에 있었다. 이는 본사가 지역본부를 관리하기 어려운 고질적 문제였다. 강PD의 문제제기 등을 계기로 한 사장이 최근 본사 직할본부로 전환했다. 이제 CBS 본사에 윤 전 국장의 징계권이 있다.

그렇지만 CBS는 이미 자치본부 시절 전남CBS 이사회가 윤 전 국장을 성희롱 혐의로 감봉 3개월 징계처분했기 때문에 일사부재리(동일한 범죄를 두 번 처벌하지 않는다) 원칙에 따라 성희롱 혐의로 징계가 어렵다고 봤다.

이에 강PD는 “본사에서 성희롱 인정한 게 두 건 정도인데 내가 노동부와 인권위에 신고한 건 여러 건”이라며 “윤 전 국장이 징계 받지 않은 성희롱 사건이 더 있다”고 말했다. 회사가 일사부재리를 주장하는 건 핑계라는 주장이다.

윤 전 국장은 강PD에게 술 등 특정 음식을 강요했고 강PD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반성문을 요구했다는 게 강PD 주장이다. 또한 그는 윤 전 국장이 자신을 해고하기 위해 해당 지역 노동청 공무원을 만났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강PD는 본사에 윤 전 국장의 이런 2차가해와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해달라는 입장이다.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윤 전 국장은 결국 피해자에게 진정성 있게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윤 전 국장은 지난해 초 강PD와 강PD의 소식을 전한 미디어오늘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수사당국은 무혐의로 결론 냈다. 지난해 10월경 노조가 윤 전 국장에게 사과문 작성을 요구했지만 끝내 강PD 표현으로 “에세이 수준”에 그쳐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CBS는 지난달 26일 윤 전 국장을 인사규정 위반 혐의로 정직 2개월 징계했다. 윤 전 국장이 강PD를 계약해지라며 해고할 때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강PD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성희롱 사건을 제소했는데 7월27일 인권위 1차 소위가 열리기 전날 졸속으로 징계가 이뤄졌다”며 인권위를 의식한 면피용 징계라고 비판했다.

CBS 노조도 이번 징계를 비판했다. 이진성 전국언론노동조합 CBS지부장은 “윤 전 국장을 대기발령내리고 진정성 있게 사과해 피해자에게 용서를 얻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사과와 징계, 재발방지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CBS는 엄정하게 원칙대로 처리했다는 입장이다. CBS 측은 21일 “사규에 따라 두 차례 강력한 징계처분을 했다”며 “두 번째 징계 역시 강PD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징계 처분을 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강PD가 인권위원회나 노동위원회 등에 접수한 문서에는 일부 과장·왜곡된 내용들이 포함돼 있어 이와 관련해 CBS는 최근 인권위 절차를 통해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강PD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성희롱 가해자 분리조치

윤 전 국장의 정직이 끝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 근무하게 된다. 강PD는 “한 때 윤 전 국장을 외근시킨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그렇다고 사무실에 안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좁은 지역사회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며 “상급자 없는 외근은 오히려 특혜”라고 말했다.

이 지부장에 따르면 회사는 전남CBS에 외부 사무소를 두고 강PD를 거기서 일하게 한다는 안을 검토했고 이에 노조는 직할국이 여러 군데 있으니 윤 전 국장이든 강PD든 옮겨 분리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전남 순천에 위치한 전남CBS 사옥. 사진=전남CBS뉴스페이스북.
▲ 전남 순천에 위치한 전남CBS 사옥. 사진=전남CBS뉴스페이스북.

강PD는 회사와 노조가 자신의 복귀문제를 두고 어떤 얘기를 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지난 4월 전남CBS가 “(강PD의) 복귀 시점은 강PD의 제반 상황을 고려해 단협 등 관련 규정 범위에서 협의해 결정할 수 있다”고 한 취지와 정반대라는 게 강PD 주장이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14조를 보면 회사는 가해자 징계 전 성희롱 피해자의 의견을 듣고 가해자에 대해 징계·근무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한다.

피해자 대화 요청에 회사는 업무복귀 명령

이런 가운데 전남CBS는 이달 들어 두 차례 업무복귀 명령을 내렸다. 강PD는 사측이 자신을 어떻게든 빨리 전남CBS로 복직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양측이 주고받은 공문을 보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전남CBS는 지난 1일 강PD에게 “한 사장 명의의 문자메시지가 발송됐으며 윤 전 국장을 상대로 정직 2개월의 중징계가 결정되는 등 일련의 조치가 마무리됐다”며 8월13일자 업무복귀를 통보했다.

이에 강PD는 지난 3일 CBS 기획조정실과 전남CBS에 “7월27일 인권위 소위 이후 △최종 인사권이 있는 본사에 직접 대화 요청 △윤 전 국장 정직 이후 사측의 구체적인 후속처리 방안 등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일방적인 복귀 통보를 잠재적 해고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유감을 표한다”고 보냈다. 강PD는 지난 7일에도 재차 대화를 요청했다.

전남CBS는 지난 13일 “강PD가 올해 말까지 회사 서식에 없는 ‘연가원’(휴직신청)을 보내온 데 심히 유감을 표명한다”며 “16일까지 업무에 복귀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강PD는 “연가원은 CBS노조에서 받은 서식”이라며 “정신과 치료를 받는 내게 휴직과 치료를 권하기는커녕 ‘연가원’을 보낸 것에 유감이라고 표명하고 업무복귀를 강행한다”고 비판했다.

강PD는 “사측은 지난달 인권위 소위 이후 어떤 노력도 않고 ‘일단 믿어달라’는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며 “사측이 인권위 권고를 받기 전에 복귀를 강행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미 성희롱과 부당해고 등이 밝혀졌고, 부당노동행위로 사측 인사 여럿이 수사를 받고 있으니 인권위가 강경한 조치를 권고할 가능성이 있다. 인권위 2차소위는 오는 21일에서 31일로 연기됐다.

이에 CBS 측은 “강PD가 업무에 복귀할 경우 윤 전 국장과 분리조치하고 강PD를 보호할 뜻이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며 CBS가 강PD 사건을 계기로 자치본부(전남·제주·영동) 소속 직원을 고용승계해 직접 고용한 것을 언급하며 “만약 ‘눈치보기’를 하려 했다면, CBS가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자치본부의 직원을 직접 고용하는 결정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CBS 측은 “강PD 사건을 계기로 전 직원을 상대로 하여 다시 한 번 잘못된 관행이나 문화를 바로잡고,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예방하며, 강PD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여 가장 적극적인 조치로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직원 직접 고용과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며 “관계 법령과 회사 내규에 따라 강PD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여 강PD가 정상적으로 업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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