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에 삼성 맡기기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었습니다.”

지난 4월 삼성전자의 ‘노조와해 문건’이 드러난 이후 검찰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파괴행위(부당노동행위)를 수사 중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그룹 내 계열사 노조들이 직접 겪은 회사의 노조파괴 행위를 증언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국가기관과 기존 법제도가 부당노동행위를 방조한다고 지적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과 금속노조가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삼성 노조파괴 현장증언대회 및 부당노동행위 제도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발언에 나선 삼성그룹 내 4개 계열사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겪은 삼성 측의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부당노동행위를 증언했다.

▲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과 전국금속노동조합은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삼성 노조파괴 현장증언대회 및 부당노동행위 제도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과 전국금속노동조합은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삼성 노조파괴 현장증언대회 및 부당노동행위 제도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설립 직전까지 회유, 직후부턴 ‘주동자’라며 부당해고·징계

이날 증언한 노조간부들은 노조 설립 기자회견 직전까지 회사가 끈질기게 회유했다고 증언했다. “‘원하는 부서에 원하는 급여 모두 주겠다’,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사업 하면 최고로 대우해 명예퇴직시켜 주겠다’며 회유했습니다.” 삼성 웰스토리지회 임원위 지회장은 “‘일주일만 잠수 타면 뒷일은 내가(사측) 해결하겠다’는 둥 회유는 당일에도 계속됐다”며 “노조 회계감사는 결국 명퇴를 선택해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삼성지회 조장희 부지회장도 “2011년 6월 노조 설립 순간까지 끊임없이 조건을 달리하며 회유했다”고 말했다.

삼성테크윈지회 권오택 사무장은 검찰이 노조설립 방해행위를 묵인한 사례를 증언했다. 권오택 사무장은 “막상 금속노조 현장 가입서가 돌자마자 회사는 바로 사내 전체게시판에서 가입하면 안 된다는 공지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 17일 열린 ‘삼성 노조파괴 현장증언대회 및 부당노동행위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금속노조 삼성지회 조장희 부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17일 열린 ‘삼성 노조파괴 현장증언대회 및 부당노동행위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금속노조 삼성지회 조장희 부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발언자들은 노조 설립 이후엔 본격 탄압이 시작됐다고 입을 모았다. 임원위 지회장은 “삼성은 성과연봉제를 이용해 입바른 이들에게 최하위 고과를 줬다”고 했다. “조합장에게 최하위 고과를 부여하고, 조합원들의 승진을 누락시킨 후 노조 간부와 친분을 사유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조장희 부지회장은 “첫째로는 어용노조를 설립해 노조를 무력화한 뒤, 최근 밝혀진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따라 ‘주동자’인 내가 해고됐다”고 말했다. 조장희 부지회장은 “(삼성이 노조원들) 집과 출퇴근 동선을 감시하고, 이후 사실과 무관한 형사고소 폭탄이 내렸다”며 “9번의 소송에서 노조는 모두 승리했다”고 밝혔다. 권오택 사무장도 “삼성이 노조 안팎에 공포심을 유발하기 위해 징계와 해고를 남발한 후, 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로 판정해도 복직시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조장희 부지회장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일지 몰라도, 노조파괴 담당 조직원과 부서를 그대로 유지하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 17일 열린 ‘삼성 노조파괴 현장증언대회 및 부당노동행위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 권오택 사무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17일 열린 ‘삼성 노조파괴 현장증언대회 및 부당노동행위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 권오택 사무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삼성 ‘마스터플랜’, “회사는 벌금을 징벌 아닌 비용으로 인식”

문제는 노조를 부당노동행위로부터 보호해야 할 정부와 수사기관 태도가 미온적이라는 점이다. 삼성테크윈지회는 삼성이 올린 노조가입 저지 게시글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했고, 노동부는 기소의견으로 검찰 송치했다. 권오택 사무장은 “막상 검찰은 이를 무혐의 판정했다”며 “불기소 이유는 ‘현장에 컴퓨터가 없어서 (해당 게시글을) 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권 사무장은 “(삼성이) 중앙노동위의 복직 판정도 이행하지 않고 벌금을 내며 버텼다”며 “3조 매출을 내는 회사에 최고 2000만원 벌금을 때려봐야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구속수사와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삼성으로부터 노조 인정을 얻어낸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조병훈 대표사무장은 “삼성은 돈을 주고 부당노동행위를 구매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금고나 징역형이 집행되지 않다 보니 ‘벌금 내면 된다’는 인식이 만연하다”는 설명이다.

▲ 17일 열린 ‘삼성 노조파괴 현장증언대회 및 부당노동행위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민변 류하경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17일 열린 ‘삼성 노조파괴 현장증언대회 및 부당노동행위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민변 류하경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그렇다면 부당노동행위와 같은 노조법 위반 행위가 뿌리뽑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류하경 변호사는 “수사기관과 정부의 책임이 삼성에 버금간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와 검찰, 노동위원회, 법원 등 국가기관이 다른 일반 사건에 비해 부당노동행위 사용자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것이다. 류 변호사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노조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은 사례는 0.4%, 단 1명”이라고 지적했다. 

토론회 자료를 보면, 노조법 위반 혐의 기소율(16.4%)은 전체 평균 기소율(41.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인정율도 3년 간 5%대에 불과했다. 류 변호사는 최근 드러난 삼성의 노조와해 문건 ‘마스터플랜’에 나타난 ‘대관작업’을 들며 “노동부와 노동위가 사용자의 눈치를 보는 관례가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 17일 열린 ‘삼성 노조파괴 현장증언대회 및 부당노동행위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금속노조법률원 박다혜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17일 열린 ‘삼성 노조파괴 현장증언대회 및 부당노동행위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금속노조법률원 박다혜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제도적 문제도 있다. 먼저 부당노동행위 관련 형량이 다른 법정형에 비해 가볍다는 점이다. 금속노조법률원 박다혜 변호사는 “노조가 쟁의행위를 해 손해를 입히면 5년 또는 3년 이하 징역을 받는 반면, 사측이 쟁의행위 방해 행위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 가운데 선택형이다”라며 “그 가운데 징역형은 2013년에 최초 사례가 나왔을 정도로 드물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부당노동행위를 징역형으로 단일화해 벌금형이 불가능한 중대범죄라고 입법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당노동행위 입증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제도적 허점도 지적을 받았다. 박 변호사는 “부당해고 여부는 확인이 잘 되는데, 입증책임을 사측이 지기 때문이다. 반면 부당노동행위는 확인이 지지부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률상 입증책임을 사측이 지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고용노동부 조충현 노사관계법제과장은 “사건 초기 증거수집과 참고인 수사 등 초동수사를 강화하겠다”면서도 “입증책임은 수사기관인 검찰이 가지며, 의혹 정도로 곧바로 압수수색하긴 쉽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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