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JTBC PLUS 사옥에 지난 16일 “질문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JTBC PLUS 소속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대자보 작성자는 회사가 발행하는 잡지 8개(여성중앙, 쎄씨, 인스타일, 헤렌, 코스모폴리탄, 엘르, 에스콰이어, 바자) 가운데 4개(여성중앙, 인스타일, 쎄씨, 헤렌)이 순차적으로 폐간됐다며 경영진을 비판했다.  

대자보 수명은 짧았다. 사옥 1~10층에 각각 몇 장씩 붙어있던 대자보는 반나절도 되지 않아 수거됐다. 마지막까지 붙어 있던 지하 카페 앞 대자보도 회사에서 뜯어 갔다. 사옥 경비와 회사는 속전속결이었다.

대자보는 왜 붙었던 걸까. JTBC PLUS 직원은 150여 명으로 이 가운데 70~80명이 기자로 알려졌다. 그런데 지난 1월호를 끝으로 여성잡지 대표주자 ‘여성중앙’이 기약 없는 휴간에 들어갔다. 1970년 1월 창간한 이 잡지 휴간 소식을 두고 업계는 폐간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여성중앙 측은 언론에 “1994년에도 휴간 후 1998년에 복간한 사례가 있다”며 “이번 결정도 적자가 아닌 디지털 시대에 독자와 더 나은 소통을 위해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회사 내부에선 반발이 적지 않았다. 내부 기자들에 따르면, 여성중앙 2018년 1월호 마감은 작년 12월20일. 기자들은 마감 하루 전날에야 이번 달이 마지막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전까지는 잡지 중단 소식에 일언반구 없었다고 한다. 매체 편집장은 회사를 떠났다. 나머지 기자들은 디지털 부문이나 다른 잡지로 재배치됐다. 이 시기 회사는 JTBC PLUS 직원들로부터 희망퇴직을 신청 받았다.

1994년 창간한 패션 월간지 ‘인스타일’도 지난 3월호가 끝이었다. ‘쎄씨’와 ‘헤렌’ 역시 8월호를 마지막으로 독자들과 작별했다. 기자들은 “쎄씨와 헤렌 폐간 통보를 지난달 6일 받았다”고 한다. 휘닉스 파크에 열린 워크숍에서 회사가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하자’고 한 지 일주일여 만이었다. 쎄씨에서 일하던 여성중앙 출신 기자는 같은 고통을 두 번이나 겪게 됐다고 했다.

쎄씨 편집장과 기자 등 10여명은 지난달 말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요구받았다. 코스모폴리탄 편집장도 출산 휴가 중 자리가 교체됐다. 현재 사내가 뒤숭숭한 이유다. ‘내 매체는 살아서 다행이지만 그래도 걱정’이라는 반응과 함께 ‘나머지 잡지도 사라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잡지 기자들은 홍정도 중앙그룹 사장을 만나기도 했다. 그의 입에서 폐간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중앙그룹 차원에서 종이 매거진을 하나씩 정리하는 분위기는 지울 수 없다. 

▲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JTBC PLUS 사옥에 지난 16일 “질문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JTBC PLUS 소속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대자보 작성자는 회사가 발행하는 잡지 8개 가운데 4개가 순차적으로 폐간됐다며 회사 결정을 비판했다.
▲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JTBC PLUS 사옥에 지난 16일 “질문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JTBC PLUS 소속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대자보 작성자는 회사가 발행하는 잡지 8개 가운데 4개가 순차로 폐간됐다며 회사 결정을 비판했다.
JTBC PLUS 최대주주는 중앙그룹 지주회사 중앙홀딩스(32.91%)다. 중앙일보와 JTBC도 JTBC PLUS 지분을 각각 15.32%, 19.85% 소유하고 있다. 중앙홀딩스 회장은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JTBC 트렌드 라이프스타일 채널 ‘JTBC4’가 개국했다. JTBC4는 JTBC PLUS가 보유한 패션잡지 ‘엘르’ ‘코스모폴리탄’ 소속 트렌드 전문 인력을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잡지 기자 인력이 JTBC4에서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JTBC PLUS 소속 한 기자는 “JTBC4에서 우리 인력은 불필요하다고 한 걸로 안다”며 “2020년까지 잡지를 모두 정리할 거라는 전망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잡지 인력 중 소수만 JTBC4로 넘어가 활동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JTBC4가 잡지 인력을 활용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대자보는 “지금까지 모든 휴간의 탈을 쓴 폐간은 회사의 일방적 결정이었다. 각 매체는 회사 입장에서는 부서 하나일지 모르겠으나 소속 기자들에게는 그 자체로 일자리이자 터전”이라고 밝혔다. 직원들을 대하는 회사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 “폐간에 이어 회사는 또다시 일방적인 권고사직, 부서 이동과 출산 휴가 중 자리 교체를 단행했다”며 “‘콘텐츠 하우스’라는 이곳에서 우리는 콘텐츠에 대한 일말의 존중도 찾아보기 힘들다. JTBC PLUS는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매체를 완전히 반토막 내고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하거나 일방적으로 발령을 냈다. 이런 회사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대자보에는 △폐간 이전에 회사는 위기 극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경영 악화를 이유로 제시하는데 경영 악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권고사직 대상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결정됐나 △경영 악화에 따른 책임을 온전히 개인이 져야 하는가 △폐간 이후 남은 매체와 직원들에게 제안할 수 있는 비전은 무엇인가 △회사가 생각하는 직원은 어떤 존재인가 등 10개 질문이 쓰여 있다. 이 질문에 회사가 대답을 해달라는 것이 대자보의 요지다. 

JTBC PLUS 관계자는 17일 통화에서 “폐간이 아니라 휴간”이라며 “잡지 시장 경기가 좋아지고 경영 상황이 바뀌면 다시 복간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수십 억 적자로 휴간 결정을 낸 것이다. 휴간 논의는 부서장급들과 여러 차례 있었다”며 “휴간 미디어 관련 인력은 1차적으로 사내 다른 부서로 전환 배치했다. 부득이한 경우 본인과 논의해 권고사직을 진행했다. 일방적 인사라 부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직원들은 조직에 불안감이 있을 수 있다. 회사는 지속 경영이 가능하게끔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종이 미디어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생존을 넘어 성장하는 매거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직원들 불안을 덜기 위해 현재 많은 애정을 쏟고 최대한 구성원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고 해명했다.

그는 대자보에 대해 “누군지도 모르는 이가 붙인 게시물”이라며 “불법 부착물이라서 떼어냈다”고 말했다. 이어 “남아있는 미디어를 성장시킬 건 사람뿐”이라며 “다양한 방법으로 구성원들과 소통할 것이다. 비전을 만들고 이를 공유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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