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언론이 정부정책을 왜곡한다며 일침을 날렸다.

이 총리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면서 “토의 안건과는 별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면서 “제가 여름휴가를 보낸 며칠 사이에도 일부 언론의 부정확한 보도들로 국민께 오해와 혼란을 드린 일 있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언론은 오해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정확히 보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그러나 우리 현실이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총리는 “요즘 들어 언론 내부에서 팩트체크 운동이 확산되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미 보도되고 난 뒤 체크하는 것은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 총리는 “오해는 실수로 하는 것이고 왜곡은 일부러 하는 것”이라며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동아일보 출신인 이 총리는 언론 보도의 생리를 잘 알고 있어 기자들 사이에서도 ‘까칠한 선배’로 통한다. 이 총리가 회의 내용하고는 상관없이 이례적으로 언론을 질타하고 나선 것도 언론인 출신의 눈으로 본 언론 보도의 왜곡 정도가 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총리는 이날 특정 언론을 지목하지 않았지만 왜곡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 몇 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총리가 여름휴가 중 보고를 받은 언론보도 중 팩트를 왜곡한 내용을 보고 받았고 이에 이 총리가 관련 보도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13일자 문화일보의 <文정부 규제개혁, 前정부 절반도 안돼>라는 보도가 꼽힌다. 문화일보는 관련 기사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년간 시행한 규제개혁 건수가 박근혜 정부의 연평균 규제개혁 건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국무조정실이 운영하는 규제포털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문화일보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동안 규제개혁이 총 311건 시행됐는데 이 같은 건수가 박근혜 정부의 연평균 규제개혁 건수(785건)의 39.6%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규제개혁 건수를 ‘팩트’라며 근거로 삼았지만 박근혜 정부 연평균 규제개혁 건수도 잘못됐을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1년 규제개혁 건수와 비교하는 건 왜곡에 해당된다는 것이 국무총리실의 입장이다.

국무총리실 규제조정실은 해명자료를 통해 “‘규제정보포털’ 기준으로 前정부의 규제혁신 실적은 1,450건으로서 前정부 기간(2013.2.25-2017.5.9)으로 나누면, (785건이 아닌)연평균 345건”이라고 바로 잡았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 1년간(2017.5.10~2018.5.9) 규제혁신 완료건수는 242건이고, 前정부 1년간(2013.2.25~2014.2.24) 규제혁신 완료건수는 197건으로,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많은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이밖에 이 총리가 부정확한 보도로 염두에 둔 언론 보도는 국민연금과 관련한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14일자 조선일보의 <난파 위기 국민연금...국민 지갑만 터나>라는 기사를 들 수 있다.

조선일보는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이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국민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보도를 내놨다. 관련 기사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 주목 받았다. 이 교수는 “작문 솜씨도 이 정도면 천재급이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다”며 “진실은 그게 아니고, 정례적으로 재정 건정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문제점은 국민연금 재정전망을 새로 평가해본 결과 저출산,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기금 고갈 예상시점이 2060년에서 2057년으로 3년 빨라진 것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뿐 아니라 대부분 경제지들이 ‘국민연금 이대로 가면 망한다’라는 논조로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를 내놓으면서 이에 이낙연 총리가 제동을 걸 필요성을 느끼고 언론의 왜곡을 지적했다는 분석이다.

▲ 이낙연 국무총리. 사진=민중의소리.
▲ 이낙연 국무총리. 사진=민중의소리.

이 총리의 언론에 대한 쓴소리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1월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단 오찬간담회에서 이 총리는 “제가 21년 동안 신문사 밥을 먹었고 그 후로 18년째 취재원으로 살았다. 늘 언론과 뗄 수 없는 생활을 쭉 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최근 언론보도를 달구지와 자동차로 비유했다. 이 총리는 “달구지가 다니던 시대에는 웬만한 사람이 고장났다는 걸 금방 아는데 자동차가 고장나면 잘 모른다. 달구지 시대 기자도 그때는 고장난 걸 금방 알았지만 자동차 시대라서 어디가 고장났는지 모르고 쓰는지 이해는 하지만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언론이 정확한 보도를 해야 한다고 훈계를 한 것으로 기자들 사이에선 많이 회자됐다. 이 총리는 기자들 앞에서도 곧잘 “팩트는 신성하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이 총리는 지난 4월 신문의날 행사에서도 “이제 사람들은 신문의 ‘순종적 수용자’에 머물러 있지 않다. 사람들은 신문을 평가하고 감시하며, 버릴지 말지를 자유자재로 선택한다. 기자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면서 “게다가 가짜 뉴스까지 만들어지는 세상이 됐다. 뉴스 전체가 ‘신뢰의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신문은 경영의 위기뿐만 아니라, 뉴스 전체의 ‘신뢰의 위기’까지 겹쳐서 맞이하게 됐다”고 말했다.

보통 축하하는 자리에서 의례적인 칭찬을 하기 마련인데 언론인 출신 이 총리에게 신문의날 행사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자리였던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 총리가 언론에 대해 계속해서 쓴소리를 하고 있다는 건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이 누적돼 있다는 것이고 왜곡의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진단 때문”이라며 “잘못된 언론보도가 있으면 즉각 해당 부처가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사실로 굳어지기 때문에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취지”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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