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서울대병원 산하 한 위탁병원에서 불법촬영 사건 2건이 연이어 드러났다. 이 병원 의사 이아무개씨(33)가 5월 불법촬영 혐의로 검거돼 음란동영상 2만 여건이 적발됐다. 그는 간호사 탈의실, 산부인과 진료실, 마취실, 커피숍 등에서 환자와 여성을 무차별 촬영했다.

문제는 이들 영상물의 촬영 장소와 시기가 4개월 전 적발된 불법촬영물과 겹쳤다. 그해 1월 소라넷에 ‘국산 간호사’ 등의 이름으로 이 병원 간호사 탈의실 불법촬영물이 올라와 이미 고소·고발이 진행됐다. 피해 간호사들은 병원을 믿고 처리를 위임했다. 병원은 고발장만 접수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경찰은 두 사건 연관성을 조사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 피해 간호사 1명은 그해 사직했다. 3년이 지난 2018년 7월 관련 촬영물이 또다시 유포됐다.

서울대병원 노조(공공운수노조 서울대병원분회)와 피해 간호사 2명이 16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에 ‘간호사 탈의실 불법촬영 사건’ 고소장을 제출하며 재수사를 촉구했다. 적용 혐의는 불법촬영물 반포·판매·제공·전시 등을 명시한 성폭력특별법 14조 1항 및 3항이다.

▲ 서울대병원 노조(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와 피해 간호사들이 8월16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에 ‘간호사 탈의실 불법촬영 사건’ 고소장을 제출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서울대병원 노조(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와 피해 간호사들이 8월16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에 ‘간호사 탈의실 불법촬영 사건’ 고소장을 제출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박경득 노조 사무국장은 고소장 제출 전 기자들과 만나 “2015년 1월 당시 해당 영상이 유포되지 않도록 동작경찰서에 요청했는데 한 달 넘게 차단되지 않았다. 영상은 두 달 가까이 지나서야 삭제됐다”며 “이 영상이 올해 7월 인터넷에 다시 유포됐다. 추가 피해자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박 사무국장은 “2015년 1월과 2018년 7월 확인된 모든 영상을 대상으로 고소·고발장을 접수한다”며 “당시 피해자들은 모든 절차를 병원에 위임했지만 병원은 경찰에 제대로 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 경찰도 용의선상에 오를 내부자를 잡지 않고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피해자가 다시 목소리를 낸 이유는 자신의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지도 않았고 책임져야 할 병원으로부터 아무 답변도 듣지 못해서”라고 밝혔다. 병원은 2015년 노조가 다섯 차례 공문을 보냈는데도 처리과정을 밝히지 않다가 언론보도 후 ‘기소중지로 검찰에 송치됐다’는 결과를 공문으로 통보했다. 병원은 내부 진상조사나 징계, 피해자 보호조치 등도 하지 않았다.

서울경찰청은 올 8월 유사 촬영물이 재유포돼 논란이 일자 지난 8일 이 사건을 재수사한다고 밝혔다.

이에 노조는 “당시 동작경찰서는 영상을 삭제하기가 어렵다는 답변만 되풀이 했다”며 의사 이씨가 검거됐음에도 “경찰은 그 의사와 해당병원 갱의실(탈의실) 사건과 연관성을 조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재수사를 결정한 경찰은 이제 모든 방법과 인력을 동원해 제대로 수사하고 범인을 잡아야 한다”며 “해당 병원은 먼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보상을 포함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의사 이씨는 2015년 8월 성폭력특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이씨가 산부인과 진료실, 서울 명동의 여자화장실, 수도권 지하철역·정류장 등에서 여성의 신체와 치마 속 등을 137회 불법촬영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2012년 12월에도 같은 혐의로 기소돼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재범이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